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삶 속에 청주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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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삶 속에 청주시는 없었다
  • 김재수 협동조합형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 대표
  • 승인 2023.08.10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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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정치는 추모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

 

 

김재수 대표 

죽었다. 또 죽었다. 80년 오월 광주 금남로에서 죽고, 군사독재에 맞선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제 몸 사르며 죽고, 조선소에서 발전소에서 건설현장에서 해마다 공장에서 일터에서 380여 명 넘게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팽목항 세월호에서 이태원 좁은 골목에서 죽음이 넘쳐날 때도 국가는 없었다.

2023년 7월 15일 아침 8시 30분 오송 궁평2지하차도에서 또 죽었다. 거대한 권력처럼 검붉은 황톳물은 사람들을 집어 삼켰다. 하늘만 바라보던 사람들은 무릎 꿇은 채 저항 한 번 못했다. 출근 길에 근무 중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수장 되었다.

땅 속에도 길 위에도 빨간 시내버스 속에도 모든 사람의 삶 속에도 국가는 없었다. 청주시도 없었다. 오로지 빨간 시내버스 한 대만이 애처롭게 비극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그 이름은 ‘747’이다. 청주시가 자랑하는 오송과 청주공항을 오가는 전기차 급행버스이다.

청주시는 이야기한다. “저 747 시내버스가 왜 저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 한마디 말로 청주시는 청주시민들의 가슴에서 완벽하게 지워야 할 권력이 되었다. 청주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가슴에도 강물이 가득 찼다. 쑥물 같은 시퍼런 트라우마는 권력이 만들었다.

청주시는 없었다. 새벽 5시부터 미호강이 세상을 삼키려 몸부림칠 때부터 운행 노선에 대한 최초의 업무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3시간 동안에도 청주시는 없었다. 거센 폭우 속에서도 ‘747’ 시내버스 노동자는 목적지까지 시민들을 모시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 충실했다. 오송으로 모셔야 할 청주시민들을 존중하고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했다. 그것이 죽음의 이유이다.

그런데도 청주시는 “747 시내버스가 왜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한다. 준공영제 하에서 노선운영권은 청주시에 전권이 있는데도 “모르겠다”고 발뺌한다. 변명과 책임 회피가 난무하는데 청주시는 여전히 청주시민 속에 없었다. 빨간 시내버스 속에도 청주시는 흔적 하나 없었다

청주시는 청주시민을 버렸다. 청주시는 시내버스 노동자를 내쳐버렸다. 시내버스는 잠수함이 되었고, 승객들은 토끼가 되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산소와 공간의 공격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청주시는 넘치는 강물이었고, 청주시는 오송 궁평2지하차도이었고, 청주시는 747 빨간 급행버스이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참사 현장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 참사 현장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더는 죽이지 마라. 더는 꽃을 베지 마라. 추모 펼침막을 거리마다 부착하는 것이 정치는 아니다. 검은 리본 달고 추모행사장에서 머리 숙여 묵상하라고 청주시장을 선출한 건 더욱 아니다.

진정한 정치는 추모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훌륭한 정치는 추모 행사가 아니라 재해와 죽음을 방지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추모하는 정치는 스스로 임무를 방기한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다. 추모 없는 생명과 행복이 정치의 시작이자 종착지이다.

더는 죽지 말자! 더는 죽임을 당하지 말자! 천재이든 인재이든, 사회적 죽음이든, 경제적 죽음이든, 제도적 죽음이든, 권력이 부여하는 그 어떤 죽음도 거부하자! 죽음과 추모의 정치를 물리치고 생명과 살림을 선택하자!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돌팔매질하고 팔뚝질하며 핏대 세워 온몸으로 외치자! ‘더는 죽이지 말라고’ ‘더는 죽지 말자고.’

우진교통 노동자들은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절규했다. 생물학적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경제적 사회적 죽음에 맞서기 위하여, 휴지통에 구겨 버려진 노동권을 되찾기 위하여, 오줌권과 법정교육비를 쟁취하고, 노동시간을 분할하여 하루 세끼니 중 두 끼니만 지급하는 얄팍한 청주시에 맞서 잃어버린 한 끼를 되찾기 위하여, 당사자 교섭으로 임금가이드라인 철폐와 준공영제 갱신협약 쟁취를 위하여 점령군 같은 불통의 청주시에 맞서고 있다.

이미 청주시청사 건립과 여러 정책 변경 과정에서 청주시민과 시민단체의 뜻을 철저히 묵살했음에도, 청주시는 양치기 소년처럼 청주시민의 뜻이라고 목청 높인다. 청주시민의 이름으로 청주형 준공영제도 똑같이 공격한다. 청주시민을 위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청주시에 청주시민은 없었다. 그러나 준공영제는 다를 것이다. 청주에는 우진교통이 있다. 상생의 철학이 담긴 청주형 준공영제의 설계자인 우진교통이 있다.

다시 한번 곱씹는다. ‘추모는 정치와 행정의 본질이 아니다.’ ‘살리는 일이 정치와 행정의 본연이다.’ ‘준공영제는 행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노동자들 무엇보다 교통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더는 죽이지 마라! 더는 꽃을 베지 마라! 우리 더는 숨 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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