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바다에 ‘혹등고래 보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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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바다에 ‘혹등고래 보살’을 아시나요?
  • 안영민 전문기자
  • 승인 2023.07.13 0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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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 투쟁하는 해안‧혜조‧일원 스님
6월부터 매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서명받고 피켓시위 전개
정말 안전하면 바다에 버리지 말고 ‘생활용수’로 사용하라
그로시 IAEA 사무총장 방한에 맞춰 외교부 청사와 광화문 일대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과 불교시민단체 회원들. 앞줄 맨 왼쪽 해안스님, 세 번째 범준스님, 네 번째 혜조스님, 맨 오른쪽이 일원스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방한에 맞춰 외교부 청사와 광화문 일대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과 불교시민단체 회원들. 앞줄 맨 왼쪽 해안스님, 세 번째 범준스님, 네 번째 혜조스님, 맨 오른쪽이 일원스님,

서울 종로구 율곡로 경복궁 건너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시위에 나선 비구니 스님들이 있다. 지난 62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나선다. 무더위와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씩 자리를 지킨다. 평일에는 일본대사관 앞을 지키고, 대사관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인사동 입구에서 판을 벌인다.

해안, 혜조, 일원 스님 등 비구니 스님들이 중심이 되고, 불교환경연대와 평화의길, 시국법회 야단법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강력히 반대한다’ ‘일본과 IAEA는 방사능 테러범들시위 현장에는 한글과 일본어, 영어로 된 현수막과 푯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장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현장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오가는 시민들로부터 반대 서명도 받는다. 특이하게도 서명에 동참한 시민들에게 혹등고래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고 있다. 해안스님이 혹등고래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혹등고래는 지능이 높아서 바다에서 잠수부들이 위험하지 않도록 신호를 보내주기도 하고, 바다표범이나 포유류들로부터 위험을 느낄 때 자신의 배 위에 1시간씩 올려주며 인간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이런 고래들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면 생명의 위험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목숨도 중요하지만 바다의 수많은 생명도 구하지 않을 수 없어요

혹등고래 그림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과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스님들에게 핵오염수 방류를 왜 막아야 하는지 설명도 듣고, 선물로 그림도 받아 간다.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고 있어요. 특히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서 저희도 힘이 납니다.” 처음 시위를 시작한 해안 스님의 말이다. 해안 스님은 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했고, 현재는 강화도에서 그림을 그리며 수행 생활을 해오고 있다.


반려견 이웃에 맡기고 상경

 

한글은 물론 영어로도 쓴 푯말들을 들고 시위 중이다.
한글은 물론 영어로도 쓴 푯말들을 들고 시위 중이다.

평생 데모하고는 관련 없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왔는데,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소식을 듣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시민단체를 소개받아 찾아갔어요. 거기에서 일본대사관 앞 1인시위를 권유받았죠. 바로 피켓도 만들고, 서명 용지도 만들었습니다. 서명하는 시민들한테 그림을 그려서 나눠주면 좋겠다는 제안에 크레파스와 종이도 마련했습니다.”

응원 온 시민들이 직접 그린 혹등고래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응원 온 시민들이 직접 그린 혹등고래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해안 스님은 강화도를 떠나올 때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다시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고 올라왔다. 반려견을 다른 곳에 맡기는 게 제일 힘들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조계사 근처에 한 달씩 월세를 주는 달방도 구했다고 한다.

그렇게 홀로 시작한 시위는 외롭지 않았다. 해안 스님의 시위 소식을 듣고 다른 비구니 스님들이 하나둘씩 지지 방문을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돌아가면서 동참했다. 혜조 스님은 시위 현장에서 오카리나 연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스님이 연주하는 아리랑은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고 있다. 일원 스님은 해아 스님과 함께 혹등고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불교시민단체 회원들도 매일 당번을 정해 스님들을 지원했다. 또 비구니 스님들의 시위 소식을 듣고 수녀님들도 매주 한두 차례씩 지지 방문을 왔다. 626일부터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대학생들도 적극 행동에 나섰다.


서명지 일본대사관 전달 예정

 

광화문 앞에서도 시위를 벌이는 비구니 스님들.
광화문 앞에서도 시위를 벌이는 비구니 스님들.

처음 시위를 시작할 때는 외롭기도 했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새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반대 여론도 날로 커지고 있어서 힘이 납니다.”

78일부터는 라파엘 그로시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의 방한에 맞춰 IAEA 대표단 숙소인 포시즌 호텔과 외교부 앞, 광화문 광장으로 진출했다. 폭우가 내리는 속에서도 스님들은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핵오염수 해양 방류 저지그로시 고 홈을 외쳤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점차 높아가고 있지만 스님들은 여전히 걱정이 많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의 해양 방류를 막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부에는 제대로 따지지 못하면서 국민을 겁박하는 윤석열 정부의 처사를 보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만약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친일매국정권 퇴진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 편을 들면서 국민들의 비판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이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핵오염수를 바다에 버리지 말라는 게 어떻게 괴담입니까? 안전하다는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나요? 그렇게 안전하다면 일본 내에서 직접 생활용수로 사용하라는 게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나요? 윤석열 정부는 지금 우리 국민의 불안은 외면하고 일본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어요. 이런 정부를 우리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새 40일이 지난 시위가 힘에 벅찰 만도 한데 스님들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옳은 길을 간다는 확신도 있겠지만 중생들과 더불어 함께수행한다는 보람이 더 커 보였다. 그래서인가. 해안 스님의 마지막 이야기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불교시민단체 회원들도 매일 당번을 정해 스님들을 지원했다. 또 비구니 스님들의 시위 소식을 듣고 수녀님들도 매주 한두 차례씩 지지 방문을 왔다.
불교시민단체 회원들도 매일 당번을 정해 스님들을 지원했다. 또 비구니 스님들의 시위 소식을 듣고 수녀님들도 매주 한두 차례씩 지지 방문을 왔다.

바다 생명들이 제게 호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문제를 외면하고 어떻게 부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합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바다를 죽이는 건 결국 생명 살상과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늘도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합니다.”

비구니 스님들은 7월 말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한 뒤 받은 서명지를 국회와 일본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이다. 비구니 스님들의 간곡한 호소와 행동에 윤석열 정부는, 그리고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안영민

1998년 월간 말지 기자로 언론 활동을 시작해 민족21에서 10여 년간 기자, 편집국장, 대표를 역임한 남북관계, 평화통일 분야 전문가.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복한 통일 이야기>를 썼고, 현재는 사단법인 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평화의길 유튜브 방송 <명진TV>를 총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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