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은 반드시 충돌한다는 한국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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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은 반드시 충돌한다는 한국의 믿음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07.13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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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우크라 등에서 미 합참 예측 번번이 빗나가
중국은 미국 정치와 기업 분리하는 ‘이중전략’ 구사
호주 다시 中에 접근…일본은 탈중국 외친 적 없어
尹정부 외교노선, 지정학 심취 허구와 상상에 빠져
복잡한 미국의 국내 사정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미국과 중국은 크게 충돌한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탈중국’을 외쳐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복잡한 미국의 국내 사정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미국과 중국은 크게 충돌한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탈중국’을 외쳐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20218월 말에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었다. 카불이 탈레반 손에 넘어간 지 한 달 후인 9월에 미 의회에 출석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간에서 미국은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이날 밀리 합참의장이 언급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불과 한 달 전인 8월 중순에 자신이 의회에서 카불은 사이공이 아니다라며 아프간이 탈레반에 함락되는 일은 없다고 증언했던 일이다. 그 증언이 있고 정확히 11일 만에 카불은 탈레반 수중에 넘어갔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222월 중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예견되던 2월 초에 의회에 출석한 밀리 의장은 러시아가 쳐들어오면 키이우는 72시간 이내 함락된다고 증언했다. 이 말에 바이든 대통령도 동의했다. 224일에 러시아 지상군이 키이우를 향해 진격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긴급히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일로 피신시키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망한 나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남아서 항전하면 희생만 더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증언이 있고 17개월이 지났지만 키이우는 함락되지 않았다. 망하는 나라는 안 망한다고 하고, 망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는 미국의 군 서열 1위를 보면 어쩐지 불안감이 든다.

 

미국 틀리면 누군가 대가 지불

 

그는 왜 번번이 틀리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1950년에 북한군의 남침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해 중공군의 참전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 거슬러 가면 1941년에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미국이 무언가 예측에 실패했을 때 다른 누군가는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이런 실패는 항상 미국이 세상이 자신들의 기대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는 자의적 판단 때문이다.

미군 합참의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1941년에 일본의 진주만 폭격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미군 합참의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1941년에 일본의 진주만 폭격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지금 중국을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올해 미국 정가는 중국이 “2027년에 타이완을 침공한다”, “시진핑이 군부에 타이완 침공 준비를 지시했다는 증언으로 온통 떠들썩했다. 작년에 시진핑이 통일의 위업을 강조하며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부터 중국 위협론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타이완 해협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24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궁극적으로 승리하지만, 항공모함 2척이 파괴되고, 미국과 일본의 전투기 700여 대가 피해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완 해협에서의 충돌 가능성이 구체적인 현실성을 획득한 것은 올해 3, 중국 입법원 개원식에서 나온 시진핑의 연설에서부터다.

이날 시진핑은 서방의 중국에 대한 압박에 대해 결연하게 투쟁하자는 의미로 감어투쟁(敢於鬪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굳이 풀이하자면 용감하게 싸우자는 뜻이다. 여기서 투쟁이라는 단어가 교전이라는 뜻의 ‘battle’로 번역되자 미국은 들끓었다. 동양에서는 투쟁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사용되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시진핑이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는 오역이 마구 퍼져나갔다.

입법원은 군 지도자만이 아니라 당 간부와 공무원이 밀집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교전을 지시했다는 주장 자체가 이상했다. 게다가 시진핑이 타이완 해협에서 위기에 대비하라는 지침은 10여 년 전부터 매년 반복되어 온 메시지다. 입법원 폐막 연설에서는 시진핑이 미국과 서방의 포위에 결연하게 맞서자는 문장을 낭독했다.

과거에는 구체적으로 미국을 지칭하지 않은 데 반해 이번 연설이 구체적이라고 본 미국의 매파들은 파국이 임박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그들은 2월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두교서 발표 자리에서 시진핑을 두 번이나 언급하며 공격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타이완 아마겟돈, 반도체 전쟁


타이완 해협에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불안감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었다. 윌리엄 번즈 CIA 국장이 시진핑이 군부에 타이완 침공을 준비시켰다고 밝히면서 2027년 위기설은 독가스처럼 워싱턴 정가에 스며들었다. 에이브럴 헤인즈 미 국방정보국장은 타이완 해협 위기로 타이완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겪게 되면 연간 6000~1조 달러 피해가 예상된다며 위기론에 가세했다.

