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살리려 노력했더니 아름다운 정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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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살리려 노력했더니 아름다운 정원이 됐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23.05.03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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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천상의 정원’ 옥천 수생식물학습원 가꾸는 주서택 원장
다섯 가정이 땅 사고 일궈, 지금은 뛰어난 경관 자랑하는 전국 명소

 

대청호를 바라보는 주서택 원장
대청호를 바라보는 주서택 원장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피천득 ‘창밖은 오월인데’)

사는 게 힘들 때는 하늘을 보라고 했던가. 요즘처럼 정치고 경제고 어디 속시원한 구석이 없을 때는 자연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정치에 실망하고, 고물가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민들이 위안받을 길은 저 푸른 자연에 안기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 아닌가. 지금 연초록 잎이 나오고 황홀한 색의 꽃이 피는 봄이라는 사실이.

봄에 충북 옥천의 수생식물학습원에 가보고 싶었다. 청년처럼 씩씩했던 여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도 가봤지만 이 곳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다. 수생식물학습원은 대청호의 물과 산, 그리고 식물이 어우러진 천상의 정원으로 이미 유명하다.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씩 다녀갔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다. 지난해에 10만여명이 방문했고, 코로나19로부터 좀 자유로워진 올해는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대청호는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충북 보은군 및 청주시에 걸쳐있는 인공호수다. 대전과 청주의 앞 글자를 따서 대청호가 됐다. 국내에서 세 번째로 넓다.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산과 깊은 계곡 덕분에 호수 주변의 도시들은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그런데 대청호를 끼고 있는 수생식물학습원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곳에 들어서서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가슴이 뻥 뚫리도록 탁 트인 호수와 아직은 어린 나뭇잎들이 만들어 낸 연초록 숲, 그리고 푸른 하늘의 조화가 기막히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수생식물학습원에서 보는 대청호의 탁 트인 풍경
수생식물학습원에서 보는 대청호의 탁 트인 풍경

 

그럼 이런 수생식물학습원을 조성한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주서택(71) 원장이다. 우리에게는 목사님으로 통한다. 청주 주님의교회에서 오랫동안 담임목사를 했고 지금은 같은 교회에서 원로목사로 활동 중이다. 한 때는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표로 활발한 시민사회운동을 이끌었다.

지난 달 29일 주 원장을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 그는 방금전까지 일을 하다 온 듯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함께 걷는 동안에는 이건 ‘수련’ 이건 ‘백년초’ 저건 ‘야생화’ 하면서 쉴새없이 식물 종류를 알려줬다. 그러면서 간혹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 비뚤어져 있는 의자를 바로 놓았다. 식물원에 들어가서는 어느새 물 밖으로 뛰어나온 거북이를 다시 물 속으로 넣어주는 등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다.

수생식물학습원은 지난 2003년부터 준비해 2009년 문을 열었다. 땅을 사고 준비한 기간까지 치면 올해가 20년째다. 이 곳은 2009년 충북도교육청 과학체험학습장으로 개관해 학생들의 체험교육 현장으로 활용됐다. 그래서 학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곳이 내건 4가지 설립목표도 물사랑 체험교육의 현장, 견학을 통한 수질보전의식 고취, 내적치유의 현장, 대청호살리기 운동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주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는 관광객들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는 관광객들

 

-수생식물학습원을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 

“처음부터 이런 수생식물학습원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건 아니다. 당시 나는 대청호를 잘 보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보전하려면 현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3년에 장모, 장인, 친척, 지인 등 다섯 가구 사람들이 모여 대청호 인근의 땅을 사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 때 이곳은 산과 밭이었다. 땅도 한 번에 산 게 아니다. 조금씩 사서 모았다. 그래서 땅을 가꾸고 나무를 심다가 수생식물을 재배했다. 수생식물은 물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련 등 물에서 사는 식물을 재배해 청주와 대전 등지의 꽃집에 한동안 납품하다 2009년 충북도교육청 과학체험학습장으로 문을 열었다.”
 

-학생들의 과학체험학습장으로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우리는 황량했던 땅을 일궈 관광+농업의 개념인 경관농업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영리보다는 물과 자연보전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다.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심신이 치유되는 내적치유의 현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설립목표도 자연을 사랑하는 교육현장이면서 단체학습을 통해 정서함양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개관 후 학생들의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많이 했다. 대청호가 보이는 현장에서 물을 어떻게 지키고 보전할 것인가 등에 대한 교육을 했는데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학생 단체 프로그램이 중단됐다. 그래서 이 때부터 일반인 관람으로 방향을 바꿨다.”

