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소용돌이…거부할 수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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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소용돌이…거부할 수 없는 삶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6.1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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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곳곳에 남아있는 영화 ‘대부’의 흔적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⑥

세상에 나온 지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영화가 있다.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들이다. 대부 3부작도 그렇다. 여전히 해외 유수의 영화 전문 사이트에서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선 안에 든다.

마시모 극장에는 시칠리아에 남아 있는 많은 건축물의 스타일이 남아 있다. 그리스 로마 노르만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보기에도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사진=정연일
마시모 극장에는 시칠리아에 남아 있는 많은 건축물의 스타일이 남아 있다. 그리스 로마 노르만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보기에도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사진=정연일

많은 이들이 인생의 영화로 대부를 꼽는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와 주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뿐만은 아니다. 사랑과 우정, 믿음과 배신, 분노와 슬픔, 주저와 결단, 비탄과 후회 등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한 편 만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3부작을 순서대로 모두 봐야 와닿는다.

시칠리아가 고향인 뉴욕의 마피아 대부, 비토 코를레오네(말론 브란도)에게는 아들 셋, 딸 하나가 있었다. 장남 산티노는 다혈질의 욱하는 성격 때문에 반대파의 함정에 빠져 젊은 나이에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는다.

둘째 프레도는 유약한 성격이라 가업을 이어받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가업은 막내 마이클(알 파치노)이 이어받게 된다.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마리오 푸조의 원작 영문 소설을 읽어보니, 마이클(알 파치노)은 가업을 이어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대부분 비극이었는데, 80대에 지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희극이었다. 마시모 극장의 개관작은 베르디의 팔스타프였다. 베르디의 동상. 사진=정연일
베르디의 오페라는 대부분 비극이었는데, 80대에 지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희극이었다. 마시모 극장의 개관작은 베르디의 팔스타프였다. 베르디의 동상. 사진=정연일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 대학 수학과를 다녔고, 아버지 같은 이탈리안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2차 대전에도 미 해병 장교로 참전한다. 여자 친구도 이탈리아계가 아닌 영국계를 사귄다. 아버지도 가업은 다혈질의 장남이 이어받고, 차분하고 냉정한 성격의 마이클은 정치인으로 성공하길 원한다.

그랬던 마이클이 가업을 이어받게 된 건 순전히 운명의 소용돌이 때문이다. 가장이자 조직의 보스인 아버지는 저격당해 병원에 누워 있는데, 가업을 물려받을 큰형은 죽었고 유약한 둘째 형은 가문의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 없었다. 결국 반대파를 총으로 암살하고 시칠리아로 도피한다.

대부 1의 내용이다. 대부 2가 창업 1세대 비토 코를레오네의 회상이라면 대부 3은 수성 1세대였던 노년 마이클(알 파치노)의 회상이다. 젊은 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마이클의 아들 안소니도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마피아보다는 오페라 가수가 되길 원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 생의 결핍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후회와 비탄이 가득한 삶을 살았던 자신을 생각하며, 마이클은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 안소니를 말리지 못한다. 안소니는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마씨모 극장에서 데뷔 공연을 하고, 마이클과 뉴욕의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팔레르모로 온다.

밤의 팔레르모 거리. 사진=정연일
밤의 팔레르모 거리. 사진=정연일

공연 전날 식당에서, 마이클의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얼마 전에 배웠다며 시칠리아 민요를 직접 기타 치며 부른다. 노래 제목은 몰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다 아는 대부의 주제가를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시칠리아어 버전으로 부른다. 대부 3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좋아하는 장면이다. 노래를 들으며 마이클은 젊은 시절 시칠리아 도피 기간에 만났던 아폴로니아와의 사랑을 떠올린다.

대부 1에서 마이클을 노리는 반대파의 차량 폭탄테러에 아폴로니아는 폭사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는,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마이클의 인생 첫 결핍이었다. 오페라 관람을 마치고 극장을 나오는데, 마이클을 저격하려는 적대 세력의 총탄에 마이클을 대신해 금지옥엽 애지중지 아끼던 딸이 피격당해 죽는다.

