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도 맞고, 말타의 매도 맞다
상태바
몰타의 매도 맞고, 말타의 매도 맞다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09.16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중해의 섬 중에 키프로스와 함께 독립국가인 두 곳

새 연재: 지중해 몰타를 가다

몰타 지도

몰타에 간다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가 참치 먹으러 가느냐고 댓글을 남겼다.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 맵에서 몰타라는 상호를 검색해보면, 실제 서울 강남의 유명한 참치 전문점이 나온다. 참치 전문점 외에도 대한민국에 몰타라는 이름의 업장이 꽤 많아서 놀랍다. 대부분 업소가 카페와 술집이다.

지금은 몰타라는 국호가 자리 잡았지만 과거 대한민국에서는 말타라고 불렸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원조로 꼽히는 대실 해밋의 소설 말타의 매와 하얗고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인 까만 눈과 코가 특징인 말티즈강아지가 모두 몰타에서 유래했다. 말타가 몰타로 바뀐 이유는 영어로는 Malta를 말타가 아니라 몰타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이다.

착륙 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몰타.
착륙 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몰타.

몰타는 영어권 국가다.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 점령을 몰아낸 영국이 몰타를 지배하면서 몰타는 영어권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독어,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유럽 언어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말타라고 부른다.

지중해에는 섬이 많이 있지만 독립국가를 이룬 섬은 딱 두 곳밖에 없다. 이탈리아반도를 기준으로 지중해 동쪽의 키프로스와 지중해 서쪽의 몰타 두 곳이다. 두 섬나라보다 훨씬 더 큰 섬이 많지만 독립 국가를 이룬 곳은 없다. 크레타는 그리스에,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는 이탈리아에, 코르시카는 프랑스에 속해있다. 지중해의 섬들은 여러 세력의 교차지점이라는 지정학적 특징을 공유하지만, 몰타와 키프로스는 그 특징이 더욱 강하다.


몰타의 키워드는 구호 기사단


시칠리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랍 노르만 교차지배라면, 몰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기사단이다. 정식명칭은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이다. 줄여서 성 요한 기사단 또는 구호 기사단이라고 부른다.

구호기사단 상상도. 영문 위키피디아.
구호기사단 상상도. 영문 위키피디아.

구호 기사단은 유럽 십자군 원정기에 탄생했다. 서기 1080년 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들을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병원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기 1291년 이슬람 세력이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일대를 점령하면서, 기독교 세력이 쫓겨나며 예루살렘에 있던 구호 기사단은 키프로스 섬을 거쳐 지금은 그리스령인 터키 인근의 로도스섬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이 시기, 예루살렘을 두고 벌였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공방전을 다룬 영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명작 킹덤 오브 헤븐이다.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보면 정말 감동적인 영화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평범한 중세 전쟁영화 중 하나로 보일 뿐이다. 킹덤 오브 헤븐은 역사적 고증에 매우 충실한 영화로 손꼽히기도 한다. 서기 1309년 로도스섬에 자리 잡은 구호 기사단은 1500년 대에 이슬람 세력의 신흥강자로 떠오른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충돌한다.

구호 기사단의 상징인 성 요한 십자가. 오늘날 몰타 선적의 선박 뒤에 걸려있어 지중해 크루즈 여행 시 자주 눈에 들어온다.
구호 기사단의 상징인 성 요한 십자가. 오늘날 몰타 선적의 선박 뒤에 걸려있어 지중해 크루즈 여행 시 자주 눈에 들어온다.

로도스섬은 제주도의 4분의 3 정도 크기인 섬이나, 위치가 그리스보다는 터키 해안선에 더 가깝다. 작은 부족으로 시작한 투르크는 지금의 투르키예 영토인 아나톨리아 반도를 차지하고 마침내 보스프러스 해협 넘어 1000년 역사의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함락시킨 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발돋움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는 오스만 제국에게 에게해의 로도스섬에 자리 잡은 기독교 잔존세력인 구호 기사단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서기 1522, 300여 척의 함선으로 로도스섬에 상륙한 오스만투르크의 10만 대군을 겨우 8000여 명의 구호 기사단이 무려 6개월 동안 끈질기게 막아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로도 유명한 로도스섬 공방전이다. 10만 대군으로 반년 가까이 공략했지만 실패한 오스만의 술탄 쉴레이만은 기사단의 용맹에 감탄하며 안전한 퇴군을 보장하고, 기사단은 이를 받아들여 쉴레이만이 제공한 50여 척의 함선에 나눠타고, 당시 베니스 공화국의 영토였던 그리스 크레타섬을 거쳐 1530년 몰타에 정착했다.


