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기자의 '무엇'] 우리가 오늘 살아남았다는 것
상태바
[박소영 기자의 '무엇'] 우리가 오늘 살아남았다는 것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07.19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다는 게 빚지는 기분이다.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잇따른 대형 참사를 들여다보면서 든 생각이다. 먼저는 화가 났고, 그다음 살아남았다는 게 떠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그리고 이번 오송 참사까지. 왜이리 달라지지 않을까. 왜이리 반복될까.

우리사회의 안전재난매뉴얼은 왜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까. 사건이 터진 뒤 모습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가 재발방지 및 지원을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유족들은 정작 그러한 말들을 늘어놓은 정치인과 정부를 향해 다시 싸워야 한다. 정치적인 편가르기가 시작된다. 왜 재난이 이데올로기가 돼야 하는가. 왜 유족들이 왜 투사가 돼야 하는가. 이젠 개인정보법을 이유로 유족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차단시킨다. 죽은 이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개인정보법이 언젠가부터 진실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 같다.

진상규명도 흐지부지다. 진상규명을 하면 할수록 사건의 진실과 잘못한 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이를 회피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당장 이번 오송참사의 책임여부를 두고 벌써부터 기관마다, 단체마다, 담당자마다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어째서 우리는 매번 골든타임을 놓치는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人災)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제대로 판단했다면, 누군가 한번만 더 경각심을 갖고 행동했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이러한 비슷한 수해 사고가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고, 이를 대비할 방법이 나와있었지만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20207월 부산에서 3명이 숨진 초량지하차도 사고가 일어났다. 오송 지하차도 사건과 너무도 유사하다. 당시 차량 7대가 물에 잠겼고, 시민 3명이 숨졌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훨씬 더 피해상황이 심각하다. 18일 현재 오송 지하차도에서만 1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하지만 다음번 또다시 이러한 유형의 참사가 일어난다고 할 때 우리 사회는 진짜 막을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생사를 달리한 사람들. 그들에게 언제나 반복될 것 같던 일상이 증발됐다. 내일이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이번 오송참사로 한 청년의 죽음을 깊이알게 됐다. 청주의 한 독서모임에서 만난 청년이었는데 출근길 버스에 올라탔다가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 갇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나이가 드니 많은 사람들의 부고장이 날라온다. 하지만 이번 부고 소식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슬프다.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그가 살아있을 때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상을 떠난 뒤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통해 다시 듣는다. 눈물이 나면서도 잔인한 인터뷰다. 마음씨 착한 청년이었던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것은 모임 후 헤어지면서 나눈 환한 미소였다. 오랫동안 그 미소를 기억해야겠다. 그가 생전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를 안타까워하며 책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던 다짐을 되새겨야겠다. 그리고 나는 남은 생을 빚진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