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것인가, 후쿠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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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것인가, 후쿠시마
  • 이지상 가수
  • 승인 2023.06.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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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곶감보다도 무서운 방사성물질
이지상 가수
이지상 가수

믿자. 믿어보자. 까닭도 없이 믿어보기로 하자. 버젓이 들리는 미국 대통령의 이름도 날리면이 되는 세상인데 못 믿을 게 무엇이 있을까.

후쿠시마 원자로의 냉각수가 절대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를, 냉각수 방출을 은근 독려하는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보고서를, 흔히 오염수라 부르는 냉각수를 좋은 기계 돌려 안전하게 만들었으니 처리수 라고 부르자는 정부 여당 어느 기구 수장의 말도 순도 99.99%로 믿어보자.
 

 

기왕에 믿기로 한 이상 칭찬과 격려를 아낄 필요도 없겠다. 아무리 나쁜 물질이라도 사람 몸에 득이 되는 것이 만 개 중 하나는 있을지도 모르니 그 점을 부각해 영양수로 불러도 좋을 듯했으나 명확한 과학 검증으로 국민들의 오염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처리수라는 말은 그럴듯했다.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 TF의 국민의힘 성일종 위원장을 칭찬한다. 쓰레기 버리는 것을 보통 투기(投棄)라 하는데 방류(放流)라는 말로 오염수 이미지를 순화시켜주는 모든 언론님들에게는 감사를 드려야겠다.

오염수 방류 떠들면 수산물만 안 팔린다는 통영시장님의 지역사랑 정신에는 격려를, 내친김에 방류를 넘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까지 팔아보자는 일본의 속내까지도 묵언으로 용인하는듯한 우리 대통령실의 문경지교(刎頸之交)는 가깝고도 친한 나라로써 예의를 다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대통령께서는 이미 일본 극우의 상징 게이오대학에서 조선 침략론의 주역인 오카쿠라 텐신을 시대의 사상가로 추켜세웠고, 기시다 총리와는 친히 한국형 소맥을 말아 드시며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우정을 나눈 적이 있다. 칭찬한다. 지지율 1%가 되더라도 할 건 다하시라.

도쿄 전력의 절약 정신도 본받을 만하다. 지하매설이나 수소 방출 같은 냉각수 처리 방식을 놔두고 해양 방출이라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관철시키고 있다. 비용을 무려 50배나 줄였다. 가동 중인 25개 중 24개가 손상됐다는 다종 핵 제거 설비 알프스(ALPS)를 운용하면서도 매서운 눈초리로 검증하러 온 듯한 한국 시찰단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역시 칭찬한다.

한국 시찰단의 잠행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들어 명단공개는 물론 일본에서의 활동도 최소한의 것만 발표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일본 정부는 그렇게도 안전한 냉각수를 방류하면서도 자국의 어민들에게 4조 원의 배상액을 편성했다. 역시 경제 대국의 애민정신은 남다르다.
 

 

만국의 술꾼들이여 궐기하라

 

그럴리야 없지만 절대 없지만 만에 하나, 0.01%라도 후쿠시마 처리수가 오염수가 되고 방류가 아니라 투기가 되고 세슘이니 스트론튬, 플로토늄이니 삼중수소니 하는 방사성 물질이 태평양을 오염시키고 한반도의 바다를 오염시켜 우리가 바다를 등져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개탕을 끓인다.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낸다. 적당히 우려난 국물에 조개를 넣고 한소끔 끓어 오르면 파와 청양 고추 넣고 소금 간으로 마무리. 간밤의 숙취를 해소하기에 더없이 좋은 음식이다. 그걸 못 먹게 된다는 것 아닌가.

우럭젓국, 황태해장국, 통오징어찜, 가자미식해, 한겨울의 매생이굴국, 한여름의 자리 물회, 봄마다 도다리쑥국, 가을엔 전어구이, 뭐하나 남아 나는 게 없이 사라진다.

