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부활하는 ‘숭고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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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부활하는 ‘숭고한 그들’
  • 주현진 인문학자
  • 승인 2023.05.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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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5월, 올랭프 드 구즈를 이 계절엔 떠올려보자

이따금 나풀대던 거친 쓸쓸함과 함께 4월이 가고, 모든 생명체들이 찬연한 모습으로 변하는 시간이 왔다. 나무와 꽃들이 짙게 빛나고, 들풀조차 경쾌한 움직임으로 하늘거리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낡은 수사(修辭)를 달고 다시 돌아왔다.

이 찬란한 시간이 돌아오면, 관례적인 어휘들이 삶의 대기 속에서 부유한다. 그런데 우리의 사유 속에선 5월의 피상이 지시하는 바와는 다른 것이 떠오른다. 기억의 강을 가르고 솟구치는 존재들이 사유 속으로 파고든다. 그 존재들은 해마다 5월에 신비롭게 부활한다. 풍요로운 5월의 속성처럼, 이 계절에 부활하는 존재들 제각각 다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문학작품에서 솟아나고, 삶의 지혜에서 솟아나고, 평범한 일상에서 다시 떠오르기도 하는 존재들이고, 또한 전설과도 같은 역사에서 부활하는 영웅적인 존재들이며 그 심연에서 익명으로 불쑥 나타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중에는 이름을 미처 말하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도 있다. 그들은 ‘805이라는 특별한 역사의 장에서 부활한다.

 

 

음유하는 시간

 

그러나 이 부활은 힘겹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고뇌한다. 5월의 찬란한 빛깔 뒤편에 드리운 깊숙한 어둠 속에서 그들을 다시 세심하게 발견할 때, 비로소 그들의 종합적인 익명성이 부활하여 우리와 재회할 수 있다. 이렇듯 비록 5월에 이르러서야만 마음 서랍 깊숙이 넣어둔 감정을 다시 꺼낼지라도, 우리는 ‘805로부터 다시 솟아난 수많은 존재들과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이 만남은 한없이 숙연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치러지는 제의(祭儀)처럼 진실하고 섬세하다. 요컨대 참된 제의는 ‘805의 장엄한 시간을 통과하였던 존재들과의 재회를 완성시킨다. 이것은 지난 세기 무겁고 버거운 유년과 청춘을 보낸 후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건너온 특별한 우리에게만 속하는 제의적 재회이다. 해마다 5월에 반복되는 재회는 우리의 존재 속에 5월의 숭고한 숙명으로 새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5월에 부활하는 존재들을, 이 계절에 발현된 존재들을 은유하고 음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역사의 좁은 통로를 지나간 모든 것들이 빛바랜 색으로 흐려질지라도, 오늘날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한껏 외치며 이 용어들을 제멋대로 오용하고 왜곡할 수 있도록 해준 숭고한 존재들과 재회할 수 있는 시간을 향유하자. 5월에 만나는 숭고한 그들을 개별적인 존재로 기억하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익명의 수많은 개인들로서의 숭고한 그들이 일궈낸 자유의 삶을 은유하고 음유하자.

이처럼 ‘5월의 시간에서 부활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숭고한 그들과 마주하다 보면, 역사의 접혀진 부분에서 또 다른 거룩한 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805의 시간에서부터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가보면, 18세기 중엽 프랑스의 어느 해 5월을 통과하면서 그곳에서 발현된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라는 낯선 이와 마주칠 수 있다. 그리고 이 우연한 만남으로 인하여, 지금의 5월에 유달리 빛나는 어머니를 위하여, 혹은 여성이라는 이름을 위하여 영속의 세월 저편에서 부르짖었을 수많은 숭고한 이들과의 재회가 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17485월에 태어난 올랭프는 인본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사유하였던, 최초의 여성주의자이다. 그럼에도 19세기의 저명한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는 올랭프를 위대한 시민들의 투쟁에 반기를 든 광녀로 단정한다. 인류를 현대적 민주주의 사회로 인도해준 프랑스 대혁명의 절정은 1789826<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문>을 통해 천부인권을 공포한 순간일 것이다.

그렇지만 올랭프는 이 위대한 순간을 냉소 섞인 분노로서 기록한다. 올랭프는 대혁명의 주체 시민들속에는 여성, 흑인노예, 장애인을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올랭프는 이른바 혁명적인 영웅인 시민-남성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16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1949년에도 여전히 남성적인 사회를 향해 여성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을 던져줄 존재를 예고하기라도 하듯이, 올랭프는 여성은 남성과 함께 그리고 남성의 명령 하에 만들어지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다라고 외쳤다. 그렇지만 그 문장들은 공허한 메아리로만 번져나갔고, 오히려 그가 던졌던 숱한 물음들로 인하여, 특히 혁명파의 반()인본주의적인 행태들에 퍼부었던 용맹한 비판들로 인하여, 올랭프는 1793113일 단두대 칼날 아래 쓰러진다.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주현진 인문학자, 한남대학교 초빙교수

지금의 5월 우리는 모든 어머니들을 찬란한 5월의 영웅으로 새롭게 부활시키고 있지만, 그들에게 헌정된 제의 속에 여성들의, 혹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자리를 마련해 놓았는가? 아니면, 역사의 깊은 우물 속에 투신한 존재들이 부활할 수 있도록 장엄한 제의를 준비할 것인가? 이 물음들과 함께, ‘자유의 시간 5월을 은유하고, 음유한 단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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