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파니(Trapani), 지중해와 소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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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파니(Trapani), 지중해와 소금의 역사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5.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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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년 전 카르타고 때부터 염전 시작
에리체 성에서 내려다본 트라파니. 사진 왼쪽의 혀연 논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염전이다. 사진=정연일
에리체 성에서 내려다본 트라파니. 사진 왼쪽의 혀연 논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염전이다. 사진=정연일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②

냉장고의 등장 이전에 식재료의 보관과 저장을 위해서 소금은 반드시 필요했다. 소금의 수요에 비해 생산량은 적어 특히 내륙에서 소금은 귀하고 비쌌다. 소금은 작은 금이라고 할 만큼 부피에 비해 환금성이 뛰어났다. 로마 제국이 병사에게 월급을 소금으로 지불한 것에서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가 나왔다. 그만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서도 다른 물건과 교환 가능했다.

봉급뿐만 아니라 ‘Sal’로 시작하는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 단어와 지명은 소금과 관련이 있는 게 많다. 세일(Sale), 솔져(Soldier), 샐러드(Salad), 소스(Sauce), 소세지(Sausage), 양념(Salsa), 살라미(Salami) 등의 단어가 그렇고, 미국의 살리나(Salina),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 등의 지명도 그렇다. 이탈리아에서는 짜다는 표현은 비싸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짜다는 표현이 구두쇠에 해당하니 모두 돈과 관련이 있다.

로마 공항을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팔레르모 공항 착륙 안내방송이 나왔다.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까지 비행시간은 서울 제주 보다 조금 더 길다. 짐을 찾고 미리 예약해 놓은 차량으로 트라파니로 이동했다. 팔레르모에서 시칠리아 섬의 서북쪽 끝 트라파니까지 거리는 100km가 조금 넘는다. 차량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트라파니에서 시칠리아 여행을 시작한다.


바다를 감시하는 요새였던 곳

시칠리아 섬의 서북쪽 끝이나 트라파니의 끝. 요새 오른쪽은 티레니아 해 왼쪽은 지중해.
시칠리아 섬의 서북쪽 끝이나 트라파니의 끝. 요새 오른쪽은 티레니아 해 왼쪽은 지중해.

트라파니는 작은 도시이지만 시칠리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피자 한 조각 처럼 생긴 시칠리아 섬의 서쪽 끝에서도 트라파니는 바다를 향해 돌출한 반도처럼 생겼다. 반도의 끝에는 100여 년 전에 세운 바다를 감시하는 요새가 있다. 요새의 오른쪽은 이탈리아의 서해인 티레니아해이다.

티레니아해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르데니아 코르시카섬과 이탈리아반도와 남프랑스가 나온다. 요새의 왼쪽은 지중해이다. 지중해 아래로 내려가면 튀니지와 북아프리카다.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반도의 바닷길을 통제할 수 있는 한 마디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동서남북 지중해 바닷길 십자 교차로에 있는 시칠리아섬에서도 서북쪽 끝 요충지에 트라파니가 있다.

반도 왼쪽에는 항구로 적합한 만(Bay)이 있고, 만 옆에는 엄청난 면적(대략 1000ha)의 염전이 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소금 산지이다. 전 세계 바닷가에 수많은 염전이 있지만 트라파니가 유명한 이유는 소금의 질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2000여 년 전 페니키아인의 후손인 카르타고 때부터 염전을 시작한 깊은 역사적 유래 때문이다.

시칠리아는 화산토라 토양이 기름지다. 지중해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동서남북 지중해 바닷길의 교차로이니, 이곳을 차지하려고 수많은 세력과 다양한 문명권이 이 섬에 들어왔다. 게다가 지중해 해양성 기후로 비가 내리는 날은 매우 적고 뜨거운 태양과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 덕분에 소금을 생산하기엔 최적의 환경이다.


