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녹색당원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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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녹색당원의 소망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06.27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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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이 분당하기 전에 당적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2004년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할 때, 그 선거를 같이 준비했던 친구의 부탁이 있었다. 그는 벌써 암으로 죽었다. 분당하면서 다시 당적을 갖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주당이 야당 시절, 짧게 민주당 당적을 가졌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기, 나는 녹색당 당원으로 살았다. 아직 녹색당이 만들어지기 이전, 녹색정치준비모임, 줄여서 녹준이라고 부르던 시절부터 초록정치연대 시절까지, 나는 녹색당을 만들기 위한 상근 활동가 중의 한 명이었다. 아직은 정식 정당이 아니라 시민단체 같은 위상을 갖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녹색당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대체로 녹색당원의 당적을 가지고 살았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한국식 녹색당에도 나름대로의 큰 흐름들이 있다. 생태주의에 관한 흐름이 한 가지이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치 등 분산형 시스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 한 가지였다. 비슷하지만, 이 두 가지는 조금은 다르다. 생태주의가 극한까지 가면 심지어는 생태 독재에 관한 생각으로 갈 수도 있다.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방식이 더 쉽게 생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런 방식은 민주주의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녹색당의 또 다른 축은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지역 자치다. 한국과 같이 모든 것이 서울을 향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녹색당식의 분산형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한때 많은 정치 개혁론자들이 지방 의회의 부패와 무용론을 얘기하며 폐지를 주장할 때, 내가 반대의 입장에 선 것은 순전히 녹색당의 영향 때문이다.

초창기에 같이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일부는 정의당으로 갔고, 또 아주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으로 갔다. 노회찬이 아직 국회의원이 아니던 시절, 나는 그와 많은 일을 같이 했었다. 그리고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 문재인 당대표 시절, 그들도 많이 도왔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이후, 나는 정치적 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나보다는 그런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렇게 사람 앞에 서는 게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녹색당 평당원이 되었다. 매달 당비를 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무늬만 녹색당원이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녹색당의 꿈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은, 나 같은 사람 몇 명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녹색당원으로 살다 보면 단기적 효율성을 이유로 원전을 찬양하지는 않게 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중앙형 발전 장치에 대해서 회의적 시선을 가지게 된다. 민주당과도 쉽게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여전히 새만금 해수통을 통한 갯벌 보존에 대한 기술적 가능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이념적으로 불화를 하게 되는 것은 4대강 사업과 같은 국토대개조에 대해서 반대하기 때문이다. 정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은, 과잉 대표된 중앙과 서울이 아니라 지역의 목소리가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지역의 언론들이 더 강화되고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현실적 이념의 핵심에는 서울에 가서 성공하고 돌아오는 금의환향의 꿈이 있다. 녹색당의 꿈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성장한 사람들이 지역 자치 인재가 지역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아직 현실의 벽은 강하고, 이상은 아직 멀다. 무늬만 녹색당원인 나는 지역에서 녹색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시대를 여전히 꿈꾼다. 유럽의 많은 국가와 유럽 의회에서는 이미 성취된 꿈이다. 언젠가 그런 순간을 소망하며, 나는 녹색당에 당비도 내고 이론적 연구도 한다. 지역 인재가 우대받고 사랑받는 시대를 여전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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