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조공외교+역사적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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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 ‘조공외교+역사적 재앙’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05.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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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공유는커녕 원자력 산업마저 美 통제 아래
韓 배터리·전기차·반도체 기업 투자 의무 잔뜩
중‧러 관계 악화로, 무역적자 눈덩이처럼 쌓여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사진= AP/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사진= AP/뉴시스

한미정상회담 다음날인 427일에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부르킹스 연구소에서 미국의 경제 리더십 혁신을 주제로 연설했다. 설리번에 따르면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산업 공동화다. 지난 30여 년 민영화, 외주화, 규제 완화, 감세로 채워진 신자유주의 성장전략이 초래한 결과다.

둘째는, 지정학적 통합의 실패다. 국제적인 경제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더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지 못했다. 세 번째는 기후 위기다. 청정에너지에 대한 투자와 국제협력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넷째는 불평등 심화다. 미국의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민주주의 위기도 고조됐다.

이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미국의 경제 리더십은 크게 변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외교는 중산층을 재건하는 목표에 통합돼야 한다. 미국에 산업을 유치하고 중국을 견제하며 중산층 재건하는 데 동맹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426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 기조를 뒷받침하는 한국 대통령의 역할을 각인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실제로 이날 두 정상의 공동성명은 설리번이 말한 네 가지 주제를 대부분 망라하며 미국 우선주의의 기조를 관철시킨다.

설리번 연설과 두 정상의 공동성명의 이면에는 미국이 지난 30여 년간 지구적 차원의 자유화 전략을 청산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미국으로 회귀하는 내부지향성이 나타난다. 임마뉴엘 칸트는 공화정을 도입한 국가끼리 전쟁이 없는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영구평화론을 제시한 바 있다.

냉전 종식 이후 한 세대를 풍미한 평평한 세계(Flat World)’의 꿈, 즉 칸트의 이상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 위에 세워진 평화와 번영의 국제질서였다. 미국 패권의 신자유주의 질서는 국가 간에 경제적으로 상호의존하면서 국제법과 자유무역이 보장되는 불가역적인 질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처럼 보였다.

자유주의의 이상으로 미국은 그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를 침공했으며 동맹국에는 안보를 제공하는 군사 패권, 유엔과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을 주무르며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는 달러 패권이라는 양대 축을 굳건히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났듯이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전파하는 세계의 표준이 아니라 세계를 인위적으로 재분할하는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과 진영화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장벽 있는 세계(Walled World)’로 회귀하는 중이다. 자유의 이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더욱 강력한 통제로 이어졌다.


받은 건 강력한 통제와 약탈

미국 우선의 기조하에서 열린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은 한국에 대한 통제와 약탈이라는 이중전략을 담고 있다. 공동성명에서 명기된 내용을 살펴보자.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 원자력협정 준수를 서약했다. 이는 단순히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핵발전소 폐기물 재처리도 금지한 가혹한 원자력 규제도 그대로 준수하겠다는 서약이다.

한국의 보수우파는 적어도 윤 대통령 임기 중에 핵 주권을 주장할 공간을 완전히 상실했다. 더 기가 막힌 대목은 원자력 에너지의 수출 통제 규정과 지적 재산권을 상호 존중하는 가운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 의정서에 리치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민간 원자력 협력에 참여하기로 약속한다는 대목이다.

현재 한국은 ‘APR1400’의 수출을 놓고 한전, 한수원에 소송을 걸었던 웨스팅하우스와는 여전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와 같은 합의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통제되는 원자력 산업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작년 5월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형원전 수출뿐 아니라 SMR, 4세대 원자로, 핵연료주기, 사용후핵연료 등 사실상 원자력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협력을 약속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후퇴했다.

공동성명에서 개방형 무선접속망(Open-Ran) 접근법을 사용하여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안전한 5G 6G 네트워크 장비와 구조를 발전시킨다는 내용도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오픈랜 방식은 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 독점을 깨기 위한 표준이다.

한국이 2019년에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했을 때 강력히 항의하며 미국은 한국의 독자적인 통신산업 발전을 견제해 왔다. 이런 합의에는 통신에 관한 한 한국에 한참 후진국인 미국에 우리가 표준을 맞추어준다는 하향평준화의 위험이 있다. 국제적인 통신 기준은 국제통신협회가 있으므로 한미정상회담에 합의할 내용도 아니다.

