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실리 찾는 게 현명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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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실리 찾는 게 현명하겠죠”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06.14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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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두 동강 내는 고속도로 반대 청주 강내면 당곡리 이흥기 이장
지하차도 건설 요구하며 4년 동안 투쟁... 거대 기관 앞에 한계 절감
보상 앞두고 이장 역할 ‘끝’, 부체도로 150m 추가 연결이 마지막 소임

 

부체도로만 추가 연결해 준다면 4년 투쟁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이흥기 이장
부체도로만 추가 연결해 준다면 4년 투쟁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이흥기 이장

 

달걀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앞장서 싸웠는데...이젠 어쩔 수 없이 실리를 찾을 수밖에 없네요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세종~청주고속도로 신설에 맞서 4년째 투쟁해 온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당곡리 이흥기(77) 이장은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허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도공은 세종시 연서면 가룡리~청주시 남이면 척산리 19.4(4차로)를 잇는 세종~청주고속도로2조 원을 들여 2030년까지 신설할 계획이다. 세종 구간은 10.3, 청주 구간은 9.1이며 교량 37, 터널 5, 지하차도 1, 출입시설 JCT 2, IC 2, 영업소 등이 들어선다.

이 사업은 201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역균형발전 사업에 선정됐고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됐다.

당곡리 주민들이 4년째 마을 한복판을 치고 나가는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아무리 국민 생활 편의를 위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해도 마을을 반 토막 내는 고속도로는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흥기 이장이니까 가능

 

그 선봉엔 이흥기 이장이 있다.

인근 강내면 다락리에서 태어나 제대 후 동생 4명과 함께 할아버지 고향인 이곳에 정착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일을 똑소리 나게 처리하는 능력가였다. 27세 때부터 새마을 지도자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0년 동안 마을 일을 도맡아왔다. 마을 어디에도 자신의 눈길,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는, 사랑을 듬뿍 준 고향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특전사 출신답게 안 되면 되게 하라’, ‘하면 된다라는 신념이 강하다.

이 같은 신념과 의지는 고속도로 반대 운동을 4년씩이나 지속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요즘들어 맥이 빠졌다. 회의도 들었다.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라는 거대한 기관에 맞서는 게 힘에 부쳤다. 주민들의 지하차도 건설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는 이들을 설득하고 압박한다는 게 점점 무의미해짐을 절감한다.

그러는 사이 도공 측은 야금야금 주민 개개인을 상대로 설득 내지는 회유하는 전략을 폈다.

 

마을 자랑비를 살피고 있는 이흥기 이장
마을 자랑비를 살피고 있는 이흥기 이장

 

부체도로 추가만 하면

 

결정적인 것은 보상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장으로서 할 일이 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여기까지구나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이 이장은 그동안 한마음이 돼 지하차도 건설을 요구했던 사람들이 보상이 다가오자 이장은 안중에도 없어 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더 해 볼 도리가 없다고 판단한 이 이장은 마을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지하차도를 성사시키지 못해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백기 투항이 아니다. 부체도로 추가 연결이라는 전제가 있다. (부체도로·附替道路: 신설되는 주도로(간선도로)의 노선이 기존 도로를 잠식해 통행이 불가능한 것을 해소하기 위한 보조도로. 주도로 진·출입 불가)

도공은 뒷산(마봉산) 혜원정사 입구까지 200m와 맞은편에 부체도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이장은 혜원정사에서 약 150m 구간을 추가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비록 논밭은 없어지고 지겟길만 남아 있는 상태지만 마봉산은 마을 모산(母山)인 만큼 관리 차원에서 부체도로 연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체도로가 받아들여지면 지하차도 요구를 거둘 수밖에 없다고 이 이장은 말했다. 실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꿩 대신 닭으로.

 

청주시 강내면 당곡리 주민들은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세종~청주고속도로 반대 플래카드를 경로당에 걸어 놓고 반발해 왔다.
청주시 강내면 당곡리 주민들은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세종~청주고속도로 반대 플래카드를 경로당에 걸어 놓고 반발해 왔다.

 

아무튼 욕 봤어

 

이 이장은 한 도공 직원은 고속도로 역사상 4년 동안 물고 늘어진 곳은 당곡리 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그간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주민들도 도공의 노력 또한 부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일부 편입되는 배밭 주인에게 앞으로 수확도, 출하도 문제가 될 테니 민원을 내라고 조언했다. 실사에 나선 도공은 배밭 1000여 평과 인접 토지 1000여 평을 더 매수해 습지, 데크, 운동시설 등을 갖춘 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에 이 이장은 이왕이면 주민들이 잠시 쉬더라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근린시설로 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도공은 고속도로가 안 보이게 양쪽에 3~4m 높이의 방음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산과 조화를 이루게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이장은 인근 세종시 송용리는 군사시설을 이유로 지하차도로 계획을 변경했는데 당곡리는 뜻을 이루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4년 동안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할 만큼 했는데 이제 손 뗄 때가 됐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뭘 했나하고 허탈감만 몰려 온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그래도 이장으로서 노력은 했다고 자부한다. 부체도로만 해결되면 상황 끝’”이라고 담담해 했다. 그러면서 이 한마디는 듣지 않겠느냐고 웃어 보인다. “아무튼 욕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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