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59세부터 변혁 운동, 18년간 6번 구속-11년 수감 문익환
3. 바티칸시국까지 1만1000km 뛰어가 교황 만나는 강명구
#옴니버스1화- 우공이산 그리고 마운틴맨
‘열자(列子, 기원전 400년경 중국 정나라 사람)’의 저서에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이야기가 나온다. 기주(冀州)에 있는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살았는데, 이 두 산이 가로막아 불편하니 자식들과 함께 산을 옮기기로 하고 실행에 들어갔다는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다. 이때 우공의 나이가 90세에 가까웠다고 한다.
우공은 비웃는 친구에게 “나는 늙었지만,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산을 옮길 수 있는 반면에 산이 더 불어날 리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단다. 결국 산신령이 겁을 먹어 옥황상제에게 보고했고 상제가 역사(役事)해 두 산 중 하나는 삭동(朔東)에, 하나는 옹남(雍南)에 두게 했다는 것이 ‘우공이산’의 결론이다. <열자>는 동양의 <이솝 우화>라는 평을 받는데, 우공이산이 우화가 아님을 입증한 실존 인물이 인도에 살았다.
수도 델리에서 1300km나 떨어진 인도 북동부 오지마을에 살았던 만지히(2007년 작고) 씨다. 만지히 씨는 마을을 가로막는 돌산을 넘다가 다쳤으나 길이 없어 병원조차 가보지 못하고 죽은 젊은 아내를 애도하며 22년 동안 오직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쪼아 길을 낸 인물이다. 55km를 돌아가야 하는 길은 6km로 단축됐다. 주 정부는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렀고, 2015년 <만지히 : The mountain man>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옴니버스2화- 고난의 길 자처한 문익환 목사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라고 시작하는 시가 있다. 통일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문익환 목사가 ‘공안통치’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9년 1월에 발표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도입부다.
같은 시에서 “역사를 산다는 것”은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썼던 문익환 목사는 그해 3월 25일 진짜로 방북해 4월 3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하고, 허담 조평통 위원장 ‘4.2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윤동주 시인과 북간도 명동학교를 함께 다녔던 문익환 목사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고 공동번역성서의 책임번역자를 맡을 만큼 기독교계의 중심인물이었다. 하지만, 59세가 되던 1976년에 친구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계기로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는 등 변혁 운동에 뛰어들면서 고난의 길을 자처했다.
1918년생인 문익환 목사는 1994년 77세를 일기로 작고했는데,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이후 말년까지 18년 동안 무려 여섯 차례나 투옥돼 11년을 옥중에서 보냈다. 감옥에 들어가서 억압받는 민중들을 만나고, 통일운동을 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 청년 예수를 만난 문익환 목사 역시 ‘우공(愚公)’이었다.
#옴니버스3화- 뛰어서 교황 만나러 가는 강명구
약 400여 일 동안 ‘아시럽(아시아+유럽. 유라시아와 같은 개념)’ 남단 1만1000km를 뛰어서 교황이 사는 바티칸시국(-市國)까지 간다는 우공이 있다. 2022년 8월 23일 제주도 한라산에서 출발해 남한 땅을 달렸고 9월 23일, 임진각에서 ‘평화출정식’을 가진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해외일정을 시작했다. 5월 말 현재 그는 크로아티아를 달리고 있다.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씨의 이야기다. 여정을 살펴보면 그가 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단 그의 1차 목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남북 정상 등이 정치적으로 짓 주물러온 위장평화가 아니라 진짜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 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2023년 성탄절, 판문점에서 평화 미사를 집전해달라고 직접 부탁할 예정이다. 교황 앞으로 보낸 편지에 “한반도의 가장 아픈 질곡인 판문점에서 교황 성하께서 치유와 상생과 화해의 크리스마스 성탄미사를 집전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한반도 통일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면서 “교황 성하의 결심만 서면 BTS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에게 공연을 간절히 요청하겠다”고 썼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6월 28일 오전 9시(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바티칸 미사의 맨 앞줄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기쁜 소식은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을 통해 전해졌다.
유흥식 추기경은 강명구 씨의 평화 마라톤을 돕고 있는 송인엽 전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소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강 마라토너님의 교황님 알현이 이미 준비되었다’고 들었다”며 “대사관에서 강명구님을 위해 일을 잘 처리해 주었다니 저도 기쁘다”고 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네 번째 추기경인 유흥식 추기경은 2021년까지 대전교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답신에서 6월 하순부터 한 달여 동안 남아메리카 출장으로 인해 강명구 씨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강명구 씨의 평화마라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는 이준 열사의 한이 서린 헤이그에서 유라시아 북단 1만4500km를 뛰어서 서울까지 왔다. 선친의 고향이 있는 북녘땅을 달리기 위해 중국 단둥에서 방북 허가를 기다렸으나 끝내 좌절됐다. 60대 후반인 그는 2020년 발병한 뇌경색으로 인해 3개월 병원 신세를 졌으며, 지금도 말이 어눌하고 몸 오른쪽이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