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기로회도, 300년 전 행사 ‘찰칵’ 찍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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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로회도, 300년 전 행사 ‘찰칵’ 찍은 듯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8.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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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수도군파 국립청주박물관 기증, 문화재 지정 절차
1730년 영조가 칠순 이상 관료 21명 초대해 베푼 ‘경로잔치’
둥글게 앉은 구도, 구경꾼 배치 등에서 ‘김홍도 영향’ 엿보여
도화원이 그려 참석자에 선물…국립중앙박물관도 1점 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청주국립박물관과 똑같은 이원기로회도 한 점이 소장돼있다. 기로회도 중앙 왼쪽에는 세워 놓은 나무판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포구락 게임 중인 기녀들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처용탈을 쓴 다섯 명이 처용무를 추고 있다. 스물한 명 앞에 놓인 각각의 상에는 고여 놓은 주요리와 거기에 꽂은 상화가 보인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청주국립박물관과 똑같은 이원기로회도 한 점이 소장돼있다. 기로회도 중앙 왼쪽에는 세워 놓은 나무판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포구락 게임 중인 기녀들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처용탈을 쓴 다섯 명이 처용무를 추고 있다. 스물한 명 앞에 놓인 각각의 상에는 고여 놓은 주요리와 거기에 꽂은 상화가 보인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제공

300년 전 조선의 왕이 나이 든 관료들을 위해 베풀었던 잔치를 그린 그림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잔치의 참여자는 스물한 명. 지금의 기념사진처럼 잔치 모습을 그리고 참석자들의 면면까지 적어놓은 일종의 계원 명부가 계첩(契帖)’이다. 계첩은 참석자 전원에게 기념품처럼 제공됐다.

1730(영조 6) 413, 서울 도성의 장악원(掌樂院, 궁중의 음악·무용에 관한 일을 맡았던 예조 산하의 관청)에서 열린 연회 장면을 기록한 이원기로회(梨園耆老會) 계첩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지정을 받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이원(梨園)은 장악원의 다른 이름이고, 기로(耆老)노인을 뜻하는 한자가 연거푸 쓰였으니 장수한 노인을 뜻하는 말이다.

스물한 명에게 나눠줬던 이 계첩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청주박물관에 각각 한 점씩 모두 두 점이 전해지고 있다. 기로회 참석자 스물한 명 중에 두 가문에서 계첩이 물려 내려온 것이다. 이번에 충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심사에 들어간 것은 청주박물관 소장본이다. 당시 기로연에 참석했던 이상엄(정종의 일곱째 왕자인 수도군의 10세손)이 물려준 계첩을 전주이씨 수도군파 정보공종회에서 소장해오다가 2010330,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원기로회 계첩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실은 당시의 궁중 행사 등 중요 행사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지역문화의 가치를 선양하고,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도 지정문화재로 지정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특히 계첩의 표지를 넘겨서 펼친 면에 그린 이원기로회도의 가치가 남다르다. 계첩은 가로 24.8cm×세로 35cm 크기지만 그림은 펼친 면에 있으므로 가로가 49.6cm.


참석자 중 최고령은 89

 

이원기로회도 일부. 동그라미 안은 각각 포구락과 처용무.
이원기로회도 일부. 동그라미 안은 각각 포구락과 처용무.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는 이원기로회도가 옥내의 계회 장면을 부각시키고 주변에 산수를 더하여 조선 중기 문인계회도의 전통을 따르면서 구도와 인물 묘사, 산수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여준다라고 나와 있다.

