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정은 여행 중…지중해에서 보내온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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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정은 여행 중…지중해에서 보내온 기별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5.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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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한 번은 가봐야 할 시실리(時失里), 시칠리아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①

에트나 화산과 카타니아 시내.
에트나 화산과 카타니아 시내.

20여 년 넘게 여행을 취미이자 특기이자 생업으로 하다 보니 여행 관련 질문이나 상담을 종종 받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질문이다. 시칠리아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대략 일주일이면 충분할까요? 인간의 지리적 개념은 대부분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 의해 결정된다. 시칠리아섬의 면적은 제주도의 14배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은 놀란다. 그렇게나 커요?

영어로는 시실리, 이탈리아어로는 시칠리아라고 부르는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모양은 피자 한 조각처럼 생겼다. 면적은 25711km. 제주도 면적 1849km로 나눠보면 정확하게는 13.9 배 크다. 삼면은 지중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아직도 활동하는 에트나 화산의 높이는 3357m.

시칠리아 지도. 출처=위키피디아
시칠리아 지도. 출처=위키피디아

한반도의 제주도가 그렇듯, 섬이라는 고립된 지형 때문에 시칠리아는 본토와 매우 다른 문화적 특성과 독특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로마, 피렌체, 볼로냐, 베니스, 밀라노 등 이탈리아반도 중북부의 유명한 도시를 다 들르고도 시칠리아에 오면 본토와 다른 독특함과 강렬함을 하루에도 여러 번 느낀다. 대부분 여행자는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에 시칠리아를 찾는다.

어느 여행지이든 최소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역사적 배경의 기본 이해 없이는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지의 풍광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거나 피상적인 시선의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가운데에 있어서, 동서남북으로 여러 문명이 숱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역사가 시칠리아 곳곳에 유적으로, 때로는 흔적으로 층층이 쌓여 있다.


외침 덕분에 풍성해진 식탁

간략하게나마 시칠리아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기원전 8세기 지금으로부터 대략 2700년에 그리스인이 배를 타고 시칠리아섬에 도착한다. 선주민이 있었으나 그리스인의 도착 이후 내륙으로 밀려난다. 그리스인은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반도 남부, 멀리는 터키에 지금의 루마니아 흑해 연안까지 지중해 곳곳에 식민도시를 세웠다. 이 시기를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쇠퇴 이후, 시칠리아는 북아프리카, 지금의 튀니지에 있는 카르타고와 신흥 로마에 의해 반으로 나뉘었다. 시칠리아의 패권을 두고 로마와 카르타고의 충돌로 벌어진 전쟁이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포에니 전쟁이다. 로마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 시칠리아는 로마의 속주로 편성되었다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북부에서 내려온 게르만족 왕국의 지배를 잠깐 받았다.

파스타
파스타는 시칠리아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게르만족 이후, 북아프리카에 진출한 아랍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다가, 비잔틴 제국으로 알려진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시칠리아는 바이킹으로 알려진 북유럽 노르만인들의 지배를 받는다.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 곳곳에 노르만 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노르만족 이후, 근현대의 이탈리아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시칠리아는 프랑스와 스페인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지중해의 한 가운데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시칠리아는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게르만(반달족), 동로마(비잔틴), 아랍(북아프리카 이슬람), 노르만(바이킹), 프랑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시칠리아의 오렌지가게. 사진=정연일
시칠리아의 오렌지가게. 사진=정연일

이런 겹겹의 역사는 시칠리아의 음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 파스타가 시칠리아에서 탄생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고대 그리스인이 심어놓은 올리브, 중앙아시아 아랍 등 이슬람 문화권을 통해 들어온 면( Noodle), 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에서 들어온 토마토 등이 파스타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겨울에도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이고 사면이 바다인 섬이라는 점, 해발 고도 2m 정도의 저지대부터 고도 1000m 내외의 고지대가 있어 시칠리아섬 안에서도 기후가 식물의 생태계가 다양해 음식 재료 또한 매우 다양하다. 토양이 비옥해 고대 로마 제국 시절부터 밀농사를 지어 로마의 곡창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 포도, 오렌지 같은 감귤류와 피스타치오 같은 견과류도 풍부하다. 음식이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대부, 시네마천국의 촬영지