젊은 시절에는 아폴리아나, 노년에는 딸까지,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노리는 반대파에 의해 모두 타살당했다. 자신의 큰 형은 젊은 시절 죽었고, 둘째 형은 가업을 배신한 대가로 자신이 처단했다. 큰 형을 죽인데 연관이 된 걸 알고 누이동생의 남편마저 죽였던 마이클은 딸의 시신을 안고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 마시모 대극장 앞에 올 때마다 영화 대부 3의 장면이 떠오른다. 사진=정연일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 마시모 대극장 앞에 올 때마다 영화 대부 3의 장면이 떠오른다.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 마시모 대극장 앞에 올 때마다 영화 대부 3의 장면이 떠오른다. 대부 370년대에 제작한 12편과 무려 12년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찍었다. 개봉 당시에는 전작들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해 망작(亡作)이라고까지 했지만, 코폴라 감독의 재편집판이 나오며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 3은 마피아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마이클 코를레오네(알 파치노)라는 인물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예술 작품이다.

대부 3부작은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인물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남성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여성 등장인물들도 그렇다. 이성과 합리를 동원해 최대한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아보려고 해도,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았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많은 이들이 따르고 두려워했지만, 코를레오네 가문 남자의 죽음은 한결같이 외롭고 슬프다. 대부 3의 마지막 장면은, 시칠리아에서 혼자 의자에 앉아 쓸쓸하게 죽어가는 마이클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난다.


마시모 극장 앞은 베르디 광장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오페라 하우스이다. 마시모(Massimo)는 이탈리아어로 최고, 최대라는 뜻이다. 정식 명칭은 이탈리아를 통일한 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따서 테아트로 마시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이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무려 22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97년에 개관했다. 개관 첫 공연은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의 팔스타프(Falstaff)였다. 그래서인지 마시모 극장 앞의 광장 이름은 베르디 광장이고, 오페라 하우스 옆에는 베르디의 흉상이 있다.

마시모극장의 밤풍경. 사진=정연일
마시모극장의 밤풍경. 사진=정연일

마시모 극장에는 시칠리아에 남아 있는 많은 건축물의 스타일이 남아 있다. 그리스 로마 노르만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보기에도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오페라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시간대별로 내부 투어가 있어 들어가 볼만하다.

그리스 신전 양식으로 꾸며진 마시모 극장의 정면 박공(pediment) 아래에는 예술은 사람들을 새롭게 하고 그들의 삶을 드러낸다’(l'arte rinnova i popoli e ne rivela la vita.')라는 문장이 이탈리아어로 새겨져 있다. 인프라와 시스템은 엉망진창인 이탈리아 하고도 시칠리아이지만, 종종 이렇게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극장 앞에는 긴 계단이 있어, 시칠리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시모 극장의 계단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유투브에서 음악을 찾아 들어본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느낌과 감흥이 매우 다르다.

먼저 이탈리아의 영화 음악 작곡가 니노 로타가 지은 대부의 주제가 ‘parla piu piano’를 찾아 들어본다. 수많은 버전이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이탈리아의 미남 가수였던 지아니 모란디(Gianni Morandi)가 부른 버전이다. ‘천천히 부드럽게 말해요 아무도 듣지 못하게라는 제목과 가사 내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버전이다.

그다음은 대부 3에서 부른 시칠리아어 버전, ‘Brucia la terra’이다. 같은 노래이고 내용도 사랑 노래지만 이탈리아어 가사와 시칠리아어 가사는 표현 방식이 매우 다르다. 이탈리아어 가사는 부드럽게 천천히 말해요라고 달콤하게 속삭인다면, 시칠리아어 가사는 하늘에는 달이 불타고 나는 사랑으로 불타네라고 뜨겁게 울부짖는다.


인생은 장난 모두는 바보

마지막으로 듣는 음악은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벨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intermezzo)이다. 대부 3에서 마이클의 아들 안소니가 마시모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한 작품이다.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워 정작 본 오페라보다 더 유명한 곡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혼자 쓸쓸히 죽는 마이클(알 파치노)의 마지막 모습이자 대부 3의 마지막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곡이다.

이 아름다운 땅 시칠리아가 왜 이렇게 폭력에 물들었까요? 마이클과 함께 시칠리아에 온 안소니가 마이클에게 묻자, 마이클은 한 마디로 대답한다. “역사(History)!”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시칠리아의 역사도 그렇다. 시칠리아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은 책에서 배우는 것 너머를 깨닫게 해준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대부분 비극이었는데, 80대에 지은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희극이었다. 마시모 극장의 개관작이 베르디의 팔스타프(Falstaff)였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게 아니었을까? 혼자서 짐작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인가, 역사는 긍정할 만한 것인가. 베르디의 오페라 팔스타프는 이렇게 끝난다. “인생은 장난이고,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이며, 우리는 모두 바보이니 함께 사는 법을 배우라.”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잠시 여행지에서 돌아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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