e뮤지엄은 또 이 그림에서의 묵법이나 나무를 표현한 수지법은 남종화법에 토대를 둔 조선 후기 계회도의 형식을 보여준다특히 둥글게 앉은 인물들의 구도, 구경꾼의 배치,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군과 뒷모습의 인물 설정 등에서 김홍도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계첩은 그 기록을 통해서 참석자들의 이름과 출생연대, 본관, 회원의 품계, 관직 등의 목록을 전하고 있다. 참석자 스물한 명은 이상엄 외에 홍수렴, 심정좌, 김하면, 최주악, 윤춘교, 강석후, 김하명, 엄경우, 심상찬, 이형령, 김홍권, 이이태, 강석태, 정중만, 홍서하, 이사윤, 윤의, 박태범, 황하필, 조장 등이다. 이 가운데 최주악(1651~?)은 시인이자 문장가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이원기로회 참석자들은 나이순으로 앉았는데 1642년생인 홍수렴은 당시 여든아홉 살이었다. 이원기로회 참석자들의 나이 커트라인은 칠순이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장수 노()관료들의 모임이었던 셈이다. 왕이 잔치를 열어줄 만했다.

2016년 청주에서 열렸던 이원기로회 재현 행사를 자문했던 정제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충청리뷰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원기로회는 어른을 대우했던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장악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제규 전문위원은 특히 그림 속에 궁중무가 들어가는 연희의 형식이나 상차림까지 녹아있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라면서도 현재 문화재 지정 심사 절차에 있는 만큼 얘기해 줄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2016년 청주서 그림 그대로 재현하기도

처용무-포구락 등 전문가 고증받아서 공연해 화제

수도공파 후손들 대역일주반에 음식까지 그대로

 

처용무는 무형문화재와 기능 이수자가 직접 공연했다.
처용무는 무형문화재와 기능 이수자가 직접 공연했다.

2016612일 오전 충북 청주시 중앙공원 안에 있는 망선루(충북도유형문화재 110)에서 열리는 이원기로회재현 행사가 열렸다.

도화원 화가가 그렸다고 추정하는 이 그림에서 장악원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대의 전진기지로 징발된 이후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청주에서 열린 행사이므로 망선루가 장악원을 대신했다.

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스물한 명의 노인들이 누정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주연을 즐기는 모습은 그림을 국립청주박물관에 기증한 전주이씨 수도군파 후손들이 재현했다.

2016년 망선루 재현행사에서 포구락을 재현하고 있다.
2016년 망선루 재현행사에서 포구락을 재현하고 있다.

중앙에서는 처용탈을 쓴 다섯 사람이 처용무를 추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생들이 편을 갈라서 포구락(抛毬樂, 나무판에 구멍을 뚫어 공을 던져넣는 게임)을 시연하고 있다. 청색 도포에 갓을 쓴 악공들은 대청 아래에서 해금과 대금, 장구 연주에 여념이 없고, 누각 아래의 대문과 버드나무 사이에는 연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행사의 디테일은 스물한 사람의 앞에 각각 차려진 연회상까지 재현한 데서 돋보였다. 다리가 하나의 기둥으로 되어 있는 일주반(一株盤)’이며, 상의 가운데에는 주요리로 고임음식이 놓여있다. 또 고임 음식은 상화(床花, 궁중의 잔칫상에 놓은 꽃)를 꽂고 있다. 주요리 주변에는 작은 그릇이 원을 그리며 놓여 있다.

기록화나 다름없는 그림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1730년 그 기록을 만나다란 이 행사는 전주이씨 수도군파 정보공종회(회장 이종선)와 문화유산활용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고임 음식과 상화도 그림 속 그대로 차렸다.
고임 음식과 상화도 그림 속 그대로 차렸다.

주최 측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음식·무용·의복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재청은 그림 속의 음악, , 도자기 등의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재정립하는 작업에 흔쾌히 동참했다. 잔칫상 차림은 조선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중요무형문화재 38) 씨가 자문했다.

처용무 공연에는 기능보유자인 김용(중요무형문화재 39) 씨와 이수자인 김용목 씨가 직접 참여했다. 포구락과 가악 연주, 삼현육각, 시조 낭송 등의 재연에도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종선 종회장은 “18세기 전반기 기록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이원기로회도가 중요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서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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