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중 특송 협의 중…현지에서 별도 공연도 준비 중
약 400여 일 동안 ‘아시럽(아시아+유럽. 유라시아와 같은 개념)’ 남단 1만1000km를 뛰어서 교황이 사는 바티칸시국(-市國)까지 달리는 사람이 있다. 2022년 8월 23일 제주도 한라산에서 출발해 남한 땅을 달렸고 9월 23일, 임진각에서 ‘평화출정식’을 가진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 해외일정을 시작했다. 5월 말 현재 그는 크로아티아를 달리고 있다.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씨의 이야기다. 여정을 살펴보면 그가 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일단 그의 1차 목표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남북 정상 등이 정치적으로 짓 주물러온 위장평화가 아니라 진짜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 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2023년 성탄절, 판문점에서 평화 미사를 집전해달라고 직접 부탁할 예정이다. 교황 앞으로 보낸 편지에 “한반도의 가장 아픈 질곡인 판문점에서 교황 성하께서 치유와 상생과 화해의 크리스마스 성탄미사를 집전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한반도 통일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면서 “교황 성하의 결심만 서면 BTS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에게 공연을 간절히 요청하겠다”고 썼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6월 28일 오전 9시(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바티칸 미사의 맨 앞줄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기쁜 소식은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을 통해 전해졌다. 유흥식 추기경은 강명구 씨의 평화 마라톤을 돕고 있는 송인엽 전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소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 관계자로부터 ‘강 마라토너님의 교황님 알현이 이미 준비되었다’고 들었다”며 “대사관에서 강명구님을 위해 일을 잘 처리해 주었다니 저도 기쁘다”고 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네 번째 추기경인 유흥식 추기경은 2021년까지 대전교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답신에서 6월 하순부터 한 달여 동안 남아메리카 출장으로 인해 강명구 씨를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씨가 교황청으로부터 초청받은 6월 28일 바티칸 시국 미사에 청주에서 ‘산(山)오락회’라는 팀으로 활동하는 김강곤 음악감독과 조애란 명창도 초대를 받았다. 강명구 씨는 이들이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 중에 특송을 부르도록 추천할 계획이다.
강명구 씨는 극심한 허리통증으로 인해 일정을 일시 중단한 5월 25일, 크로아티아에서 충청리뷰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강명구 씨는 “바티칸 도착일을 7월 1일로 잡았지만, 여유 있는 일정이어서 교황 미사가 있는 6월 28일까지 뛰어갈 계획이었는데 허리통증 때문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하루 이틀 몸을 추슬러서 최대한 일정에 맞춰보겠다”고 말했다.
강 씨는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교황이 직접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황청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면서 “일단 미사 맨 앞자리에 세 석을 배정받았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조력자인 송인엽 전 코이카 소장과 민성효 원불교 교무가 배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강곤 감독과 조애란 명창을 현지로 초청한 것은 강명구 씨다. 강 씨는 작년 8월 23일 제주를 출발해 임진각까지 달리는 과정에서 9월 13일 청주를 경유했고, 이날 저녁 ㈜와우팟(대표 김재원) 스튜디오에서 후원 생방송을 진행했다. 김강곤, 조애란은 이날 방송의 축하 공연 게스트였다.
강 씨는 “미사에서 특송을 부를 수 있도록 교황청과 협의하고 있다”면서 “미사와는 별도로 실내 또는 실외에서 한복 패션쇼와 공연 등으로 민간외교를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명구 씨의 바티칸 일정과 관련해 현지에 합류하는 한국인은 현재 열여섯 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공연 관계자는 청주의 두 사람과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 씨 등이다. 하 씨는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크로아티아 등에서 열린 환영회 등에 합류해서 강 씨의 평화 마라톤을 응원해 왔다.
김강곤 감독은 “6월 28일 오전 7시까지 교황청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23일쯤 미리 도착해 각종 일정을 준비하는 등 일주일 정도 바티칸에 체류하겠다”고 밝혔다. 조애란 명창은 국내 일정 때문에 27일~29일까지 초단기 일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강명구 씨의 평화 마라톤을 적극 지지하며 판문점에서 평화 미사가 성사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교황의 모국이 아르헨티나인 점을 고려해 2009년 작고한 아르헨티나의 국민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비롯해 남북의 평화를 주제로 한 노래들을 선곡할 계획이다.
평화의 나비효과 실현 중
청주에서는 두 사람의 바티칸 방문을 응원하기 위한 후원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다. 여행 준비를 돕고 있는 이황휘 블라씨유(북방 전문여행사) 대표는 “현재 400만 원 정도가 모였다”며 “6월 15일 후원의 밤을 열어 장도를 축하하고 재정적으로도 후원하겠다”고 귀띔했다.
가야금 연주자 하소라 씨도 바티칸 행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하 씨는 “한국음악과 함께 공공외교, 문화외교에 관심이 많아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평화를 위해 뛰는 강 선생님을 너무 존경하고 공연으로 힘을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강조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유라시아(유럽 → 아시아)북단 1만4500km를 달려 한국까지, 2022년부터는 제주도를 출발해 아시럽(아시아 → 유럽) 남단 1만1000km를 달려 바티칸시국까지 가는 평화 마라톤은 이미 ‘나비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2020년 뇌경색으로 반신이 불편한 강명구 씨는 조깅용 유모차를 밀며 달린다. 유모차에 붙인 현수막에 쓰인 한국(KOREA)과 평화(PEACE)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전 세계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임남희 씨는 강명구 씨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에서 첫 평화 마라톤을 시작할 때에도 파리에서 헤이그까지 날아가 응원했다. 임 씨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마라톤을 출발할 때도 8월 23일, 9월 23일 각각 제주도와 임진각 출정식에 참여했다.
임남희 씨는 “2017년 평화를 바라는 해외교포들의 단톡방에서 강명구 씨의 평화 마라톤 계획을 알고 하룻밤 사이에 1700달러를 모금해 헤이그까지 갔다”며 “당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출정식 장소 제공을 거부하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네덜란드 경찰들이 행사를 응원해 줬다”고 추억했다.
임 씨는 또 “강명구 씨가 북녘땅 통과를 시도할 때는 평양에 가서 기다렸다”며 “프랑스 국적이라서 북한 방문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임 씨는 “강명구 씨의 평화 마라톤을 열렬히 지지하지만 교황 알현이 ‘종교사대’라는 생각도 든다”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