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 위기 ‘본(本)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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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은행 위기 ‘본(本)게임’이 시작됐다
  • 백정현 전문기자
  • 승인 2023.05.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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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뱅크-퍼스트리퍼브릭뱅크-팩웨스트뱅코프 ‘추풍낙엽’
불가피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단기자금 수익률, 장기투자 추월
지역은행 상업용 부동산 올인에 공실률 폭증 ‘파산 도미노’ 우려
높은 금리를 유지하자니 은행들이 울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금리를 낮추자니 높은 물가에 신음하는 국민이 운다. 미국이 빠진 딜레마다.
높은 금리를 유지하자니 은행들이 울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금리를 낮추자니 높은 물가에 신음하는 국민이 운다. 미국이 빠진 딜레마다.

513일 일본 니카타현에서는 5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렸다. 우리 정부를 대표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도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 직후 채택된 공동성명에서는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국 및 유럽(스위스) 발 은행위기와 이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언급됐다. 은행위기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더는 확산하지 않도록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공동으로 취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다양한 매체가 미국발 금융 위기가 사실상 해소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뱅크 파산과, 이어진 미 금융당국의 긴급조치인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ank Term Funding Program·BTFP) 시행으로 은행위기 이슈가 안정 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 은행 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미국 옐런 재무장관이 최근 G7 재무장관회의에서 자국의 은행 위기를 주제로 시급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은행 산업이 이미 거대한 수렁의 입구를 지나 본격적인 위기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살펴본다.


미국 은행 위기의 서막을 연 것은 38일 파산을 신청한 실버게이트 은행이었다. 실버게이트 은행의 파산은 요즘 한창 국내 정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암호화폐 시장의 급변동에서 출발했다. 20225월 터진 테라-루나 사태와 그 여파로 발생한 11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은 결국 은행 자산의 일부를 코인 산업에 투자 중이던 실버게이트 은행의 파산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틀 뒤인 10일 미국 내 16위 규모 은행 실리콘벨리뱅크 모기업인 SVB 파이낸셜 그룹이 파산하며 미국발 은행 위기가 본격화한다.

은행이 보유한 자산 상당수가 안전자산을 대표하는 장기국채에 투자돼 있었고,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급매하는 과정에서 입은 손실이 파산을 가져왔다. 그 여파 속에 이틀 뒤인 312일 뉴욕주 금융당국(DFS)은 고객 예금의 지급불능을 이유로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은행의 예금과 대출을 뉴욕 커뮤니티 은행(NYCB)에 매각했다. 시그니처 은행 폐쇄는 실버게이트 은행과 마찬가지로 자산의 암화화폐 투자에서 입은 손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51일 미국 내 자산규모 14위의 거대 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이 JP모건에 인수됐다. 특히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B)의 몰락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미국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이슈를 시작으로 SVB 파산 직후 위기설에 휩싸이자 FRB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에서 총 300억 달러의 자금을 차입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막대한 자금 차입도 예금자들이 은행을 떠나는 속도를 감당하는데 역부족이었다.

결국 금융당국은 2022년 말 기준 자산규모 2126억 달러(277조 원) 몸집의 FRB를 미국 자산규모 1위 은행인 JP모건에 떠안기며 사태를 수습한다. 실리콘벨리뱅크 파산 직후 나온 미국 정부의 각종 조치와 거대 은행들의 자금지원조차 FRB의 몰락을 막지 못한 것이다. 금융시장은 JP모건 FRB인수로 은행 위기가 일단락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이도 잠시, 510일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지역은행 팩웨스트뱅코프에서 고객예금이 급감하며 주가가 폭락한다. 미국 금융계는 지역은행인 팩웨스트뱅코프 위기가 미국 내 6000여 전체 은행의 96%를 넘는 지역은행 위기로 확산할지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붕괴의 공통점은 예금인출

미국 전체 상업은행 예금 추이. 은행위기가 시작된 3월 초부터 급격히 하락한 모습. 자료=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미국 전체 상업은행 예금 추이. 은행위기가 시작된 3월 초부터 급격히 하락한 모습. 자료=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3월부터 현재까지 무너진 미국 은행들의 파산원인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실리콘벨리뱅크를 비롯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이르기까지 각 은행이 지닌 고유의 아킬레스건을 찢어버린 화살은 다름 아닌 예금인출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자 보호 제도(FDIC)를 통해 은행 고객의 예금을 최대 25만 달러(한화 33500만 원 정도)까지 보호한다.

