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타인 명의 통장 임의 개설·삭제 ‘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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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타인 명의 통장 임의 개설·삭제 ‘들통’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5.18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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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모르게 2019년 휴면계좌로 예탁금 통장 개설 1억 1000만 원 입금
긴급 지원금 전달 과정서 발각, 청주농협 ‘전산 조작 오류’ 군색한 해명

 

동의도 받지 않고 타인 명의의 통장을 개설해 거액을 입금하고 있다가 문제가 되자 폐기까지 한 청주농협 서원지점.
동의도 받지 않고 타인 명의의 통장을 개설해 거액을 입금하고 있다가 문제가 되자 폐기까지 한 청주농협 서원지점.

 

농협이 타인 명의 통장을 임의로 개설하고 삭제까지 하는 상식 밖의 일을 저질렀다. 이 통장에는 1억 원이 넘는 돈이 수년 동안 예치돼 있었다.

농협은 직원의 전산 조작 오류에서 빚어졌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통장 개설과 삭제를 통장 명의자 동의없이 마음대로 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점점 커 가고 있다. 이런 일이 이것 뿐이겠느냐는 의혹도 함께 제기된다.

청주농협 서원지점은 2019716일 자로 김 모(60) 씨 명의의 정기예탁금 통장을 임의로 신규 개설했다. 이 통장에는 남 모 씨의 돈 1100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김 씨는 자신 이름으로 거액이 입금된 통장이 개설된 줄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입금된 돈의 실제 주인인 남 모 씨도 모르는 사이다.

김 씨는 2015126일 이 농협에서 입출식 통장을 개설한 뒤 입출금 거래를 하지 않았다. 휴면계좌였다.

 

통장 개설 어떻게 들통?

 

김 씨는 현재 암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다. 평소에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보험 가입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런 김 씨에게 지인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해 보라고 권유해 올 1월 청주시 흥덕구청을 찾아가 신청했고 월 70여만 원씩 두 달에 걸쳐 지원금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38일 흥덕구청에서 뜻밖의 통보를 받았다. 자신 명의의 농협 통장에 거액(11000만 원)이 입금돼 있어 긴급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통보였다. 구청 측은 이와 함께 지급된 두 달 치 지원금을 모두 반환하라고도 했다.

황당한 소식을 접한 김 씨는 곧바로 통장을 개설했던 청주농협 서원지점으로 가 창구 직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한 후 개설통장 확인을 요구했다. 통장에는 구청 직원의 말대로 자신 명의의 통장에 돈이 입금돼 있었다.

이 통장은 자신이 개설했던 입출식 통장이 아니고 2019716일 자신도 모르게 신규 개설된 정기예탁금이었다. 당시 이 지점에서 근무하던 A(청주농협 본점 근무) 씨가 김 씨 모르게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김 씨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려 했으나 김 씨는 이를 모두 거절했다.

 

청주농협 서원지점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청주농협 서원지점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신규 통장도 농협서 폐기

 

자신 몰래 개설된 통장에 거액이 입금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김 씨는 농협 측에 거래 내역서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농협은 거부로 일관했다.

김 씨는 다른 농협을 찾아 거래내역을 확인하려 했지만 전산망에 뜨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김 씨에게 내용증명 우편물이 날라 왔다. 청주농협 서원지점이 지난 320일 자로 보낸 내용증명은 예탁금 신규 전산 오류 정리 결과 안내였다.

안내문에는 “2019716일 정기예탁금 신규 개설은 담당 직원의 전산조작 오류로 잘못 처리되었으므로 당초 일자 2019716일 자로 신규 취소해 정당한 명의인으로 변경 처리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농협이 신규 통장을 개설하거나 변경처리(삭제) 하면서 통장 명의인인 김 씨의 서명 날인 등 동의를 받지 않고 임의로 개·폐한 것이다.

농협은 이 통장에 입금돼 있던 11000만 원은 원주인에게 되돌려줬다고 한다.

김 씨는 내 명의의 신규 통장 계좌번호와 거래내역서를 보여 달라고 해도 거부하더니 끝내는 임의 폐기 처분하며 증거 인멸을 시도하는 무리수까지 뒀다농협이 저렇게 나오니 내 명의 통장뿐만 아니라 남의 통장을 갖고 또 무슨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남의 통장에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돈이 수년동안 입금된다는 것이 현 금융시스템에서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하고 원주인에게 돈을 돌려준다면서 동의 없이 멋대로 통장을 없앴다는 것은 또 다른 범죄행위가 아니냐고 주장했다.

농협 측은 고의가 아니고 담당 직원의 전산조작 오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농협 관계자는 “(통장을 개설한) 원인무효 행위를 되돌리기 위해선 통장을 취소해야 하는데 김 씨와 연락이 안 돼 동의 없이 변경처리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 달라청주시에 상황을 설명해 (김 씨의) 긴급 지원금 지급에 차질이 가지 않도록 했다. 고의가 있었다면 담당 직원을 사법당국에 고발 조치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자체 마무리 지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충북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 이 사건을 인지하고 수사 중이나 아직까지 뚜렷한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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