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도박판에서 거덜 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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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국 도박판에서 거덜 나는 대한민국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06.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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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번스 CIA국장 신뢰 “곧 중국과 해빙기 올 것”
유럽도 대기업 압력으로 中과 ‘선물 보따리’ 주고받아
韓 그릇된 선택 …모든 경제지표 일본에게 속속 밀려
거센 지정학의 파도에 외로운 깃대처럼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이해해 줄 나라는 없다. 스스로 규칙을 정하지 못하고 원칙과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동맹에 의존하는 나라는 양쪽에서 뺨을 맞을 판이다.
거센 지정학의 파도에 외로운 깃대처럼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이해해 줄 나라는 없다. 스스로 규칙을 정하지 못하고 원칙과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동맹에 의존하는 나라는 양쪽에서 뺨을 맞을 판이다.

수 없는 불면의 밤을 지새면서 나는 내 예측이 틀리기만을 바랐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국장인 윌리엄 번스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상황을 회고하면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9년까지 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가장 앞서서 예견했고, 이를 막으려 노력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번스는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서 일명 오렌지 혁명, 즉 민주주의를 도모하는 혁명을 지원한다든지, 우크라이나를 나토(NATO)에 가입시켜 유럽의 일원으로 통합한다는 발상에 그는 경악했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극도로 분열될 것이며 러시아는 반드시 군사적으로 개입하려 할 것이다. 전쟁 3개월 전인 202111월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특사로 러시아 간 번스는 니콜라이 파트루세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 세르게이 나리쉬킨 대외정보국 국장 등을 두루 만났다. 푸틴의 측근들은 환한 미소로 그를 영접했지만 그 뒤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개입 의도가 숨어 있었다.

무엇보다 푸틴 대통령이 휴가를 이유로 사라진 것은 번스에게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 번스는 파국이 멀지 않았음을 꿰뚫어 보고 전쟁을 막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 절박하다는 점을 워싱턴에 전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자유주의들은 이런 경고를 건성으로 들으며 실효성 있는 전쟁 억제 조치를 도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시사하는 언사를 남용함으로써 러시아의 침략 의도를 부추겼다. 번스에게는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번스에게는 미국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행동을 절제하면서, 지금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CIA 창립 기념일인 2001104일에 번스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중국군에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할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결전을 수행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추겠다는 정치적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

이런 중국을 견제하려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 미국의 힘을 소진시키면 안 되는 일이었다. 해가 바뀌어 20227월이 되자 아프간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 당시 번스는 탈레반과 마지막 협상을 하고 있었다. 아프간 정부의 마지막 날이 예견되던 시기에 워싱턴의 자유주의자들은 카불은 사이공이 아니다라며 아프간 수도가 베트남처럼 함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상원에서 “30만 정규군과 미국이 제공한 무기를 보유한 아프간 정부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탈레반을 과소평가한 직후, 탈레반 공세가 시작된 지 불과 11일 만에 카불이 함락되었다. 워싱턴의 자유주의자들에게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대로 세상을 왜곡하는 주술이 걸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탈레반과 협상의 최전선에 있던 번스에게는 미국을 실패하게 만드는 치명적 약점이었다.


중 간의 제2의 데탕트

미‧중 간의 지정학적 갈등은 월가와 산업자본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은 대만해협에서 위기를 막고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방향이 다시 정해졌다.
미‧중 간의 지정학적 갈등은 월가와 산업자본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은 대만해협에서 위기를 막고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방향이 다시 정해졌다.

외교적으로 궂은일에는 항상 번스가 있었다. 연이은 외교의 실패를 경험한 미국은 이제 번스의 말이라면 귀담아듣는다. 바이든이 가장 신뢰하고 의존하는 번스는 5월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히로시마에서 G7 정상회담을 마친 바이든은 기자회견에서 곧 중국과 해빙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의 대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중국으로 달려갔다. 작년 11월에는 독일의 숄츠 총리가 기업인 100여 명을 대동하고 베이징을 방문했다. 올해 4월에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대규모 경제 사절을 동반하고 베이징으로 왔다. 그럴 때마다 중국은 폭스바겐 자동차 합작 생산 확대, 에어버스 여객기 160대 구매 등 풍성한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었다.

유럽은 이미 대기업들의 압력으로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라는 탈중국(de-coupling)’ 노선을 수정하고 다시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폰덴라이엔 유럽 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 3월에 유럽은 탈중국을 원하지 않는다며 중국에 특정 기술에 대한 통제만 실시한다는 취지의 탈위험(de-risking)을 표방했다.

4월에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탈위험 정책을 수용하는 연설을 하였고, 이제 미국은 중국과 협력할 채비를 서두른다. 애플과 테슬라는 중국 투자를 확대한다고 발표하였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미국과 중국 간에 전략경쟁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비난하였다.

