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작은 마을의 ‘왕의 산, 몬레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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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작은 마을의 ‘왕의 산, 몬레알레’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6.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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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 딱 하나의 성당을 본다면 바로 이곳
메인 통로 벽면의 황금모자이크 장식. 대부분은 성서의 이야기이다. 노아의 방주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정성후
메인 통로 벽면의 황금모자이크 장식. 대부분은 성서의 이야기이다. 노아의 방주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정성후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⑧

팔레르모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팔레르모 근교의 몬레알레(Monreale)라는 곳이다. 팔레르모에서 서남쪽으로 10km 정도 거리에 있다. (Mon)은 라틴 로망스 어군에서 산(Mountain)을 뜻한다. 알프스의 몽블랑, 미국의 몬타나주, 유럽의 소국 몬테네그로 등이 모두 산과 관계있는 지명이다.

레알(Real)은 영어의 리얼(Real)이 아니라 로얄(Royal)과 같은 뜻이다. 스페인의 명문 축구 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레알이 로얄이다. 정리하자면, 몬레알레(Monreale)왕의 산(Royal mountain)’ 이라는 뜻이다. 캐나다 퀘벡주의 몬트리얼(Montreal)과 같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팔레르모가 평지에 있는 데 비해 몬레알레는 카푸토 산의 경사면에 있다. 시칠리아에서 딱 한 곳의 성당을 본다면 몬레알레 성당을 봐야 한다.

몬레알레 대성당의 메인 통로. 노르만 양식의 실내 기둥과 천정의 화려한 나무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정연일
몬레알레 대성당의 메인 통로. 노르만 양식의 실내 기둥과 천정의 화려한 나무기둥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정연일

시칠리아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수도였던 팔레르모가 아니라, 왜 산속의 작은 마을에 가장 화려한 성당이 있을까? ‘왕의 산이라는 이름은 왜 붙었을까? 그 이유에는 역사, 전설, 그리고 권력의 대립 관계가 숨어있다. 먼저 역사적 이유를 찾아보면, 북아프리카 아랍 이슬람 세력의 시칠리아섬 정복 이후, 팔레르모의 주교와 기독교 세력은 팔레르모를 떠나 몬레알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바이킹 노르만 세력이 아랍 이슬람 세력을 시칠리아에서 밀어내고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했다. 전설에 의하면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2세는 몬레알레 숲에서 사냥하다가 나무 아래 잠들었는데, 꿈속에 성모 마리아께서 나타나 이곳에 교회를 지으라 했다고 한다. 꿈에서 깨어난 윌리엄 2세가 나무 아래를 팠더니, 금화가 나왔고 그 금화로 교회를 지었다는 얘기다.

 

중세, 왕권과 신권의 투쟁

 

다음은 권력투쟁이다. 기독교가 유럽의 국교로 자리 잡으며, 중세는 왕권과 신권의 권력투쟁 역사였다. 카놋사의 굴욕이나 아비뇽 유수 같은 역사적 사건은 왕권과 신권의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준다. 아랍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 준 바이킹 노르만 세력 덕분에, 주교를 비롯한 기독교 세력은 팔레르모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굴러온 돌 같은 지배세력의 교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수도원 중정 사진=정연일
수도원 중정 사진=정연일

당연히 기존의 토착세력과 외부세력의 견제와 갈등은 있었을 터. 가까운 팔레르모에도 대성당이 있지만,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2세는 몬레알레에 시칠리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고 장엄한 성당을 짓는다. 사실은 권력의 견제와 대립이지만,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하니 꿈이 명분이 된다. 성모께서 왕의 꿈에 나타나셔서 몬레알레에 성당을 지으라고 했다는데 그 누가 감히 거역할 수 있었을까? 전설이든 명분이든 권력대립이든 간에 어쨌든 한 시대의 걸작인 건축물이 지금까지 남아있어 볼 수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팔레르모에서 택시를 잡아, 기사에게 몬레알레로 가자고 하니 무리알리(Murriali)?”라고 되묻는다. 몬레알레는 이탈리아어이고 무리알리는 시칠리아어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시칠리아어는 한국인에게 제주방언 같다더니,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해도 헷갈릴만하다. 팔레르모 시내를 빠져나온 택시는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몬레알레에 도착하니 거대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칠리아에 남겨진 아랍 노르만 양식 건축물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몬레알레 대성당이다.

수도원 회랑의 아치와 중정. 사진=정연일
수도원 회랑의 아치와 중정. 사진=정연일

유럽의 대성당은 대부분 입장료가 없다. 성당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누구든지 와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몬레알레 대성당에도 입장료가 있다. 게다가 뜨거운 지중해 권역 특유의 낮잠 문화인 시에스타를 적용하는 곳이 많아, 성당은 아침에 문을 열면 저녁에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열려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갔다가는 문이 닫힌 성당 앞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에스타 시간은 길어서 보통 서너 시간 정도 문을 닫는다.

 

무료가 돌연 유료로 둔갑하기도

 

몬레알레로 가는 택시 안에서 대성당의 시에스타 시간을 확인하느라 구글맵을 열어보니, 지난해 봄까지 있었던 입장료가 사라졌다. 몬레알레에 도착해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니 긴 줄이 보인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줄부터 서야 한다. 망설이거나 꾸물거리는 동안에도 줄은 뱀 꼬리처럼 길게 길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줄부터 서고 확인을 해야 한다.