SVB 사태 직후 미국 금융당국은 미국 내 예금주 예금 전액을 보호하겠다며 뱅크런 확산을 차단한 뒤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곧바로 말을 바꾼다. 아무튼 현재 미국 은행 산업은 예금자 보호 제도 밖에 있는 고액 예금을 중심으로 자금의 은행 탈출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모든 은행의 재무상태표는 기본적으로 고객의 예금과 자기자본이 대변에, 대출, 유가증권 투자 등 포트폴리오가 차변에 표기되어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이 중 은행 부채에 해당하는 고객 예금이 급격히 줄면서 예금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들이 진행한 보유자산 매각이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을 훼손하면서 파산에 이르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은 미국 정부가 발행한 장기국채를 매입가격보다 낮은 시장가격에 매각하면서 파산했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대규모 자본차입으로 유발된 금융비용이 자기자본비율을 훼손했다. 그렇다면 거액 예금자들이 앞을 다퉈 미국 은행을 빠져나가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


단기자금시장으로 쏠림 심화

거액의 자금이 앞을 다투어 몰려들고 있는 시장은 다름 아닌 단기금융시장이다. 미국의 단기금융시장은 연방준비제도(FRB)가 운영하는 연방기금 시장을 비롯해 환매조건부채권(Repo)시장, 단기 기업어음이 거래되는 기업어음(CP)시장, 머니마켓펀드가 발행하는 단기 MMF 투자증권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구성된다. 중요한 것은 이 단기자금시장이 장기투자 시장을 추월해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높은 수익률이 다름 아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 정책 때문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미국 정부의 기준금리라고 부르는 연방기금금리는 실제 하루 동안 은행끼리 빌려주고 빌리는 연방기금 시장의 이자율을 말하는데, 이 시장에서 붙는 금리가 10년 이상 장기금리를 압도하는 기이한 현상이 지속되는 중이다. 이제는 경제 상식이 되어버린 단기 금리 차라는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단기로 돈을 굴리는 대가가, 장기로 돈을 굴리는 대가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되는 순간 은행은 경쟁력을 잃는다. 단기로 예금자들에게 돈을 빌려 기업에게 장기로 대출하는 사업이 은행의 영업방식이기 때문이다.

예금자들은 은행에 자금을 예치할 유인을 잃고 은행에서 자금을 공급받아야 할 기업과 개인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빠진다. 바로 경기침체다. 경제학자들은 장단기 금리 차가 마이너스 구간으로 진입하는 역전현상이야말로 경기침체를 전망하는 가장 확실한 징후로 손꼽는다. 현재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역사상 최대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딜레마에 빠진 미국 중앙은행

10년 만기 국채금리에서 3개월 만기 국채금리를 뺀 값으로 현재 마이너스 상태이며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훨씬 높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2008년 금융 위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자료=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10년 만기 국채금리에서 3개월 만기 국채금리를 뺀 값으로 현재 마이너스 상태이며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훨씬 높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2008년 금융 위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자료=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결국 3월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미국 은행 위기는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상이 만든 결과다. 미국 은행 자금이 대규모로 단기금융시장의 높은 수익률을 좇아 이동하며 연쇄적인 은행파산이 일어났다. 결국 현재 미국 은행 산업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단 하나,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을 중단하고 이를 인하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물가라는 복병이 있다. 여전히 미국은 살인적인 물가로 신음하고 있고, 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말고는 물가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높은 금리를 유지하자니 은행들이 울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금리를 낮추자니 높은 물가에 신음하는 국민이 운다. 1년 뒤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이미 금융정책 결정을 비롯해 미국 사회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 이벤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중앙은행의 딜레마를 뒤로하고 실물경제는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침체 조짐을 보인다.

부동산 경기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미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20231분기 12.9%를 기록하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무실 수요가 감소하고, 온라인 쇼핑 증가로 소매 부동산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타 그룹(CoStar Group) 등 미국 내 주요 부동산 리서치 회사들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을 통해 미국 내 부동산 경기침체가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 중이다.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은행 위기의 본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차주(대출자)의 채무 불이행(연체 및 파산)을 강력하게 예고하는 현상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은행 위기 양상은 공통으로 예금주들이 자신의 예금을 찾으면서 파생된 현상이지만, 장단기 금리 차가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며 발생할 문제는 은행들이 실제로 부실채권(credit loss)을 안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은행 산업 전반이 미증유의 위기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치솟고 있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미국 내 상업용 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지역 은행들에게 대규모 부실채권을 안기는 최대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백정현

대표적 풀뿌리신문인 옥천신문 기자, 편집국장을 지냈다. 팟케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PD라는 명함을 얻었다. 짧은 국회 보좌관 활동을 거친 뒤, 지금은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에서 금융정책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2008년 옥천신문에서 출판한 ‘자전거타고 옥천에서 보물찾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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