금은보화로 장식한 매 조각상

 

말타의 매 영어판 표지. 영문 위키피디아
말타의 매 영어판 표지. 영문 위키피디아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는 구호 기사단에게 몰타섬을 할양하며, 형식적인 조공으로 매년 몰타산 매 한 마리를 바치라고 요구했는데, 어느 해 구호 기사단은 황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살아 있는 매 대신 금은보화로 장식한 매 조각상을 바친다. 어느 날 조각상이 사라져 제정 러시아로 흘러 들어갔고,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들어온 황금보석 매 조각상을 놓고 벌이는 암투가 영화로도 제작된 추리소설 말타의 매의 시놉시스이다. 영화에서는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았다.

구호 기사단의 몰타 정착 이후에, 스페인의 레콩키스타와 지중해 북아프리카 점령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다시 몰타를 침공했으니 로도스섬 공방전과 마찬가지로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다. 제주도의 4분의 3 크기인 로도스섬에 비해 몰타는 강화도 크기와 비슷한 정도로 크지 않지만, 섬 전체가 바위산이라고 할 정도로 지형이 험준하다.

구호 기사단은 작고 좁지만 험준한 몰타섬의 지형을 이용해, 섬 곳곳에 난공불락의 성채를 쌓아 올렸다.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부터 몰타를 지켜 낸 프랑스계 당시 기사단 단장의 이름은 장 드 라 발레트였다. 현재 몰타의 수도인 발레타는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로도스섬 공방전
로도스섬 공방전

이후 18세기에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며, 유럽 대륙의 기사단은 대부분 해체한다. 댄 브라운 등의 서양 작가가 쓴 음모론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는, 아직 해체하지 않고 비밀결사로 남아 있는 것으로 종종 등장한다. 몰타의 구호 기사단은 이집트 원정 시 함대를 이끌고 몰타를 찾은 나폴레옹에게 항복한다. 같은 기독교 유럽국가인 데다, 기사단의 주류가 프랑스계였던 이유가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시대가 달라져서 유럽에서는 중세가 끝나고 근대국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중세를 기반으로 한 봉건적 관계의 기사단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으리라.

나폴레옹 이후, 영국이 몰타를 점령하면서 명맥을 잃어가는 구호 기사단은 몰타를 떠나 이탈리아 북쪽 트리에스테로 갔다가 이탈리아 내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마침내 1834년에 로마에 기사단 지부를 세웠다. 구호 기사단은 지금도 활동하고 있지만, 무력을 기반으로 한 과거와 달리 현재는 구세군 같은 NGO 단체에 가깝다.


몰타 기사단 한국지부가 있다?

 

몰타 공방전
몰타 공방전

과거에는 귀족만 가입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평민과 비유럽인에게도 문호가 열려있다. 심지어 한국인 중에서도 몰타 구호 기사단 단원이 있다. 두산그룹의 전 회장이었던 박용만 회장이 몰타 기사단 한국지부의 대표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몰타섬의 크기는 강화도 정도로 작다. 특히 가까이 있는 시칠리아섬과 비교하면 80분의 1 크기이다. 시칠리아섬과 달리 45일 정도면 대략 둘러볼 수 있다. 험준한 바위산 지형이라, 자연환경은 척박하지만 섬을 둘러싼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1964년 영연방 국가로 독립했지만, 1800년대부터 영국의 지배로 인해 유럽에서 영국 바깥에서 영어권 국가인 나라이기에, 몰타 여행은 언어 장벽도 낮다. 그래서 한국인 언어 연수생 유학생도 많다.

그러다 보니 몰타 여행을 소개한 블로그나 후기를 보면, 대부분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 위주이다. 피상적이다. 구호 기사단의 역사를 모르면 몰타 여행을 다녀와도 가장 중요한 것은 못 보고 지나친 셈이다. 물론 그것도 틀렸거나 나쁜 여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여행의 방식은 각자 다른 것이니까. 단지, 몰타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여행 전 십자군 전쟁과 기사단에 관한 영화나 책자를 보고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몰타 여행이 훨씬 더 풍부해지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이해의 폭이 더 깊어진다.

시칠리아섬 제2의 도시, 카타니아를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하강하기 시작했다. 구름을 뚫고 내려오니, 몰타를 이루는 섬 세 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큰 섬이 수도인 몰타섬, 작은 섬이 고조 섬, 그리고 두 섬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 푸른 바다로 유명한 코미노섬이다. 몰타 여행이 시작되었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그는 9월 13일부터 아프리카 여행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