특히 지중해 크루즈가 입항한 날은 크루즈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승객이 몬레알레를 찾는다. 몬레알레 대성당은 대성당과 부속 건물의 복합권 티켓이 여러 종류 있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을 일단 줄 세우고, 성당의 입구 쪽 매표소로 가서 확인하니 몬레알레 대성당만 보면 입장료는 무료다. 혹시나 해서 입구 문지기인 시칠리아의 중장년 남자에게 다시 물어도 대답은 같다. 줄을 선 일행들을 나오라고 해서 성당 입구로 갔더니, “표를 끊어 오라고 문지기 남자의 말이 갑자기 바뀐다.

조금 전에 대성당 입장은 무료라 하지 않았느냐? 매표소에도 그렇게 적혀있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마침 지나가는 다른 직원에게 다시 확인해도 대성당만 볼 경우엔 입장료는 없다. 문지기가 못 들어가게 하니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하니 문지기에게 가서 얘기하는데도 안된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시칠리아뿐만 아니라 모든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기독교 건축물 안에 남아 있는 아랍 무어 양식의 천정 장식. 사진=장소란
기독교 건축물 안에 남아 있는 아랍 무어 양식의 천정 장식. 사진=장소란

어처구니없지만 몬레알레까지 왔는데 대성당을 안 볼 수는 없다. 다시 긴 줄로 돌아가 대성당과 부속 수도원 복합권을 끊었다. 시간 관계상 대성당만 보고 돌아가려고 했으나 수도원까지 보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수도원 역시 볼만한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입장한 몬레알레 대성당 내부는 이미 여러 번 찾은 곳이지만 볼 때마다 그 화려함에 놀라고 감동적이다. 유럽의 대성당은 현대의 건축물처럼 몇 년 안에 건축이 끝날 수 없었다. 최초의 설계자는 대부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그 사이에 성당이 파괴되거나 새로운 문물과 양식이 들어와서 기존의 건축물에 더해지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몬레알레 성당도 그렇다. 1172년에 착공해서 1267년에 완공 후에도 여러 건축물이 지어졌다. 아랍 노르만 양식뿐만 아니라 후대의 고딕 르네상스 심지어 바로크 양식까지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주제단의 반원돔 모자이크. 사진=정연일
주제단의 반원돔 모자이크. 사진=정연일

유럽의 여느 대성당처럼 몬레알레 대성당도 실내는 길고 넓은 통로(Nave)가 있고, 통로를 따라 작은 채플(Chaple)이 이어진다. 야자수가 이어져 서 있는 듯한 대성당의 메인 통로의 상단은 성경의 이야기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천정은 바이킹 노르만 양식 특유의 화려한 나무 기둥 들보가 가로지르고 있다. 통로의 끝, 성당의 머리에 해당하는 주 제단(Apes)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반원 돔이 있다.

 

성당이야기만으로도 책 한 권

 

화려한 몬레알레 대성당에서도 가장 화려한 곳이다. 반원 돔의 가운데에 있는 예수를 중심으로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열두 제자가 있다. 이미 터키 이스탄불의 소피아 사원이나 그리스와 발칸 반도 일대, 멀리는 조지아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교회를 방문했던 이라면, 주 제단의 반원 돔과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화(Icon)가 어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 것이다. 고딕식 대성당은 제단 뒤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반면에 이는 지금의 그리스에 기반한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알프스 이북의 프랑스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등에 지어진 고딕식 대성당과 확연한 차이점이다.

시칠리아 여행을 하는 한국인 여행자는 몬레알레 대성당을 빼먹지 않고 들르기에, 검색을 해보면 꽤 많은 여행기를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기는 화려하다는 감상에 그친다. 여행은 인생의 귀중한 자원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고생길이다.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이긴 하지만, 고생길을 인생의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바꾸려면 사전에 어느 정도는 방문지에 관한 공부가 필요하다.

몬레알레에서 내려다 본 팔레르모 시가
몬레알레에서 내려다 본 팔레르모 시가

특히 역사 문화유적이 그렇다. 몬레알레 대성당 하나만 파고 들어가도 책 한 권 이상 내용이 나올 정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구태의연한 문장이 몬레알레 대성당에서는 생명력을 얻는 이유다. 여느 유럽의 대성당처럼 몬레알레 성당 내부에는 많은 인물이 묻혀있다. 시칠리아 노르만 왕조의 창시자인 윌리엄 1세와 몬레알레 성당을 지은 윌리엄 2세의 석관은 통로(Nave) 뒤에 가려져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 역시 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인파로 가득한 대성당을 빠져나와 수도원의 회랑(Cloister)으로 향한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지중해 권역의 대부분의 수도원은 아랍 건축의 영향을 받아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으나, 좁은 출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서면 넓은 중정(Patio)이 가운데 있고, 중정을 둘러싸고 지붕으로 덮인 회랑이 있다. 회랑이라는 건축용어가 수도원을 의미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중정은 꽃과 식물로 장식되어 있고, 가운데는 분수가 있어 아름다우면서도 거닐거나 쉬기가 좋다. 중정으로 향한 회랑은 야자수가 이어진 듯한 모양의 아치(Arch)로 이뤄져 있고, 아치의 기단 장식은 모두 다르다. 기단의 장식은 대부분 성서나 역사적 사건의 이야기이다. 장식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추측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

회랑의 그늘진 곳에 앉으니 햇볕은 뜨겁지만 금세 서늘해진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다. 괴테는 시칠리아를 제외하면 이탈리아는 껍데기라고 시칠리아를 찬양했지만, 시칠리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팔레르모에 가서 몬레알레를 보지 않았다면 바보 멍청이다. 몬레알레에 와보니 외부에서 들어온 지배세력이 수없이 바뀌어도 현지의 삶은 이어져간다. 수도원 회랑 그늘에 앉아 있으니, 삶은 이어져야 하고,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조하고 지중해의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너무나 상쾌하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체코를 거쳐 핀란드를 홀로 유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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