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목장으로 개발돼도, 오늘 고기를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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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목장으로 개발돼도, 오늘 고기를 굽는다
  • 김태경 미트마케터
  • 승인 2023.07.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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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에 대한 오해와 진실

세계에 10억 만두의 소가 사육되고 있다. 중국, 동남아등의 경제 성장으로 소고기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편에서는 소의 메탄가스가 기후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하며 지구의 심장인 아마존의 밀림이 목장으로 개발되는 것을 연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럼에도 인류의 소고기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일본의 화우와 한우의 품질을 세계 최고라고 세계인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의 화우는 이미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 상당량을 수출하고 있다. 20225000억원을 수출했다. 2025년 수출 목표 약 14672억원, 2030년 수출 목표를 3조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같이 일본 화우의 수출이 활성화 되는 건 마블링 좋은 소고기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음식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한우와 화우의 마블링

 

유독 일본의 화우와 우리 한우 소고기에 마블링이 깊고 진하고 향이 넘쳐 나는 건 역사적 지리적 이유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는 세계 최고의 돼지 이베리코 돼지가 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끝 한반도와 일본에는 세계 최고의 마블링과 맛을 자랑하는 한우와 화우가 살고 있다.

고립된 지역에서 독특한 유전자원이 오랜 시간 만들어진 결과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 유독 우유나 치즈를 먹는 낙농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다.

몽골의 간섭으로 조선 건국 초기에는 궁궐에 유우소라는 우유를 관장하는 기관까지 있었지만 세종 3년에 송아지가 먹을 우유를 사람들이 먹는 건 아니라고 해서 폐지했기 때문에 조선의 소들은 우유를 많이 먹어서 그 우유가 마블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축 농업을 하는 우리 조상들은 식구처럼 소를 돌보았고 콩의 원산지 만주지방과 한반도는 지천에 콩들이 자라고 있었으니 영양가 많은 콩들을 먹고 자랄 수 있었다. 서양의 스테이크 요리법을 보면 버터를 사용한다. 서양은 낙농이 발달했으나 동양은 마블링이 버터역할을 했다.

일본의 고대 소는 한반도를 거쳐 넘어갔다. 메이지 유신이후 화우를 고깃소로 개량하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흑모화우는 제주도 흑우의 피가 섞였다는 건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자료에 의하면 흑모화우를 개량하기 위해 교배된 외국종은 브라운 스위스종, 데본종, 에어셔종, 시멘탈종 등이다. 갈모화우는 구마모토현을 중심으로 사육되고 있는 구마모토계와 고치현을 중심으로 사육되고 있는 고치계가 있으며 이들은 성장과정이 다소 다르다. 구마모토계는 아소주변에서 사육되고 있던 소로 조선소가 토착화한 아소우, 야베우, 구마우 등에 시멘탈종을 교배하던 잡종을 개량한 것이고 고치계 갈모화우는 메이지시대에 수입된 조선소와 시멘탈종의 잡종을 개량한 것이다.

 

전쟁으로 고기 수요 증가

 

메이지 유신 이전 소고기를 거의 먹지 않던 일본은 러일 전쟁 당시 군인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소고기를 공급하면서 수요가 급증한다. 호주에서 냉동육을 수입하지만 당시는 냉동기술이 발전하지 않아서 실패한다. 대체지로 선택한 것이 칭다오소고기를 수입해 간다. 일본은 1차 대전 독일의 조차지였던 칭다오를 점령하고 당시 독일인이 건설했던 유럽식 도축장을 군부가 인수해서 소고기 사업을 시작한다. 중국 역시 낙농문화가 발달하지 않고 경축농업, 농가당 한 마리 정도의 소를 정성껏 사육해서 스키야끼요리용으로 적합한 질좋은 소고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1884년 부산에서 일본에 수출한 것이 대일본 조선우 수출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데 일본 입장에서 수입한 계기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지만 성질이 온순하고 극한의 극역에 시달리면서 거친 사료에 익숙하고 와규에 비해 비육이 빠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찾는이가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제역과 우역등 질병의 위협에도 조선에서 생우를 계속 수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일본이 산업의 발달로 농촌의 청년들이 도시의 공장으로 유입되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일본 농촌의 노동력이 급격히 감소해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농업용 말들이 군대로 착출돼 가면서 농촌의 노동력은 더욱 부족해 지고 조선우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1927년 조선 이출우라는 일본이 발행한 책에 부림소의 용어들이 기술되어 있는 것이 조선 이출우가 역우로 큰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역우로 이용하다 비육해서 도축하면 화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의 육질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의 화우보다 조선우가 열등하다고 평가된 이유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마블링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해방이전에 일본은 육질 개량이 마블링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과 조선은 하나의 나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수출이라는 말 대신에 이출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한우를 언제부터 한우라고 불렸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1949년 소띠해에 조선일보 17일 건설의 대동맥 전신편에 원컨대 소처럼 근면하고 묵묵한 전신 전화기술진 제공이여 기축새봄의 한우(韓牛)는 그들의 친구이니 가일층 그 청렴한 예술가적 양심과 애국적 열성으로 앞날을 비약 하라라고 나온다. 한우(韓牛)라는 단어가 나온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1958년부터는 정부 문건이나 신문에 한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김태경 미트마케터
김태경 미트마케터

시대에 따라 가축의 주요 역할이 달라진다. 1970년대까지 한우는 역우와 육우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가졌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화우를 개량하던 시기에는 한우는 육우로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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