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글 편지를 관광자원으로(하)- 문화산수 속리구곡 연계 새 보은관광지도 만들자
상태바
첫 한글 편지를 관광자원으로(하)- 문화산수 속리구곡 연계 새 보은관광지도 만들자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6.01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운 민우식, 화개동~삼가동 간 속리구곡 설정, 금적산·계당·계정 활용 방안도
보은군, 속리구곡 관광길 조성사업 추진, 나신걸 부부 묘 관광자원 가치 ‘충분’

 

화운 민우식이 설정한 속리구곡. /출처= 보은사람들
화운 민우식이 설정한 속리구곡. /출처= 보은사람들

 

나신걸 한글편지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편지다.

조선 초기 군관 나신걸(1461~1524)이 아내 신창맹씨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2장의 편지다.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시대 신창맹씨 묘에서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편지 내용에 1470~1498년 동안 쓰인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가 나오고,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라는 점을 들어 이 시기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특히 나신걸 한글편지가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편지가 1490년대에 쓰였음을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됐음을 말해준다.

한글이 조선시대 여성 중심의 글로 인식된 것과는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썼다는 것은 남성들도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글이 조선 백성들에게 깊숙이 알려져 실생활에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경북 안동시가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킨 원이 엄마 편지1586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남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담긴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면, 나신걸 한글편지는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대전시의 토지수용정책에 따라 이장이 불가피했던 안정나씨 회덕파 종중14기는 보은군 탄부면 매화리 선산에 안장돼 있다. 편지는 대전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보은에는 나신걸 부부 묘가 존재한다.

안정나씨 대종회는 지난 59일 회덕파 선산에서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지정 기념 고유제를 지냈다.

언어학적 사료 가치가 큰 나신걸 한글편지가 보물로 지정됐고 나신걸 부부도 보은에 잠 들어 있는 점을 고려해 관광문화유산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환경 활용한 유교문화

 

서원계곡. 아름다운 산수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해 제2의 화양계곡이라 불린다.
서원계곡. 아름다운 산수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해 제2의 화양계곡이라 불린다.

 

보은엔 그 유명한 속리산과 법주사, 구병산이 있다. 여기에 금적산(金積山·652m)과 최흥림의 계당(溪堂)과 계정(溪庭), 속리구곡이 있다. 이들 관광자원에 나신걸 한글편지를 더해 새로운 보은 관광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 금적산은 보은 삼산(三山)중 하나다. 속리산은 아버지, 구병산은 어머니, 금적산은 아들산으로 불린다. 이 산에는 전 국민이 3일간 먹을 수 있는 보배가 묻혀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에 있는 계당과 계정은 2019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됐다.

계당은 조선 중기 학자인 최흥림(崔興霖, 1506~1581)이 명종 1(1545) 을사사화로 많은 사림(士林)들이 화를 입자 벼슬 뜻을 버리고 보은으로 낙향, 은거한 곳이다. 이곳에서 성운(成運), 조식(曺植), 성재원(成悌元) 등과 교류하며 학문을 닦았고 후학을 가르쳤다.

계정은 금적산 정상부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이용한 자연정원이다. 계당 앞마당에는 바위를 파내어 물길을 만들고 계곡수를 끌어들여 풍류를 느끼게 한다.

충북지역에서는 드물게 자연환경을 활용한 유교문화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때마침 보은군은 유교문화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해 문화산수 속리구곡 관광길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속리구곡은 화운(華雲) 민우식(閔禹植·1885~1973)이 설정했다.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서원계곡 입구~속리산면 삼가리 일원에 걸쳐 있다.

민우식은 제1곡부터 9곡까지의 명칭을 기존의 유적과 지명을 포함해 유학의 도와 관련된 내용을 감안해 명명했다. 유학자들은 글을 짓는데 재도지기(載道之器)와 관도지기(貫道之器)의 관점을 가졌다. 재도지기는 글은 도를 싣는 그릇, 관도지기는 도를 꿰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즉 문학에는 유학의 도, 인생의 도를 담아야 한다는 이론이다.

