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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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 않는 삶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08.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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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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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은 여러 가지 얘기 중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얘기는 핸드폰의 전화번호부에 관한 것이다. 부자들이나 힘 있는 사람일수록 전화번호부에 많은 사람들의 번호가 있는데, 고독사한 사람들의 핸드폰에는 번호가 몇 개 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6년 막 세 살이던 둘째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또 폐렴으로 다시 입원했다. 날 때부터 호흡기가 약했다. 매년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작년에도 입원했다. 올해는 여름 감기에 걸려 결국에는 주말에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이 파업 중이라, 응급실에서 호흡기 치료만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많이 좋아져서, 그냥 버티는 중이기는 한데, 파업이 아니었으면 아마 바로 입원했을 것이다. 그 시절, 아내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외부에서 하던 활동을 정리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취업 준비를 시작해서, 다시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남자 어린이 둘을 보고 있으면 사실 고독할 틈이 없다. 그때 고독이 사치재라는 생각을 얼핏 했다. 누군가 아이를 보는 걸 도와주거나, 아니면 돈을 내가 도움을 받아야 혼자 있는 고독을 잠시라도 즐길 수 있다. 그렇다. 아이를 키우고 있을 때에는 돈을 주고라도 사고 싶은 게 고독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삶에서 고독은 피하고 싶은 기피재에 가깝다.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이 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사람들 만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가끔은 있는데, 아직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다니거나 혼자 밥을 먹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2000년대 초반에 낭만 가득한 여행과 같은 광고가 한참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혼자 떠나봤는데, 낭만은 없고 만 가득했다.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주로 우리 집 어린이들 다 데리고 여행을 가기 때문에, 멀리 떠나도 역시 육아의 연속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생기면, 그야말로 감사할 뿐이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가만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별로 고독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차원으로 오면, 대체적으로 경제적 부와 사회적 관계는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가난할수록 고립되고, 사소한 도움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한국에서 핵가족이 전면화된 것이 이제 50년 정도 되는데, 그것도 오래 버티지 못 하고, 이제는 다양한 종류의 1인 가구가 전면화되었다. 2000년대 프랑스에서 여름 폭염으로 노인들의 고독사가 급증하면서 사회연대부라는 정부 부처가 생겨나기도 했다. 고독은 더 이상 개인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 만나고, 사교를 하기 위한 캠페인을 하라고 풀릴 일도 아니다.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된 지금, 사실 불필요하게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가족들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얼마나 더 유지될지도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지나친 고독은 단절을 만들고, 우울증과 자살을 야기시킨다. 지자체 특히 기초 지자체 차원에서 고독을 정책적 목표로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고독을 줄여주는 정책적 수단들이 결국 무형의 도시 인프라가 될 것이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거칠지 않고 섬세하게 고독한 개인들에게 다가가는 지역 정책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독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 도시,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정책 목표가 될 것 같다. 도시 설비와 경관이 하드 인프라라면 고독을 잘 다루는 지역의 여러 장치들은 소프트 인프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독에 대처하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와 투자, 이런 발상은 매우 인간적인 정책을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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