강릉 앞바다 청정 심해를 퍼 올려 간수로 만드는 초당 순두부, 동해안 최북단 고성부터 울진 포항까지 언제든 믿고 먹는 물메기탕(꼼치탕), 부산 기장이나 남해의 죽방렴 멸치, 마산의 아귀찜, 막걸리 한 통에 열댓 가지 해물이 안주로 나오는 통영 다찌, 순천만의 문저리와 짱뚱어탕, 벌교의 꼬막정식, 목포 세발낙지, 서해안의 게국지, 갱개미 무침, 박속 낙지, 태안의 쏙장에 연평도 꽃게탕. 어찌 이것을 등지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전생이 산골에서 태어난 고양이였다. 주식인 생선을 구경하기 어려웠던 가련한 인생이었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번 생에서 선택이 가능한 모든 메뉴에는 회나 해물이 들어간다. 어시장에 가는 것이 백화점 들르는 것보다 백 배쯤은 더 좋다. 수조에서 펄쩍 뛰는 물고기들을 보면 잠시 연민하지만 배는 늘 고프다.

학명이 몰라몰라(mola mola)인 개복치, 배불뚝이 도치, 수조에 누운 민어, 횟대기와 가시등치, 도마 위에서 부위별로 팔리는 대방어에 괴도라치, 가성비 최고인 간재미에 삭힌 홍어. 이것들도 곧 추억의 음식이 된다. 이쯤 되면 만국의 술꾼들이여 궐기하라 후쿠시마 오염수가 당신의 안주를, 속풀이 해장국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외쳐야 한다.

 

만국의 주부들이여 궐기하라

 

김치를 담근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거리 채소를 썰고 고춧가루와 젓갈을 듬뿍 집어 버무린다. 백령도의 까나리 액젓, 광천에 새우젓, 어리굴젓 강경의 낙지젓 꼴뚜기젓, 곰소의 조개젓, 청어알젓, 남도의 갈치속젓에 전어젓 동해안의 명란젓, 오징어 젓. 젓갈을 빼고 식탁을 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족발에 보쌈은 새우젓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고 간간이 담구는 새우장과 간장게장은 어지간한 주부님들의 필살기이다. 어머님이 절여놓은 고등어와 임연수어, 조기구이는 향수를 자극한다. 이 음식들도 모두 사라져야 한다.

생일이면 꼭 먹어야 하는 미역국은 어떠하며 모든 국물의 밑간이 되는 해초와 멸치와 다시마는 또 어떠하며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은 어떠한가. 그리고 소금은 어쩔 것인가. 풀때기에 간은 무엇으로 할 것이며 된장 간장 고추장은 무엇으로 담글 것인가. 이쯤되면 만국의 주부들이여 궐기하라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의 식탁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외쳐야 한다.

정작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를 절박하게 외쳐야 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소비자들은 어찌됐건 선택할 수 있지만 생산자와 판매자들은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생산수단과 의지는 있으나 생산의 터전을 빼앗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전국에 횟집이 몇 개쯤 되는지 모른다. 대형 어시장의 어물전이 몇 개쯤인지 모르고 새벽마다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하는 배가 몇 척쯤 되는지 모른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을 그곳에 오염수 투기를 막아내야 한다는 플래카드나 손팻말이 몇 개쯤은 걸려야 좋으련만 지금은 너무 조용하다. 섭섭하다.

만분의 일의 가능성을 두고 침소봉대한다는 의견을 주실 분들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이 천분의 일일지 백분의 일일지 아니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몸무게의 만분의 일도 안되는 암 세포 하나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동해물이 마르고 닳으면 하느님의 보우하심도 없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노래가 있다. 무대에선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노래인데 요즘 들어 부쩍 흥얼거리게 된다. 핵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아주 아주 오랜 옛날 험한 산골 작은 마을엔 밤마다 어흥 거리는 호랑이 얘기 있었네 / 예쁜 아가야 울지마라 호랑이 불러올 테다 금세 눈물 뚝 그치고 엄마 품 파고드는 아가 / 무서운 호랑이 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가 문밖엔 진짜 호랑이가 어슬렁대고 있는데 / 예쁜 아가야 울지마라 곶감 줄게 울지마라 아가는 눈물 뚝 그치고 호랑인 울며 도망가네 /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있었다는 얘기 어머니 무릎에 칭얼대며 잠들며 웃던 옛날얘기 / 호랑이보다 곶감보다 더 무서운 얘기 있네 몇백만 년 두고두고 사람을 해친다는 얘기 / 사람의 욕심이 만들어낸 그 무시무시한 물건 손톱만큼 새어 나와도 모두 다 죽는다는 물건 / 귀여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 물려줄까 들풀 지천인 꽃 세상일까 방사능 천지 핵 세상일까 / 호랑이 곶감도 무서워요 핵 얘기는 더 안 들을래요 핵 없는 세상에 살고파요 아이가 잠꼬대를 하네

-핵 없는 세상(이지상 작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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