또한 반도체 분야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유지하고 급격한 기술진보를 따라가는 가운데 국가안보를 위한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 정상은 해외투자심사 및 수출 통제 당국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더러 중국에서 반도체 사업은 포기하라는 이야기다.

정상회담 이후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Fact Sheet)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 협력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현대차, SK이노베이션, 삼성전자 등 배터리·전기차·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에 대한 투자내용만 나열되어 있다. 한국을 통제하면서 일자리는 약탈하는 미국의 이중전략이 확연히 드러난다.


핵 협의그룹은 완전한 사기극

정상회담 전부터 한국 정부는 미국과 나토를 뛰어넘는 한국형 핵공유를 합의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양 정상이 합의한 워싱턴 선언은 이와 거리가 멀다. 핵공유가 이루어지려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특수 인가 요원과 핵 저장시설이 있는지 확인하고, 유사시 동원할 핵무기가 무엇인지도 사전에 정해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합의된 핵협의 그룹에는 이러한 군사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구상과 계획도 없이 분기마다 차관보가 만나 회의를 한다는 게 전부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기획하는 핵심 주체는 누구이며, 핵전쟁을 수행해야 할 상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어떤 절차를 통해 누가 핵 사용을 건의하고 결정하는 것인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하는 지금의 한미연합사령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든 게 의문이다.

한미가 공동으로 핵전쟁을 기획하고 결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미 정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더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하여 배치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거다.

지금 미 본토에 저장돼있는 100여 발의 중력 핵폭탄은 구형 전략폭격기에 탑재하여 10시간 넘게 비행해서 한반도에 와도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전 항로가 탐지된다. 현대전에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구형 폭격기로 접근해 핵폭탄을 투하한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 밖이다. 미국의 새로운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은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얼마나 생산될지도 모른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 기간에 저위력의 핵 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 전술 핵미사일과 같은 전술핵 개발을 백지화했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에는 한반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로 불리는 무기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미 정부는 아예 전술핵무기라는 용어 자체도 위험하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수백 배 위력의 전략 핵무기 트라이던트를 잠수함에서 발사한다는 걸까? 너무 위력이 강해서 사실상 쓸 수 없는 핵무기다. 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핵무기 접수를 금지한 비핵화 공동선언 때문에 핵을 탑재하고 우리 항구에 기항할 수 없다.

미 본토에서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어떤가? 북극 항로를 통해 오는 미사일은 북한에 도착하기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통과해야 한다. 3차 대전의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양 정상이 강조한 확장억지력은 아직 실체가 없어 이전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품은 핵에 대한 집착과 망상은 여기까지였다. 더 망신스러운 것은 용산의 안보실 관계자가 한국형 핵 공유로 느끼게 될 것이라는 완곡한 언론 브리핑에 대해서도 백악관의 국장급 관리가 나서서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핵 공유는 아니다라고 찬물을 끼얹은 점이다.

중국으로부터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세계은행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금융 위기가 나타날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지목했다.
중국으로부터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세계은행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금융 위기가 나타날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지목했다.

 

예고편만 블록버스터였다니

용산은 이번 정상회담이 동맹국 간에 이익의 균형을 도모하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가치와 이념의 동맹이라고 둘러댄다. 이념을 넘어 실용과 국익을 내세우는 현대의 외교 전쟁에서 이익은 말하지 않겠다는 이런 정상외교는 사실상의 조공에 가깝다.

출국 전에 용산은 한국형 핵 공유 외에도 사이버 정보동맹, 한미 동맹의 격상 등 화려한 수사로 넘쳐났다. 막상 정상회담에 그런 예고편에 걸맞은 성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자 이제는 환호와 박수, 팝송이라는 퍼포먼스로 그 성과가 대체됐다.

게다가 중국으로부터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듣는 처지가 되었고, 러시아는 한국에 군사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본래 군사는 적을 이기는 것이라면 외교의 본질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가치와 이념이 다르면 적이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거침없이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한다면 이는 외교의 본질도 아닐뿐더러 대통령의 품격도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의 국가 생존과 번영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이 정상회담 이후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동맹 앞으로 폭주하는 윤 대통령의 구상과 계획이 전혀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중국으로부터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세계은행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금융 위기가 나타날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 지목했다. 가치와 이념이 밥 먹여주는 것 아니다. 밥 먹여주는 건 여전히 돈의 힘이다. 당장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경제적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이면에 역사적인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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