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웃의 ‘안녕’ 빌던 청년이 떠났다
상태바
언제나 이웃의 ‘안녕’ 빌던 청년이 떠났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07.18 1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 ‘747버스’탑승자였던 조 모씨
유족들 “다음날 가족끼리 생일 점심 먹기로 했는데…”
출근길에 참사, 지인들 “책 좋아했던 착한 사람”기억
​​​​​​​개인 SNS에 세월호‧이태원 참사 애도한 따뜻한 사람

'인재지변'
유족인터뷰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15일 오전 845분께 오송 궁평2지하차도를 지나던 747급행버스에 탔다가 세상을 떠난 조모씨(남성31)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다음 날 일요일에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어요. 며칠 전 아들의 생일이었어요. 토요일에 회사 출근한다고 들었는데 연락이 안 돼 다음날 청주로 달려왔죠. 문의 톨게이트를 지날 때쯤 남편에게 아들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처음엔 거짓말인줄 알았어요.”

조 씨의 빈소는 청주 하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일단 시신이 수습되는 대로 시는 하나병원으로 옮겼다. 조 씨는 16일 오전 726분께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들에게는 몇 시간이 지나 연락이 갔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 갇혀 세상을 떠난 조모씨는 출근길 버스에 올라탔다가 생을 달리했다. 그는 독서와 바둑을 좋아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던 바르고 착한 청년이었다.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 갇혀 세상을 떠난 조모씨는 출근길 버스에 올라탔다가 생을 달리했다. 그는 독서와 바둑을 좋아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던 바르고 착한 청년이었다.

 

그는 오송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오송에 있는 직장을 가기 위해 평소에도 747급행버스를 이용했다. 거주지였던 충북대 인근에서 오송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15일 오전 폭우 및 제방 유실로 궁평2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겼고, 같은 시간 이곳을 지나던 747버스에 탔던 이들과 도로에 갇힌 운전자들이 생사를 달리했다. 버스 등 차량 15대가 물에 잠겼고, 18일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만 1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가족단톡방에도 평소 타던 747버스 노선이 가는 곳이 아니니까, 오빠가 타지 않았을꺼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졸이며 기다렸어요. 그런데 끝내그의 여동생은 연신 눈물을 삼켰다.

정말 좋은 오빠였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통화하고요. 여느 오빠 동생과는 달리 사이가 좋았어요. 여행도 같이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는 사이였어요. 5월경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너무 즐거워서 앞으로 자주 여행다니자고 얘기했었는데.”

얼마 전 결혼한 여동생의 남편은 밤낮으로 사람들이 찾아와 유족들을 위로해주셨어요. 평소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숙연해했다. 장례식장을 지키던 또 다른 유가족은 차량을 막기만 했어도, 이러한 사고가 안 일어났을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빈소를 찾은 그의 지인들은 조 씨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학 때 바둑동아리 활동을 했을 정도로 바둑을 좋아했다. 어디에서도 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국제경영을 전공한 재원이었고, 국제정세에 관심이 많았다. 직장에서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또 바둑만큼이나 책읽는 걸 좋아했다.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새벽 열리는 독서모임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었다. 독서모임에서 총무를 맡아 4년 가까이 꼬박 참석했다. 독서모임 대표를 맡았던 이광희 전 의원은 이번 시즌에 유독 책을 많이 추천하더라고요. 하반기 읽을 책을 잔뜩 사 놓았고, 아직 한 권은 미처 찾아가지도 못했어요. 4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늘 힘들 때 말없이 와서 도와줬죠. 그 친구가 없이 어떻게 독서모임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하네요. 얼마 전 713일이 생일이라 치킨 쿠폰을 보내줬는데, 미처 먹지도 못하고 간 것 같은데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정지우 소설가의 글을 아끼고, 연예인 김태리와 아이유를 좋아했던 어제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했던 청년이었다. 또 남의 아픔에 누구보다 공감해주는 사람이었다. 조 씨의 페이스북엔 그의 생전 심성을 알 수 있는 글들이 다수 올라와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 눈물을 흘렸고,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어릴 적 고향 상주에서 벌어진 축제 사고를 떠올리며 아무도 다치지 않는세상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꿈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의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장엔 정치인들이 보낸 조의화환이 입구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누구의 안녕도 빌어주지 못한다.

 


유족들 충북도에 진상규명 TF요구

충북도 개인정보법 위반이라발뺌

뒤늦게 충북도청에 합동분향소 설치

 

 

유족들은 지난 16일 저녁 9시께 참사 이후 총 36시간이 지나서야 충청북도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신형근 행정국장 등 충청북도 관계자들은 이번 참사로 하나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린 4명의 유족을 만났다.

이날 유족들은 충북도와 1시간 가량 면담을 했지만 원하는 대답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유족 A씨는 유족들끼리 모인 TF를 도에 공식적으로 구성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개인정보법때문에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구성할테니 협조해달라고 했더니 도에서 또 답을 회피했다. 결국 같은 말만 반복하다 끝났다라고 설명했다.

합동분향소 얘기도 나왔지만 시와 도가 줄다리기를 했다. 17일 현재 다만 장례비용에 대해서는 먼저 유족들이 선결제하고, 청주시에서 비용을 받는 것으로 공지받았다. 한편 청주시장은 17일 담화문을 발표했고, 16일 밤 수해복구를 위해 공무원들에게 이번달까지 하계휴가를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 대해 아직까지 지사도, 청주시장도, 국토부장관도, 대통령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충북도는 뒤늦게 합동분향소를 7월 20일부터 26일까지 충북도청 신관 민원실 앞에 마련할 계획이다. 19일 충북도와 유족 측이 합의했다. 당초 충북도는 오송 C/V센터에 합동분향소 설치를 추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