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일치 사회, 신(神)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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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일치 사회, 신(神)나는 세상
  • 이지상 가수, 작가
  • 승인 2023.04.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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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회당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호랑이를 탄 산신령.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는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호랑이를 탄 산신령.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는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나는 세상이다. 신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넘어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몇몇 인간들의 세상이란 얘기다. 이들의 이름 뒤에는 도사, 법사, 스승이나, 총회장, 목사 같은 종교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사가 붙어 다닌다. 도용이든 참칭이든 혹은 진실한 믿음이든지 간에 그들의 종교적 행위가 포함되어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탄생했고 이들의 언사(言辭)는 대통령실이라는 충실한 실행 도구를 통해 정책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기도빨이 얼마나 갸륵한지를 살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불과 1년여 전에는 어느 법사라는 이름이 꽤 회자 되었다. ‘일광 조계종총무원장이었던 그분은 가죽을 벗긴 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감행했던 인물이다. 그가 활약했다는 대통령 후보 캠프에선 종종 요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TV토론에 등장한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그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어지는 토론회에서는 눈썹 위에 흰 눈썹(白眉)까지 붙였다.

법사님의 신통한 능력은 여기서부터다. 소위 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한국의 기독교는 무속이라면 기함하며 뒤로 나자빠지는 속성이 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라는 십계명의 첫 구절은 교회 언저리를 서성였던 모든 사람에게 각인돼 있다. 나의 예상 시나리오는 이랬다. TV토론이 방영된 그 주의 모든 성당과 교회에서는 회개와 자성과 다짐의 설교가 넘쳐날 것이다. “주여 무속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막아 주시옵소서.” 그러나 모든 회당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베드로의 심정이었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정치와 신통력(?)의 야합

총회장님의 영빨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의힘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신천지 신도들이 대거 개입했다는 증거와 양심선언과 뉴스가 나왔다. 그게 사실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에서 열세였던 정치신인 윤석열 후보는 노련한 정치 선배들을 꺾고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 정문에는 신천지 출입금지팻말이 붙어있었다. 모든 회당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예수님의 꾸짖음을 듣고 잔잔해진 갈릴리의 바다처럼.

1년이 지난 지금 한참 물오른 기도빨을 자랑하는 이의 직함은 대놓고 목사님이시다.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강단진 말로 성도들의 아멘 합창을 끌어내시는 인물이다. 그는 광화문 태극기 부대를 이끄는 선봉장이다. 명색이 집권 여당인 국민의 힘을 고장난명(孤掌難鳴)의 대상으로 어여삐 여겨 틀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데 급기야는 국민의힘 천만 당원 모집 운동의 주역으로 환골탈태한다. 실로 엄청남 영력(靈力)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신력(神力)을 가진 이는 따로 있다. 그는 세간에 스승으로 불리는데 나타났다가도 사라지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존재이다. 풍수에도 능통해서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 깊숙이 간여했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는데 그가 등장할 법한 CCTV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고 그것을 폭로한 증언은 묵살당했다.

지난 31, 역사적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그의 역사 인식도 아연했지만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아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는 대목은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열여덟 꽃다운 청춘을 조국에 바친 유관순 열사의 기념관에서였다.

이후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당사자들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을 가볍게 무시한 이른바 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고 일본에 가서는 일본 극우의 산실 게이오 대학에서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을 치켜세웠다. 그는 후쿠지와 유키치(게이오 대학 설립자), 이노우에 카오루, 이토 히로부미와 한때 국내에서도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주목받았던 시부자와 에이치 등과 함께 조선 침략사에 원흉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일본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위의 사달이 벌어지기 전 그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본한테 말이죠. 당한 사람들은 우리 윗대 들이에요. 우리 선조들이 일본이 나쁘다고 가르쳐주는 대로 들었을 뿐이지. 무조건 따라간다면 참 아둔한 사람들이지”.

한 나라를 침탈해 국권을 빼앗고 언어와 문화를 빼앗고 국내 포함 연인원 800만 명에 해당하는 강제징용과 학병, 근로정신대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수십만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생체실험까지 감행했던 역사는 어디로 가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단 한마디의 진정 어린 반성도 하지 않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 분노하는 이들은 졸지에 아둔한 사람이 되었다.

스승은 다시 교시를 내린다 일본한테 참 고마운 마음이 들고 미안한 마음이 들고.” 한때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알려면 스승으로 불리는 분의 강연을 미리 들으면 답이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어찌 됐든 결과는 피해자 대한민국이 가해자 일본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민비 곁의 진령군도. 니콜라이 2세 곁의 그레고리 라스푸틴도, 히틀러 곁의 에릭 하누센도 울고 갈 최강의 예언자들을 보유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숱한 범죄와 비리 의혹을 잠재웠고 대통령실을 옮기고 제2부속실까지 없애며 스스로 날개를 단 김건희 박사를 빼놓을 수 없으나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그는 대통령의 부인을 넘어 대통령이 공식 인정한 국정 파트너가 되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미 두 번째 대통령(VIP2)’으로 불린다.

그는 웬만한 도사보다 내가 더 잘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 단절과 러시아와는 준 전시상황이 될지 모르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 신공을 단칼에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김 박사의 내공에 비추어 우열을 가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의 현재를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 미래를 묻는다면 ()나는 세상.”

이지상 가수, 작가
이지상 가수, 작가

곽재구 시인이 시를 쓰고 가수 정태춘이 곡을 붙여 노래한 나 살던 고향’(원제 유곡나루)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돼 부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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