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세종‧대전‧충남이 함께하는 2027년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체조경기 개최를 강력 희망했던 제천시의 염원이 수포로 돌아갔다. 충북도가 이 대회 체조경기장을 제천이 아닌 청주로 사실상 낙점했기 때문이다.
지역 체육계와 제천시에 따르면 충북도와 청주시는 국비 300억 원과 지방비 701억 원 등 1001억 원을 들여 청주시 흥덕구 석소동 130-9번지 일대 6만 1772㎡ 부지에 연면적 2만 5086㎡(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체육관을 건립키로 했다. 이 경기장은 U대회 체조경기를 위해 충청권에서 유일하게 신축하는 체육관이어서 체조경기장 제천 유치에 올인하다시피한 제천시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지역에서는 이 같은 결정이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입김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지사와 같은 당(국민의힘) 소속인 김창규 제천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례적으로 김 지사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 시장은 지난 11일 제천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7 하계U대회 체조경기 개최지에서 제천이 사실상 배제된 것은 “제천의 바람을 저버린 결정”이라며 “제천시민들은 다시 한 번 제천 홀대를 넘어 충북 북부권 홀대에 따른 상실감을 안게 됐다”고 성토했다. 그는 “지난해 2027 하계U대회 충청권 개최 발표 후 제천시와 (지역) 체육인들은 체조경기 유치와 체조경기장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5월 U대회 제천 배제에 항의하는 집회 당시 김영환 지사는 ‘경기장 배정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상기했다.
김 시장은 그러면서 “충북도가 경기장 배정 재논의는커녕 별다른 후속 조치 없이 U대회 체조경기를 청주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제천지역 체육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며 “U대회 체조경기 배정과 체조경기장 건립을 체조 저변 확대가 가능한 지역, 대회 이후에도 경기장 활용이 가능한 지역에서 진행해야 합당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역사회의 반발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난 18일 제천시체육회 주요 인사를 비롯한 제천시민 수백 명은 청주 충북도청을 찾아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제천 인근 충주가 조정 경기장으로 선정됐듯 체조 인프라가 충분한 제천이 체조경기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마땅함에도 김 지사가 청주를 개최지로 밀면서 괜한 차별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이들은 “충청권 U대회에서 제천이 완전 배제된 것은 그동안 만연해 온 제천 홀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서 “제천이 충북에 속한 게 맞기는 하냐?”고 되물었다.
지역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체조경기장 제천 유치를 검토하겠다던 김 지사가 결국 청주를 선택한 데에는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이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김 지사 소환을 시민 운동을 넘어 범도민 운동으로 확산시키자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야당 소속 전직 시의원 A씨는 “김 지사가 이번 주민소환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구 13만 명에 불과한 제천시민보다는 도민의 과반이 몰려있는 청주시민들의 환심을 사는 게 전략적으로 훨씬 득이 된다”며 “도정을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행사하는 노회한 구시대 정치인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소속 B씨도 “그동안 김 지사가 충북에서 여당 도지사로 공천받고 온갖 실언과 실책 속에서도 이만큼 버틴 것은 제천‧단양 등 북부권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여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맹목에 가깝도록 방어막을 쳐 준 덕”이라면서 “체조경기장마저 청주에 빼앗긴다면 더 이상 (김 지사를) 쉴드쳐 줄 명분도 사라지는 셈”이라며 김 지사를 격정적으로 성토했다.
한편 지난 5월 김 지사의 제천 방문 당시 제천시민들은 ‘U대회 제천패싱’에 항의하며 김 지사의 시청 방문을 막아섰다. 결국 1시간여 동안 시민과 대치하던 김 지사는 실력 행사에 나선 시민들 앞에서 “대한체육회 회장 등과 대회 경기 배정 등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약속한 끝에 겨우 시청사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체조경기장 청주 건립 결정으로 김 지사의 약속은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음이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