겹겹이 쌓인 역사 외에도 시칠리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대부><시네마 천국>이 아닐까 싶다. 그 외에도 시칠리아에서 촬영한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말레나>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 영화 때문에 시칠리아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시칠리아로 가는 방법은 육공 모두 접근이 가능하다. 시칠리아섬과 이탈리아반도를 잇는 다리는 없지만, 로마에서 출발한 열차를 철도 차량 전용 이동용으로 설계한 배에 실어 해협을 건넌 후 시칠리아에 도착하면 다시 지상 선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그다음은 나폴리나 로마 근교의 치비타베키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대개의 여행자는 로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직항이 없어 로마 또는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갈아타고 들어간다.

시칠리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어인의 머리. 남녀 한 쌍이 같이 있고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시칠리아에 남은 북아프리카 이슬람인(무어)의 영향.  사진= 정연일
시칠리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어인의 머리. 남녀 한 쌍이 같이 있고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시칠리아에 남은 북아프리카 이슬람인(무어)의 영향. 사진= 정연일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와 제2의 도시인 카타니아에 국제공항이 있다. 보통 항공권을 예약할 때 팔레르모로 들어가서 카타니아에서 나오거나, 그 반대로 항공 일정을 잡기도 한다. 제주도의 14배 크기인 데다 매력이 넘치는 장소 혹은 관광지가 섬 곳곳에 흩어져 있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동선을 잘 잡아야 한다.

한국인의 특성상 렌터카를 빌려 일주일 만에 신속하게 빨리빨리 주요 장소들을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돌다 보면 만나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시칠리아 사람과 지중해의 온난하고 뜨거운 태양은 목표 혹은 리스트를 지우거나 제거하듯 여행하는 여행자의 마음에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서 왜 여행이 아닌 고행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리 잡을 확률이 매우 높다. 시칠리아는 그런 곳이다. 느긋하게 돌아보려면 최소한 열흘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정 다음으로 받는 질문은 시기이다.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은 겨울은 온난다습하고 여름은 고온건조 하다. 대부분 공통으로 숙박 시설에 난방과 냉방이 우리나라처럼 강하거나 훌륭하지 않다. 겨울은 우기이기도 하고 많은 관광지와 여행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설이 문을 닫는다. 그런데도 한국처럼 춥지 않고, 비수기의 호젓함을 즐길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싫어하면 겨울 여행도 추천할 만하다.

 

덥고 숙박요금도 비싼 여름

여름의 시칠리아는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간다. 숙박 시설을 비롯해 식당이나 버스 등의 냉방시설은 한국처럼 시원하지 않다. 유럽은 여름이 건조해서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고 하지만, 남부 유럽 지중해의 여름은 그늘에 들어가도 뜨겁다. 시칠리아는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와 관광객으로 어딜 가나 붐비고 여행 물가 특히 숙박이 비수기 대비 매우 비싸진다. 그래도 여름의 바닷가를 좋아한다면 추천.

가장 좋은 시기는 봄가을이다. 대신 봄가을에는 한국 달력에는 없지만, 이탈리아의 공휴일과 가톨릭 관련 연휴가 많아 여행 계획 시 미리 잘 체크해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쉽게 현지 달력을 확인할 수 있다. 4월 초 부활절 이후의 시칠리아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비도 자주 오지 않는 건조하고 쾌적한 날씨이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4월 중순의 시칠리아 여행에서 우산을 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시칠리아 없는 이탈리아는 내 영혼속에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여기에 모든 것에 대한 열쇠가 있다.” 시칠리아를 여행한 괴테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가볼 만한 곳,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가끔 보였던 카페나 술집의 시실리(時失里)’라는 이름처럼, 시칠리아에 가면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정연일은?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도 유럽을 여행 중이다. 글과 사진은 여행 중에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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