중 간의 지정학적 갈등은 월가와 산업자본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국은 대만해협에서 위기를 막고 중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방향이 다시 정해졌다. 아직 중국은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지만 미중 간에는 제2의 데탕트가 도래하는 신호가 나타났다.


거대한 도박판에서의 대한민국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한미일 동맹에 올인한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무역수지가 14개월째 적자에다가 대중국 무역액이 지난해 대비 26% 감소했다는 초현실적 결과다.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한미일 동맹에 올인한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무역수지가 14개월째 적자에다가 대중국 무역액이 지난해 대비 26% 감소했다는 초현실적 결과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낯설고 불안한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통합되었던 세계는 강대국 간에 전략경쟁이 펼쳐지면서 다시 블록으로 분할되고 장벽이 세워진다. 국가 간에 경제와 안보 면에서 새로운 짝짓기가 유행이다.

올해 100세를 넘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지금의 세계 질서를 비전과 원칙이 사라진 시대, 무질서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양극 질서, 패권 질서보다 더 위험한 게 바로 무질서다. 어떤 압제와 폭정도 무정부 상태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무질서 상황에서 이슬람국가(IS)가 창궐했고 시리아 내전이 일어났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기업들은 정치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는 평평하기 때문에(Falt World) 눈에 거슬리지 않는 국경에 개의치 않고 오직 기술과 비즈니스에만 집중하면 될 뿐이었다. 실력만으로 승부가 되는 세상은 대한민국에 최대의 축복이자 기회였다.

그런데 지금은 부드럽게 이어지던 무역과 돈의 흐름이 곳곳에서 끊기고 새로운 장벽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활동에 지정학이라는 지도가 더해지면서 이념과 가치, 세력권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출현한다. 무엇보다 책임 있는 강대국이 국제질서의 안정을 도모하지 않고 자국 우선 정책으로 회귀한다.

이런 무질서 상황에 피로감을 느낀 세계는 다시 질서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자국의 외교정책을 조정하려 한다.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들은 자신들이 규칙을 정하기 때문에 공급망 재편의 속도를 조절하고 불안에도 대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2016년에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사드 배치로 인한 보복을 당했을 때 미국은 우리의 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호주가 중국으로부터 와인과 석탄 수출을 봉쇄당했을 때도 미국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반면 최근 미국의 마이크론이 중국으로부터 반도체 수출을 금지당하자 우리더러 중국에 반도체를 팔지 말라며 공동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아픔에는 우리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고 우리의 아픔은 우리 혼자 대응해야 하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도 정부는 미국에 단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거센 지정학의 파도에 외로운 깃대처럼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이해해 줄 나라는 없다. 스스로 규칙을 정하지 못하고 원칙과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동맹에 의존하는 나라는 양쪽에서 뺨을 맞을 판이다. 국제정치는 패를 돌리는 강대국이 정하는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도박판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중국 간에 경쟁과 갈등이 깊어져 이제는 파국이 임박했다고 믿고 미국과 일본에 베팅했다. “탈중국을 거침없이 말하는 유일한 국가다.


판 돈 잃고 거덜 나는 형국

강대국 전략경쟁의 시대에 국가의 자산과 기술,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채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한미일 동맹에 올인한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무역수지가 14개월째 적자에다가 대중국 무역액이 지난해 대비 26% 감소했다는 초현실적 결과다. 작년 초만 해도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추세가 올해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다. 무역 부진으로 올해 세수 결손이 38조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지방 교부금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 경제연구원은 지난주에 한국 경제에 경착륙이 시작되었으며 장기 침체 가능성을 예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재 한중 정부 간 외교는 사실상 단절되었고, 국회 한중 의원 친선협회도 가동을 중단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미중 전략경쟁에 뛰어든 결과다.

반면 일본은 오래전부터 미중 간의 전략경쟁에 대비해 왔기 때문에 막대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33년 만에 주가는 최고를 기록하였고, 한국과 대만을 향하던 국제 투자가 일본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본은 단 한 번도 탈중국을 말하지 않았으며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중 전선의 선봉에 섰던 호주는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다시 중국과 협력할 조짐이다. 집권 초부터 탈중국을 외치던 한국 권력자들이 무책임하게 벌여놓은 도박판에 시장의 반응 차가웠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경제성장률에서 일본을 앞지르던 한국은 모든 경제지표에서 일본에 속속 밀리고 있다.

대한민국에 희망과 낙관이 사라지고 있다. 인구 구조가 재앙으로 치닫고, 지정학적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잘못된 선택은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실패했던 바로 그 방식이다. 이를 고집하는 이념가들은 외교에서 근본주의 속성을 드러내며 대한민국을 불안의 공간으로 내모는 중이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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