 

금적산. 속리산·구병산과 함께 보은 삼산(三山)중 하나다.
금적산. 속리산·구병산과 함께 보은 삼산(三山)중 하나다.

 

속리구곡 관광길 조성

 

민우식의 문집 화운유고(華雲遺穚)에 실린 속리구곡은 1곡 화개동, 2곡 북두문, 3곡 서원촌, 4곡 황애동, 5곡 도치, 6곡 안도리, 7곡 흠앙곡, 8곡 용진, 9곡 삼가동으로 이뤄졌다.

1곡 화개동(花開洞). 일곡화개고동춘(一曲花開古洞春·1곡이라 오래된 화개동에 봄이 왔는데) 도원종차가심진(桃源從此可尋眞·도원은 여기부터니 진리를 찾을만 하도다)

민우식은 지금의 장안면 개안리인 속리 제1곡 화개동 일대를 복숭아꽃이 떠가는 무릉도원으로 간주할 정도로 신선경으로 봤다. 1곡부터 선경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을 표출했다.

2곡 북두문(北斗門). 기암여립우여준(奇巖如立又如蹲·기이한 바위가 서 있는듯 또 걸터앉은 듯하네) 저리미망조화혼(這理微芒造花渾·저 미묘한 이치, 조화옹이 만든 것이라네)

북두문은 1곡 화개동(개안리)에서 장안리 북쪽으로 약 1떨어져 있다. 두 산이 양쪽에 솟아 대문 같은 형상, 즉 문설주 모양으로 보여 명명했다. 북두문이라고 명명한 철학적 연원은 논어 위정(爲政)의 내용을 염두하고 지었다. 즉 뭇별이 안고 돌 듯 임금의 덕화가 온 천하에 미친다는 뜻을 원용했다.

3곡 서원촌(書院村). 삼곡심심간일촌(三曲深深澗一村·3곡이라 깊고 깊은 시냇가에 자리잡은 한 마을) 백수한옹과치손(白首閑翁課穉孫·흰머리의 한가한 노인 어린 손자들 가르치고 있네)

서원촌은 2곡 북두문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다.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 상현서원이 있어 서원촌이 됐다. 상현서원은 1555년 지금의 삼년산성 안에 건립됐는데 1672년 장안면 서원리로 이전했다. 민우식은 상현서원이 있는 마을을 3곡으로 설정했다. 일면 교육의 중요성을 천명한 것이다.

4곡 황애동(荒崖洞). 사곡황애초수심(四曲荒崖艸樹深·4곡이라 거친 언덕에 풀과 나무가 무성하며) 뢰유선양일로심(賴有線陽一路尋·겨우 한줄기 햇볕 따라 한가닥 길을 찾겠구나)

거친 언덕에 초목이 무성하다. 그래서 대낮인데 청산이 어두컴컴하다. 누가 양의 창자같은 험난한 곳을 파내고 깨부수었느냐고 묻는다. 깨버리고 나니 한줄기 햇볕을 따라 한가닥 길을 찾는다. 즉 어려움을 극복해야 밝은 햇빛처럼 밝음과 좋음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이입했다.

 

계당. 조선 중기 학자 최흥림이 낙향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계당. 조선 중기 학자 최흥림이 낙향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속리구곡은 무릉도원

 

5곡 도치(道峙)로 가보자. 태고운심송유학(太古運心松有鶴·오래된 구름 속 소나무에 앉아 있는 학이) 일성규파사산청(一聲叫罷四山靑·한번 우니 사방의 산이 푸르네)

