“이렇게 어우러져 사는데, 소멸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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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어우러져 사는데, 소멸이라뇨?”
  • 정순영 전문기자
  • 승인 2023.04.2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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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마을공동체 시행 1년 만에 예산‧조직 ‘폭풍성장’
공공급식‧장애인 이동 등 간절한 필요가 활동 이끌어
수치와 규모만으로 지역 존폐 전망 ‘무지하고 폭력적’
2023년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16개 마을공동체 리더들이 지난 3월 30일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에서 합동워크숍을 가졌다. 사진은 워크숍 프로그램 중 ‘멘티미터로 소통하기’ 시간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2023년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16개 마을공동체 리더들이 지난 3월 30일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에서 합동워크숍을 가졌다. 사진은 워크숍 프로그램 중 ‘멘티미터로 소통하기’ 시간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

2023, 시행 두 번째 해를 맞는 충북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옥천군과 같은 기초지자체가 한 해 동안 벌이는 사업을 개수로 따지면 몇 개나 될까? 2022년 기준 옥천군 1년 살림살이 규모가 7000억 원을 넘어섰으니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어도 줄잡아 수백 개 이상의 사업들이 옥천군 예산으로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을 조금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중심에 주민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활동 지원사업의 첫발을 뗀 것은 2022년이지만 그 근거가 되는 조례를 만들고 활동의 기반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활동을 지원할 조직을 만들기까지 4년 가까운 과정들을 옥천 주민들은 직접 일구어냈다.

그리고 2022년 처음 이 사업에 참여한 10개 마을공동체는 사업의 첫 시작이 중요하다는 남다른 사명감으로 9개 읍면 곳곳에서 멋진 활동을 펼쳐냈고 주민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20227000만 원이었던 사업 예산이 2023년에는 3배가 훌쩍 뛴 21000만 원의 예산으로, 16개 마을공동체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간절한 필요 때문에 탄생

옥천은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주제로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필요한 정책들을 발굴하는 활동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2021년 6월 ‘마을 돌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각 읍면 주민들의 모습
옥천은 지역의 다양한 의제를 주제로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필요한 정책들을 발굴하는 활동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2021년 6월 ‘마을 돌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각 읍면 주민들의 모습

사실 농촌 마을 주민들은 정부나 지자체 정책이 어떻게 설계되고 실행되든 간에,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 활동을 해왔다. 왜일까? 농촌 마을 주민들의 일상이 도시보다 여유로워서? 아니면 공동체 정신이 유난히 투철한 사람들이 농촌에 많이 살아서? 옥천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어떤 이유도 아닌 간절한 필요가 주민들을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시골은 복지관도 병원도 마을 가까이 없잖아요. 우리 마을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스무 명 정도 계시는데 이 어른들이 간밤에 별일 없으신지 항상 걱정이더라고요. 그래서 마을회관에서 점심이라도 다 함께 먹으면 어르신들 안부도 챙길 수 있고 밥에 물 말아 김치만 갖고 드시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반찬도 챙겨 드릴 수 있으니까 마을공동체 활동으로 마을 공동급식을 하게 된 거죠.” (이원면 장화리 강○○ 이장)


지역에선 장애인 특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정말 없어요. 상업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시설 조차도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옥천 지역에서부터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자는 의지를 갖고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직접 지역 공간들을 조사하고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모은 책자를 발간하기로 한 거예요.” (장애인평생교육시설 해뜨는학교 최○○ 교장)


농촌 면 지역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그래서 우리끼리 모여서 뭐라도 해보자 싶어 가까운 엄마들이 모여 미싱을 배우고 홈패션을 하기 시작했어요. 미싱을 드르륵드르륵 박으면서 농촌에서 사는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등을 하다 보면 정말 밤늦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미싱으로 베갯잇과 이불보를 만들어서 이웃에 사는 어르신들께 선물로 드렸는데 너무 좋아들 하셔서 얼마나 보람 있었는지 몰라요.” (군서면 서화교육공동체 신○○ 대표)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은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과정을 옥천군이 예산으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공동체는 행정리나 면 단위의 지리적 공동체일 수도 있고 여성, 청년, 다문화, 장애인 등의 다양한 사회적 공동체일 수도 있다.

사업의 근거가 되는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2018년 의원 발의로 제정됐지만, 주민이 먼저 조례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그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0년 옥천군 9개 읍면 마을공동체 활동을 연결하는 거점이자 공동체 활동 정보가 축적되는 공간으로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가 마련됐다.

이 역시 주민들이 먼저 나서 옥천군과 함께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도전한 성과로 조성된 공간이다. 주민들이 직접 지원조직도 맡았다.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조례를 근거로 옥천군은 2021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설치했고 ()옥천순환경제공동체라는 주민 조직이 2023년 현재까지 센터를 수탁운영하고 있다.


좋은 삶 만드는 지역의 힘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옥천읍 장야애들길62)’는 주민의 다양한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2020년 옥천 주민들이 옥천군과 협업해 행정안전부 공모에 선정돼 조성됐다.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옥천읍 장야애들길62)’는 주민의 다양한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2020년 옥천 주민들이 옥천군과 협업해 행정안전부 공모에 선정돼 조성됐다.

그리고 2022년 옥천군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사업이 처음 실행됐다. 물론 현재는 다른 지자체에도 유사한 조례, 공간, 사업들이 많지만, 옥천이 조금 특별하다 여겨지는 것은, 그 모든 과정을 만들고 기억하고 기록해온 주체가 바로 주민이라는 점이다. 비단 마을공동체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옥천이라는 지역이 가진 가장 큰 힘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농업, 교육, 자치, 사회적경제, 언론 등의 여러 영역에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낸 주민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역발전이라는 것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옥천과 같은 지역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인구, 산업체 수, 청년인구 비율 등의 양적 기준으로 지역을 바라본다면 옥천과 같은 대다수 농촌지역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인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발전한다는 것은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필요하다 여기는 것을 실현해가며 적극적으로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옥천에는 공동체를 이루고 나와 우리를 위한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무수히 많은 발전된 인간들(!), 즉 주민들이 있다. 그런 주민들의 총체인 지역이라는 것의 발전을, 이런저런 수치만으로 함부로 평가하고 소멸이다, 뭐다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폭력적인 일일 수 있는지, 우리 사회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시기가 아닐까.

정순영

2007년 옥천신문을 찾아 옥천까지 왔다. 2015년 편집국장을 정점으로 퇴직한 뒤 안남면에 정착했다. 여러 마을공동체 조직에서 일하며 ‘동이면 좋은이장학교’, 공동체장터 ‘슬슬장’을 기획‧운영했다. 사회적경제 현장활동가라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옥천순환경제공동체가 수탁한 옥천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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