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에 화이트와인…시라쿠사
상태바
해산물에 화이트와인…시라쿠사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7.27 15: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끝까지 걸어도 30분 내외인 오르티지아섬

정연일의 지중해 섬기행⑫

시라쿠사 오르티지아섬 전경 출저= 위키피디아
시라쿠사 오르티지아섬 전경 출저= 위키피디아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섬의 동남쪽에 있다. 기원 전 734년 그리스 본토의 코린트인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원주민을 몰아내고, 시라쿠사 앞의 작은 섬인 오르티지아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섬 바깥 내륙으로 확장되었다. 시라쿠사의 발상지인 오르티지아 섬을 비롯한 구 시가 일대는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곳이다. 인문 예술 전공의 대학이 유명한 미국 뉴욕 주의 시러큐스도 이 곳에서 이름을 따왔다.

고대 그리스는 통일국가가 아니라 개별 도시국가였기에, 시칠리아섬에 정착한 그리스 사람들도 출신지와 이익에 따라 서로 대립과 반목을 했다. 2700여 년 전에 그리스 사람들이 시칠리아섬의 동남쪽 시라쿠사에 정착했을 때, 시칠리아섬의 서쪽은 지금의 튀니지, 즉 카르타고가 장악하고 있었다.

오르티지아섬과 내륙을 잇는 다리. 사진=정연일
오르티지아섬과 내륙을 잇는 다리. 사진=정연일

그리스와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섬의 패권을 놓고 격돌했고, 그리스 본토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동맹으로 나뉘어 있었다. 시라쿠사는 코린트 출신이었고, 코린트는 스파르타와 동맹이었기에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하는 시라쿠사는 같은 항구도시이자 지중해 동부의 패권 국가였던 아테네에는 눈엣가시였다.

시라쿠사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민족인 카르타고와 같은 민족인 아테네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거기에 고대 민주정과 공화정 참주정 과두정 같은 현대에도 반복되는 정치형태가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번창했던 시라쿠사는 결국 카르타고나 아테네가 아닌 신흥 세력이었던 로마에 의해 멸망한다.

지배 세력이 그리스 사람들에서 로마 사람들로 바뀌었을 뿐, 로마 제국에 병합되고도 시라쿠사는 시칠리아의 중심도시로 번창했으나, 중세 이후부터 이탈리아 반도와 뱃길이 더 가까운 시칠리아섬 북부의 팔레르모에게 1위 자리를 내어 주고 만다.

시라쿠사의 위치
시라쿠사의 위치

이후는 시칠리아의 여러 도시처럼, 동로마 비잔틴, 북아프리카 아랍 이슬람 세력, 바이킹 노르만 왕조, 스페인 등 주인이 바뀌었다. 여러 세력이 거쳐 갈 때마다 그들은 각자의 흔적을 남겼다. 시라쿠사의 매력이자 시칠리아의 매력이다.


메추라기에서 유래한 이름


오르티지아섬은 고대 그리스어로 메추라기라는 단어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섬에 메추라기가 많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섬이 메추라기처럼 생겨서 그랬나 보다. 두 개의 다리로 오르티지아섬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다리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고 육지와 섬 사이의 간격도 그리 넓지 않아, 도보나 차량으로 다리를 건너 오르티지아 섬으로 들어가도 섬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섬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최대 30분 내의 거리라 오르티지아섬은 걸어서 천천히 둘러보기 좋은 곳이다. 섬도 아름답고 바다도 아름답고 섬 내부의 켜켜이 쌓인 역사적 유적과 섬 바깥의 풍경 모두 아름답다.

시라쿠사 해안. 사진=픽사베이
시라쿠사 해안. 사진=픽사베이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오르티지아섬의 올드마켓이 있다. 유럽의 올드마켓은 이미 관광지화되어서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전통시장보다는 외지인이 더 많은 곳이 흔한데, 오르티지아의 올드마켓은 아직도 현지인들의 생활 중심지이다.

