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또 발등 찍히니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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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도끼에 또 발등 찍히니 “못 참아”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09.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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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시장, 중대시민재해 고발 찬성이 반대의견 2배
최근 참사에도 불구 ‘충북은 안전하다’는 믿음은 여전
​​​​​​​재난관리체계 분산 참사 키웠고 ‘복구도 늦다’는 평가

충청리뷰 정례여론조사 NO.4
고발 찬성 압도적

유독 재난이 빈번한 땅이 있다. 혹한이나 가뭄, 풍수해가 잦은 곳이나, 지각변동이 활발한 곳이다. 지구를 놓고 봐도 가장 큰 판인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인도호주판과 맞물리는 경계선을 불의 고리라고 한다. 활화산과 휴화산의 75%가 여기에 몰려있으며, 90%에 이르는 지진이 여기에서 일어난다.

작은 우리나라도 오밀조밀한 차이가 있다. 통계적인 분석인지는 몰라도 충북은, 특히 청주는 비교적 재난에 안전하다는 통설이 있었다. 그런데 2017년 청주권 수해 이후 통설이 부정당하고 있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아예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New Normal’‘Normal’이라고도 한다. 새로운 기준 또는 예측할 수 없는 기준이 곧 기준이 됐다는 얘기다. 영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변명이 통해서는 안 된다.
 

충북지역 시민단체가 7월 19일 오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해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행복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충북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충북지역 시민단체가 7월 19일 오전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해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행복청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충북경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충북도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충청리뷰 정례여론조사(4)를 통해 물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해 김영환 충청북도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에 대해 유가족들과 생존 피해자, 시민사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장을 낸 상황이다. 김영환 지사에 대해서는 주민소환도 추진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도끼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읽힌다. ‘믿음은 여전하데 못 참겠다?’는 말은 양가감정(兩價感情)’형용모순(形容矛盾)’도 아니다.

충북의 지리적, 환경적 조건은 여전히 재난에 안전한 것 같은데, 재난의 콘트롤타워, 즉 도끼를 사용하는 자들이 서툴거나 태만해서 주민들의 발등을 연거푸 찍었다는 얘기다. 요약하면 믿는 도끼에 또 발등 찍히니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분노의 표출이다.


 



충청북도는 안전하다는 인식의 정도

전통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안전하다56.7% 동의

 

충청북도는 안전한가?’라는 물음에 두 가지 전제를 달았다. 하나는 오송 참사와는 별개로’, 둘은 전통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함’ 15.0%, ‘동의하는 편’ 42.1%를 더해 57.1%가 동의했다. ‘비동의라는 응답은 36.1%로 낮았다.
 

 

이는 지난 5,6년 사이 수해에도 불구하고 태풍이나 지진 등의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인 태풍의 경우 대개 영호남에 상륙해 서해나 동해로 빠져나가고 내륙을 관통하는 사례는 적은 편이다.

지진은 불의 고리방향에 있는 경남북 해안에서 빈발하는 편이다. 움직이는 땅의 균열, 즉 단층이 주로 영남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진 발생의 75% 정도는 영남권에서 발생했다.

폭우와 강진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안전지대라는 통념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태풍과 관계없이 대기의 강이라고 부르는 띠 모양의 비구름이 한반도 상공에 정체하거나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기 때문에 국지성 호우 피해가 커지고 있어 충북에도 비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그래도 충북이 안전하다는 답변은 지역 별로는 보은옥천영동 등 남부권(74.0%)’, 연령대 별로는 ‘60세 이상(65.9%)’에서 동의가 높게 나왔다. 이에 반해 ‘30는 비동의(48.3%)가 동의(41.1%)보다 높았고, 직업 별로도 학생에서 비동의(50.9%)가 동의(39.9%)를 크게 앞섰다.


 


 

최우선 수립해야 할 재난 정책

우왕좌왕 지휘체계 통합 등 효율적 재난관리 필요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 그중에서도 관재(官災)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비가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미호천교 확장공사와 연장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기존 제방을 헐어 화물차 통행로로 활용하는 등 안전불감증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홍수경보가 발령되자 서둘러 임시로 제방을 쌓았지만, 기존 제방보다 1.6m나 낮아서 물살이 타고 넘었고 급기야 허물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공사 과정에서 안전 감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물이 넘치거나 제방이 붕괴됐더라도 차량 통제나 대피가 제때 이뤄졌더라면 열네 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치는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민들이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은 다른 지하차도로 출동했고, 소방은 제방에 출동하고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자리를 떴다.

도로 관리 주체인 충북도는 지하차도가 침수될 때까지 CCTV로만 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청주시장은 사고 당일 현장에 6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났고, 지금도 청주시 소관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우선 수립해야 할 재난 정책에 대해 28.9%통합지휘체계 등 효율적인 재난관리 시스템 마련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28.0%구호품 비축 등 피해자 사후지원책 마련이라고 응답해 두 답변이 총 여섯 개 응답 중 3분의 2를 차지했다. 따로 움직이면서 우왕좌왕한 지휘체계를 통합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나왔다.

사후지원책 마련이 높게 나온 것도 타당성이 충분해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3(2020820238)간 수해 복구·지원 관련 민원을 분석한 결과 총 105206건이 집계됐다. 주요 민원은 담당 기관 분산으로 복구 지원 지연 장기적 복구 계획 부재로 피해 발생 복구 작업에 대한 진행 상황 제공 요청 등이었다.


 


 

오송 참사 중대재해법 고발에 대한 의견

충북지사청주시장 중대시민재해 고발 58%잘한 결정

 

이번 조사에서 가장 결과가 궁금했던 것은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에 관한 지역민들의 의견이었다. 오송참사 시민대책위와 유가족협의회는 각각 719일과 811, 김영환 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의 잘못이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2022127, 중대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간 이후로, ‘중대산업재해로는 20건이 기소됐고, 3건의 판결(1명 구속)이 있었다. 여기에다 20234, 경기도 성남에서 보행교가 무너져 한 명이 숨진 것과 관련해 신상진 성남시장이 911중대시민재해로 첫 기소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대시민재해의 피해정도는 사망자가 한 명 이상 발생하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열 명 이상 발생,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 열 명 이상 발생 등의 조건이 있다. 열네 명이 숨지고 열 명이 다친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이 조건에 모두 부합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경영책임자 즉 기관장급을 처벌하도록 돼 있다. 법정구속도 가능하다.

하지만 선출직 단체장에게 처벌로 책임을 물은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여론의 향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여론은 단호했다. 시민단체와 유가족협의회 고발이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58.1%로 절반을 넘었다. 특히 매우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31.7%나 돼, 눈길을 끈다.

잘못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29.1%로 딱 반토막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12.7%로 결정을 유보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성별로 분석해 보면 청주권(59.2%)과 중부권(77.2%) 등 수해가 집중된 지역에서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이 단연 높았다. 연령대 별로도 뚜렷한 경향을 보였다. 30(68.7%), 40(70.8%), 50(63.7%) 등에서 잘한 결정에 힘을 실었다. 다만 60대 이상에서만 잘못한 결정(47.3%)’이라는 응답이 잘한 결정(45.25)’보다 오차범위 안에서 높았다. 성별로는 여성(62.75)’남성(53.7%)’보다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 비중이 높았다.

분명한 것은 60대 이상을 제외한 지역, 연령, 성별 등 모든 특성별에서 중대시민재해로 처벌하길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선영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2017년 수해부터 충북은 안전하다는 통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특히 오송 참사는 대여섯 개 기관의 사실상 무대응이 사고를 키웠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단체장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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