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 지원정책, 이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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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지원정책, 이제 사람에게
  • 천정한 문화잇다 대표, 전북대 문헌정보학과 외래교수
  • 승인 2023.07.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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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으로 귀촌하기 전 서울에서 2년간 작은 도서관장을 맡아 운영했었다. 그곳은 처음부터 지역 정치인의 치적을 위해 생겨난 공간이어서 운영 주체가 없었다. 운영할 사람도 예산조차 없이 개관된 도서관은 그저 북카페로 활용되다 이내 사라질 운명에 처했으나 도서관의 필요성을 인식한 주민 몇몇이 모여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원활동가들이 조금씩 도서관 운영 체계를 잡아나갔고 도서 대출반납, 도서관리, 회원 모집, 공간 구성, 홍보 등 모든 업무를 스스로 챙겨나갔다. 지자체 및 기관 지원 사업에 공모해 문화 프로그램을 열어나갔고 책모임, 우쿨렐레 등의 동아리를 구성해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매달 열리는 도서관 운영위원회에는 동장, 지방의회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하게 만들었고 지역 소재 금융기관은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이런 노력 끝에 도서관은 서울시 평가 우수 작은 도서관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 요코하마 시청 도시재생 담당 공무원이 해외 선진지 견학으로 도서관을 다녀가기도 했다. 그는 일본과는 달리 마을 단위 내 작은 도서관들이 책문화 활동으로 지역 문화를 일구어 나가고 있는 모습에 놀랐고 또 이 모든 활동이 활동가들의 무보수로 이뤄진다는 점이 감동을 자아낸다고 했다.

이처럼 작은 도서관이 지역 생활문화 공간으로서 주민들의 삶을 바꾸고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사례는 이곳 말고도 전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서관법 4조 내용에 따르면 작은 도서관은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 친화적 도서관 문화의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도서관을 말한다. 이는 작은 도서관의 공적 역할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지자체에서 오로지 정량 평가 기준을 세워 다수의 도서관을 부실 기관으로 인식하고 지원 예산을 축소하거나 전액 삭감해 문제가 되고 있다.

작은 도서관은 공간의 한계로 장서 수를 크게 늘릴 수 없고 지자체 장서 구입비 지원이 아예 없거나, 있다고 해도 소액이어서 장서가 많지가 않다. 일반 공공도서관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이용자 수를 본다던 가, 대출보다 열람자가 많은 작은 도서관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대출 건수가 적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현장을 모르고 하는 탁상행정일 뿐이다.

현재 작은 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세종 도서, 문학 나눔 도서 기증과 일부 지자체의 장서 구입비, 문화 프로그램 지원비, 전산 프로그램 및 행정 지원비 정도가 전부이고 전국 시군구 지자체별로 차이가 크다. 그나마 이런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사업계획서, 지출 증빙, 결산서, 사업보고서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업무에 매달려야 하고 장서 관리, 도서관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 섭외, 홍보, 모집, 행사 진행과 같은 여러 일을 해내야 한다.
다시 말해 정부나 지자체 정량 평가 기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려면 1년 동안 도서관 사업을 전담할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모든 업무를 봉사라는 명목으로 도서관 활동가의 희생에만 의존해 왔다. 연차가 거듭될수록 활동가들도 지치다 보니 처음에는 활성화되었던 도서관이 갑자기 문을 닫는 경우도 생겨난다.

현재 우리나라 작은 도서관은 7000여 개에 달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운영할 사람도, 예산도 없는 작은 도서관을 계속 증설하기보다 지역에 우수한 작은 도서관들을 선정하여 전문 인력을 지원하는 방안이나 사서 채용 및 순회사서 파견 등 실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원 정책을 펴나기 바란다. 무엇보다 이제는 건물보다 사람에 지원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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