시장은 어시장과 일용 잡화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현지인들도 애용하는 여러 식당과 카페 등으로 언제나 시끌벅적한 곳이다. 현지 사람들의 삶, 시장 구경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딱인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오르티지아섬 도보 여행 전에 들러 목을 적시고 배를 채우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오르티지아섬 올드마켓의 어시장, 석화와 화이트와인. 사진=정연일
오르티지아섬 올드마켓의 어시장, 석화와 화이트와인. 사진=정연일

한국에 비해 유럽은 굴이 귀하고 비싼 편인데, 오르티지아 올드마켓의 어시장에서는 즉석에서 깐 석화를 시칠리아 산 화이트 와인 한 잔과 같이 판다. 가게 주인은 마라도나의 대단한 팬인 듯, 매대 여기 저기에서 마라도나의 초상이 보인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마라도나의 초상이 보이는 이유는, 나폴리를 이탈리아 리그에서 우승 시킨 영웅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굴을 ‘R’이 들어가는 달에만 먹는다는 말이 있다. 9September부터 4April까지이다. 한국에서는 조금 늦은 철이지만, 워낙 굴이 싱싱해 보이는 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심지어 시칠리아 산 화이트와인 한 잔은 공짜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기 어렵듯이 목마른 여행자를 유혹한다.

올드마켓의 황새치. 사진=픽사베이
올드마켓의 황새치. 사진=픽사베이

굴 하나에 화이트와인 한 잔을 마시고 너무나 맛있어, 또 하나를 더 먹고 한 잔을 더 마셨다. 굴 두 개에 화이트와인 두 잔의 가격은 한화로 7000원 정도. 유럽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이고, 이탈리아에서도 그렇다. 시칠리아이니 가능한 가격이다.


신전 위에 세운 시라쿠사성당


어시장을 둘러 보다가 현지인들이 많은 적당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새우와 오징어 튀김을 주문한다. 역시 화이트와인은 빠질 수 없다. 시칠리아 여행에서는 해산물을 많이 먹게 되고, 해산물을 먹다보니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입안에서 잡아 주는 데는 화이트와인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오르티지아섬 올드마켓의 해산물 튀김. 사진=정연일
오르티지아섬 올드마켓의 해산물 튀김. 사진=정연일

마른 목을 화이트 와인으로 적시고, 주린 배를 해산물로 채우고 에스프레소까지 한잔한 뒤에 오르티지아섬 도보 여행에 나선다. 오르티지아섬의 랜드마크인 대성당을 향해 걷다 보면, 한눈에 봐도 오래된 유적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 그리스의 유적, 아폴론 신전 터이다.

유적 옆에는 아르키메데스 박물관 광고 입간판이 보인다. 유레카의 그 아르키메데스이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 왜 아르키메데스 박물관이 있을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찾아보니,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에서 태어나고 시라쿠사에서 죽었구나. 시칠리아가 시라쿠사가 고대 그리스 인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더 실감나게 와 닿는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의 아르테미스 (다이아나) 분수. 사진=정연일
아르키메데스 광장의 아르테미스 (다이아나) 분수. 사진=정연일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원형 광장 겸 로터리가 나오는데 광장의 이름도 아르키메데스이다. 광장에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된 분수가 있는데, 분수에는 그리스 신화의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활을 몸통에 비끄러매고 서 있다.

로마 신화에서는 다이애나, 원더우먼의 영화 속 이름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인지 유럽, 특히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미국 캐나다 등 북미 대륙에서 온 여행자를 꽤 자주 만난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을 지나 길고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시라쿠사 대성당의 오른쪽 측면이 나온다.

시라쿠사 대성당의 좌측 벽면, 그리스 신전의 기단과 기둥이 보인다.
시라쿠사 대성당의 좌측 벽면, 그리스 신전의 기단과 기둥이 보인다.

시칠리아섬에서 성당 딱 한 곳을 본다면 팔레르모의 몬레알레이지만, 두 곳을 본다면 시라쿠사 대성당이다. 개인적 취향은 몬레알레보다 시라쿠사 대성당을 더 좋아한다. 시라쿠사 대성당 시칠리아섬의 여러 성당처럼 역시 아랍 노르만 양식이긴 하지만, 시라쿠사 대성당은 그리스 로마 신전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당의 측면과 내부에 들어가서 보면, 그리스 로마 신전의 기단과 기둥을 성당에 그대로 포함해 지었기 때문이다. 재활용의 가장 바람직한 사례이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현재 북유럽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