바닷물을 퍼올리는 풍차 남아

소금 박물관. 과거엔 염전노동자의 숙소와 소금 분쇄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사진= 정연일
소금 박물관. 과거엔 염전노동자의 숙소와 소금 분쇄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사진= 정연일

 

트라파니 염전은 보통 봄에 염전에 물을 가두고 여름부터 소금을 거두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세네 번 거둔다. 그래서 봄철에 트라파니를 찾으면 소금을 거두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염전에 있는 소금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소금박물관은 과거 염전 노동자의 숙소 건물을 개조했다. 작고 오래된 구시가도 아름답지만, 트라파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염전과 소금박물관이다.

트라파니의 염전은 5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바닷물을 가두는 저수지와,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증발지가 3단계로 나눠져 있다. 마지막은 맺힌 소금을 거두는 곳이다. 풍차를 이용해 바닷물을 퍼올려 저수지에 담고, 중력과 고저 차를 이용해 증발지와 결정지까지 물을 흘려 보낸다. 염전과 염전 사이는 화산암으로 만든 벽돌로 경계를 짓고 수로도 만들었다. 그래서 트라파니 염전의 상징은 풍차다. 트라파니 엽서 사진에는 풍차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현재 풍차는 기능을 상실했다. 염전 사이로 보이는 부서진 풍차. 사진= 정연일
현재 풍차는 기능을 상실했다. 염전 사이로 보이는 부서진 풍차. 사진= 정연일

바닷물을 퍼올리는 것 외에도, 결정지에 단단하게 쌓인 소금을 분쇄할 때도 풍차의 힘을 빌렸다. 지금은 풍차는 상징으로 남았고, 기계 전동장치의 힘을 빌린다. 풍차의 힘이나 또는 사람의 힘으로 깨어 부순 소금은 금속 바구니에 담아 사람의 어깨에 지고 운반을 했다. 염전 노동자의 임금은 고정급이 아니라 몇 바구니를 운반 했냐는 성과급이었다고. 예전의 염전 기록사진을 보면 소금밭 노동은 어디나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가을 추수가 끝난 논의 볏집 무더기처럼, 채취한 소금은 염전 옆에 쌓아 둔다고 한다. 소금의 불순물을 씻어내기 위해 첫 비가 올 때까지 덮개를 씌우지 않았다. 지중해의 강우량은 한국보다 훨씬 적으니, 소금이 모두 녹아내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늦가을에 흙으로 구운 기와를 덮어 소금을 보관했다. 보관한 소금은 가공과정을 거쳐 식용 소금으로 만들었다,

소금박물관에서  파는 소금 기념품. 사진= 정연일

 

진흙 바닥 위의 진귀한 토판염

트라파니 염전의 바닥은 진흙이다. 그래서 트라파니 소금은 토판염이다. 불순물은 더 많지만 여러 미네랄이 풍부하고 맛 또한 뛰어나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모든 공정을 기계화 했지만, 아직도 일부 소금은 예전 방식으로 사람이 직접 거둔다고 한다. 가격은 당연히 사람이 거두는 게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소금을 백금(platinum)에 비유할 만큼 귀한 물질로 여긴 것에 비해, 동양의 사유는 조금 달랐다. 안치환의 노래 소금인형의 가사 원작인 류시화의 시는 19세기 인도 벵갈지방에 살았다는 성자 라마크리슈나의 설법에 근원을 두고 있다.

사람의 인력으로 소금을 부순 도구와 운반용 소금 바구니. 사진= 정연일
사람의 인력으로 소금을 부순 도구와 운반용 소금 바구니. 사진= 정연일

돌인형, 헝겊인형. 소금인형 이 세 인형이 여행하다가 바다를 만났다. 돌인형은 너무 무거워서 바다를 건너다 바다에 가라앉아 버리고, 헝겊인형은 너무 가벼워서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데, 바닷속으로 들어갈수록 소금인형의 몸은 점점 녹아버린다. 노래 가사처럼 마지막 알갱이가 녹아버리는 순간 소금인형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한다. 바다는 브라만 즉 우주를 상징하고 인형은 아트만 즉 자아를 상징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체계가 정말 다르다.
수많은 역사와 세력이 스쳐 지나간 트라파니의 염전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 소금인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도 유럽을 여행 중이다. 글과 사진은 여행 중에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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