4곡 황애동에서 북동방향으로 약 500m 지점에 있고 인가가 없는 U자형의 구비로 4곡 황애동의 좌청룡능선(회넘이재능선) 너머에 있는 공간이다. 이름 그대로 도를 닦는 고개라는 뜻이다. 민우식은 여기도 신선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6곡 안도리(安道里). 양삼가재백운심(兩三家在白雲深·두 세집이 흰 구름 깊은 곳이 있네) 언어비약본초심(鳶魚飛躍本初心·솔개와 물고기 날고 뛰노는 것 본래의 초심이라)

편안하게 도를 닦는 마을이다. 자연을 통해 도를 닦을 수있다. 자연 속에 사는 평범한 동물과 솔개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각성할 수 있다. 이곳엔 1988430일 천연기념물 제352호로 지정된 정부인(貞夫人) 소나무가 있다.

7곡 흠앙곡(欽仰谷). 청산만첩수천회(靑山萬疊水千回·천 산은 만 겹으로 둘러싸고 물은 천 번을 감도네) 엄엄덕립당우색(嚴嚴德立唐虞色·높고 높이 덕을 세우니 당우시대 풍색)

청산은 만 겹으로 둘러싸이고 물은 천 번을 감돈다. 높은 산을 공경스레 우러러본다, 이는 시경(詩經)의 고산앙지(高山仰止), 경행행지(景行行止), 높은 산을 우러러봄이여 큰길을 따라 가도다를 원용했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최고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이 막히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 즉 이 의미도 알아차리리라는 말이다.

8곡 용진(龍津)을 보자. 잠가연심비가천(潛可淵深飛可天·연못에 잠기기도 하고 하늘을 날 수도 있네) 출처수시임자연(出處隨時任自然·나가는 곳 때에 따라 자연에 맡기네)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녔다. 용의 능력은 무궁무진해서 자신이 연못에 잠겨 있고 싶으면 잠겨 있고, 하늘을 날고 싶으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또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하는 도술을 부릴 수 있다. 여기에 오면 전지전능한 용의 기상을 받을 수 있는 신령한 곳이라고 암시한다.

9곡 삼가동(三佳洞). 도화유수차중진(桃花流水此中眞·복사꽃 흘러내려오니 이 가운데 진경이 있네) 원시선관강제신(宛是仙官降帝宸·완연 여기가 바로 선관이 강림한 황제의 궁전인 것을)

세가지가 아름다운 마을, 삼가리다. 삼가동에 유별난 봄이 있다. 즉 복숭아꽃이 흘러내리는 이 가운데에 참 경치가 있다. 참 경치는 무릉도원 즉 신선경이다.

민우식은 하류 1곡에서 복숭아꽃을 통해 무릉도원을 예고했다. 9곡 삼가동이 무릉도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도인의 풍채가 옥처럼 따스하다. 삼가동은 신선이 노니는 황제의 궁전이다. 민우식은 현실의 공간을 이상의 공간, 즉 신선의 세계로 간주했다.

 

한글편지 관광자원 검토

 

민우식의 속리구곡과 속리구곡시는 주자의 무이구곡과 무이도가를 본떴다.

첫재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사실을 염두하고 구곡의 명칭을 인식하기 쉽게 하기 위해 속리구곡이라 명명했다. 둘째 속리구곡이 신선의 세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셋째 민우식의 생존연대로 보아 1900년 중반 전후까지로 구곡에 대한 인식이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구곡이 자연산수에서 문화산수로 전환하고 자신의 사실을 이입하는 문화 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우식은 경북 문경에 있는 쌍룡계곡(雙龍九曲)에 쌍룡구곡시도 지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속리산에 구곡을 정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의도적으로 속리구곡을 정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주(69·한문학 박사·전 중원대 교수) 구곡 전문가는 나신걸 한글편지는 비록 대전에 있지만 그 편지의 주인공 부부가 보은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보은은 무한가치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셈이라며 이같은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어떻게 관광유산으로 만드느냐는 보은군과 안정나씨 대종회, 보은군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보은군 우경수 부군수는 나신걸 한글편지를 보은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