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보내기에 좋은 동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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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을 보내기에 좋은 동네는?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05.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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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도시화 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도시빈민 문제에 인생을 바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산 집은 서울 경계선에 있는 방 세 개짜리 빌라였다. 그렇지만 그 시절 내 삶이 너무 힘들었다. IMF 경제 위기로 다니던 연구소가 없어지지는 않았는데, 너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샀는데, 주차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결국에는 송파구로 이사를 갔다. 제일 좋아진 것은 층간 소음은 어쩔 수 없더라도 빌라의 얕은 벽보다는 그래도 좀 방음이 나아져서, 음악을 좀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결국 송파구를 떠난 건, 별 재산도 없는데 ‘강남 좌파’ 소리 듣는 게 좀 그래서였다. 별로 강남도 아니고, 작은 아파트 하나 가지고 그런 소리 듣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하다 보니까 도시공학 공부도 조금 하고, 도시와 관련된 이런저런 연구도 하게 되었다. 

처음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이었다. 가슴이 너무 시원해져서, 더 이상 할 일 없으면 이런 해안가의 작은 집에서 노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20대였다. 프랑스 사람들이 너무 습하고 추워서 류마티즘 걸린다고 다들 아니라고 했다. 영국의 리즈에 갔을 때, 이런 곳에서 조용하게 노년을 보내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마음만 그렇다. 독일 본은 조용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혼자 살기에는 좀 심심해 보였다. 스위스의 쮜리히나 제네바는 특히 좋아하는 도시들이다. 여전히 그런 데에서 노년을 보낼 생각이 조금은 있다. 문화적으로 가장 느끼는 게 많았던 곳은 일본 히로시마였다. 한국과는 직항로도 있어서 실제로 이사갈 생각도 했었다. 

한국에서 살기에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은 울산 북구의 정자항 인근이었다. 정주 조건만 따지면 한국 최고가 아닐까, 현대 시절 울산에 대한 연구를 잘 했다고 아주 좋은 대우를 받았고, 그래서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뜻깊은 도시다. 그렇지만 집값이 좀 비싸다. 

충청도에서는 태안과 보령에도 많이 갔었다. 둘째가 세 살 때 폐렴으로 거푸 입원을 하면서 결국 하던 일들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 결심을 보령에서 했었다. 발전과 관련된 일들도 많이 하다보니까, 발전회사 본사나 현장이 있는 곳에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많은 기억들이 담긴 곳이다. 

아마 나는 늙어서 식구들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여행을 하면서 나중에 늙으면 살고 싶은 곳이라는 시선을 가지고 지역을 살펴본다. 젊어서 살기에 좋은 곳과 늙어서 살기에 좋은 곳은 조금 기준이 다를 것 같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이 희망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20년 내에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도 안락사 같은 게 도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적당히 살다가 좀 아프다 싶으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까 살기에 좋은 조건 ‘정주조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연구를 좀 했는데,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도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병원이나 편의시설만으로 그런 게 결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낭만이 있고, 사색이 있고, 그리고 뭔가 봉사할 수 있는 게 있고, 나는 그런 걸 많이 생각할 것 같다. 그렇다고 시설에서 마지막을 기다리며 버티는 것, 그런 노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나이를 먹으면 운전을 할 수 없는 나이가 온다. 그때 사람들 피곤하지 않게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면서 너무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곳, 나는 아직도 그런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다. 도시계획이나 지역 계획을 세울 때 노년의 삶에 관한 것들을 좀 진지하게 검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정쩡한 관광도시 보다는 몇 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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