 

연못에서 자라는 식물들
연못에서 자라는 식물들

 

-수생식물학습원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곳은 우리 다섯 가족이 가꾸는 정원이다. 그런데 여기 오는 사람들이 주인이고, 우리는 관리인일 뿐이다. 유료지만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정원 보전을 위해 예약제로 운영한다. 시간별 60~70명만 받고 일요일은 닫는다. 나무도 쉬고 꽃도 쉬고 가족들도 쉬기 위해서다. 그리고 애완동물 입장불가, 외부음식 반입불가다. 주변 음식점을 이용하라는 차원에서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다. 카페는 있다. 수생식물학습원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정원이다. 사람은 자연속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 푸른 하늘, 물, 산이 어우러진 곳에 있을 때 뇌파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한다. 이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뜻에서 좁은문을 통해 들어와야 한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좋을 것이다.”

이 곳을 한바퀴 돌다보면 ‘침묵하십시오’ ‘침묵하면 들을 수 있습니다. 꽃과 나무들의 소곤거림을’ ‘천천히, 더 천천히’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 등의 문구를 볼 수 있다. 길도 매우 좁아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한다. 자연은 최대한 살려 바위 위에 솟은 소나무 등이 그대로 있다. 처음부터 토목공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 원장은 “주변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은 범죄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변성퇴적암의 색깔과 맞춰 집도 짙은 회색벽돌로 지었다”고 말했다. 내부에는 다섯 가족이 사는 집이 있는데 모두 짙은 회색이다. 이를 보아도 수생식물학습원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수생식물학습원 안의 집
수생식물학습원 안의 집

 

야외 카페에 앉아 쉬는 관광객들
야외 카페에 앉아 쉬는 관광객들

 

 

-여기서 기르는 식물에 대해 설명해달라

“500여 종의 꽃과 나무, 수생식물, 야생화가 있다. 과일나무도 사과·감·복숭아·매실 등 여러 종이다. 4개 동의 식물원에서는 분재, 수생식물들이 자란다. 여기서 사는 가족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며 정원을 돌본다. 손이 가면 정원이고, 안가면 잡초밭이 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풀을 뽑는다. 정원은 숲이 되면 안되니까 틈틈이 나무도 잘라 준다. 앞으로 감나무 200주와 유실수를 더 심을 생각이다. 정원도 해마다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가족들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꼭대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가 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기꺼이 들어가서 기도를 한다. 요즘 좋은 일을 했다고 들었다.

“교회 넓이는 1.5평이다. 방문객들이 헌금을 놓고 가기 시작해 작은 헌금함을 설치했다. 그랬더니 현재까지 7000만원 정도가 모였다. 그래서 옥천군에 기부해 생존권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전달하도록 했다. 무명의 사람들이 낸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살리니 좋다. 이것이 사랑의 파동을 일으켰다. 덕분에 교회도 유명해졌다.”

주 원장에게 하루 일과를 물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기도를 한 뒤 정원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꽃과 나무에게 인사를 한다. 그런 다음 필요한 작업을 한다. 땀흘려 가꾼 정원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행복하다. 정원 가꾸는 일은 힘들지만 정말 즐겁다. 또 단체손님이 오면 종종 강의도 한다.” (사)내적치유사역연구원 대표인 그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내적치유 세미나를 해왔다.

20년의 역사를 가진 수생식물학습원은 지금 아름다운 정원이 됐다. 여느 수목원처럼 지나치게 넓지 않고 놀이시설이 없어 오히려 좋다. 상업용으로 조성한 게 아니어서 대단한 볼거리는 없다. 대신 쓸데없는 것도 없다. 시원한 대청호와 꽃과 나무의 소곤거림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들도 조용히 사색하며 천천히 걷는다. 대청호를 바라보며 오래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왕 여기 온 김에 자연의 소중함까지 깨닫는다면 더 바랄 나위 없으리라. 주서택 원장의 바람도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

주서택 원장

안양대 신학대학원 졸업, 성결대 사회교육대학원 수료
미국 뉴욕신학대학원 명예신학박사
충북 CCC 대표 역임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역임
충북공동모금회 모금분과위원장 역임
현 청주 주님의교회 원로목사
현 (사)내적치유사역연구원 이사장
충북도민대상·청주시문화상·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저서 ‘내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내가 있어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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