이런 과잉 해석은 더 엉뚱하게 타이완의 TSMC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5월에 세스 몰튼 하원의원은 한 세미나에서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면 반도체 공장이 중국에 넘어가기 때문에 미국이 침공 이전에 “TSMC를 폭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이튿날 미국의 상당수 언론은 이에 대해 고려할만한 시나리오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6월이 되자 이제는 지질학자들까지 나서서 전쟁과 지진의 위협이 심각한 타이완에서 시스템 반두체 공장을 놔둘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1999년 대만 대지진 당시 1주일 동안 TSMC 생산 공장이 멈춘 사례도 소환되었다. 앞으로 대만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반도체 공장을 미국과 일본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 8주간 전력공급이 중단되어 소니, 도시바, 미쓰비시, 마이크론 공장이 멈췄다는 사실은 거론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미국의 군함이 일제히 타이완 해협에 시위 항해를 시작하자 중국의 군함이 이를 막아서다가 137m 전방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게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은 명확한 신호였다. 같은 시기에 파이낸셜 타임즈는 미국의 정치학자, 전문가들 조사를 바탕으로 타이완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50%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도 대만해협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담은 <이미 시작된 전쟁>이라는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망상의 쓰나미가 지나간 후


이즈음 중국은 미국의 정치와 기업을 분리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기업에 중국과 분리되면 미국 경제는 파탄이라는 협박의 메시지를 발신하여 디커플링(decoupling)’, ()중국을 외치는 미국 정부와 분리하려는 전략이다. 6월에 미국은 중국과 대결과 경쟁을 지속하는 데 대한 강경 정책을 철회하고 다시 중국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 6월 말부터는 엉뚱하게도 타이완 해협 전쟁 위기론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중국을 방문한 일론 머스크는 이미 기업인의 한계를 초월하여 자신이 직접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협정을 제안하는 등 외교관이자 국제 전략가의 위치에 올랐다. 6월에 중국의 시진핑은 빌 게이츠를 만나 나의 첫 번째 미국 친구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로부터 사흘 후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말석에 앉힌 장면과 비교한다면 빌 게이츠는 국가 수반급이다. 중국은 독립된 행위자로서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인식하고 있다.

7월에 중국을 방문한 재닛 앨런 미 재무장관은 미중 경쟁은 미친 짓이라며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미국이 한동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 즉 탈중국 전략도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견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사실상 모호하기 짝이 없는 정책과 일관성 없는 전략으로 사실상 실패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미국의 혼란스러운 전략이다.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은 마치 어떤 의사가 심장과 간의 위치를 바꾸는 것과 같은 위험한 수술이다. 지극히 복잡한 신경과 혈관으로 구성된 인체의 설계도를 어떻게 바꾼단 말인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재앙적 사고를 믿는 미국의 매파들은 올해 상반기를 이런 식으로 낭비해 왔다.


과학과 망상을 구별하는 분별력


중국이 타이완 해협에서 전쟁을 준비한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단지 요즘 중국 지도부가 센 표현을 자주 구사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전쟁이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최고 전략가들마저 적당히 눈치 보며 대중 영합적인 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국내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15일,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15일,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복잡한 미국의 국내 사정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미국과 중국은 크게 충돌한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탈중국을 외쳐온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적어도 지난 1년간 중국과 외교적 단절까지 감수하면서 반중국을 외친 나라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한국 외에는 없다.

한때 중국으로부터 이탈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당 정부는 다시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외친 일본은 한 번도 탈중국이나 공급망 분리를 말한 적이 업고, 오히려 중국과 긴밀하고 다차원적인 외교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 경도되는 것 같았던 필리핀도 다시 중국에 접근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게 미국과 중국의 충돌 시나리오는 집권 초기에 파국이 임박한 듯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일종의 주술이자 망상이 되고 말았다. 가장 자해적이며 파괴적인 공급망의 분리라는 시나리오는 현 정부의 외교 노선이다.

또다시 부활하는 지정학에 깊이 심취되어 만들어 낸 허구와 상상의 공간인 인도-태평양은 대한민국 생존과 번영의 토대를 위협한다. 애초부터 지정학은 과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을 숙명으로 인식하는 감정의 찌꺼기이자, 사이비 과학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지도자를 강하게 구속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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