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실패와 잠재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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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실패와 잠재성장률
  • 우석훈 경제학자
  • 승인 2023.09.2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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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느덧 환갑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처음 학위를 받았을 때 김영삼 시절이었고, 정부에서 만든 비전 21’의 내용을 분석하는 게 처음 월급 받고 했던 일 중의 하나였다.

첫 보고서는 OECD 가입에 따른 환경적 효과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보고서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공무원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석사 학위가 국제경제학 쪽이라서, 에이펙과 WTO에 대한 정부 입장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다.

김대중 시절에는 기후변화협약 정부 협상가로 총리실에서 일했었다. 김영삼은 IMF 경제위기와 함께 경제적 성과를 잘 평가하지 않는 정부지만, 진취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탄핵으로 완전히 망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공약만큼은 박근혜가 최고였던 것 같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 못할 것 같지만, ‘474 공약은 꽤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국민소득 4만 달러 같은 거야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 고용률 70%, 잠재성장률 4%는 꽤 근본적인 공약이었다.

사람들은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다가 김종인을 내치면서 결국 경제민주화를 폐기한 사실만 기억한다. 그렇지만 보육을 국가 의무로 전환한 것은 박근혜가 한 일이다. 정치적으로는 망했더라도 경제적으로도 망했다고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말고는 잠재성장률이라는 매우 이론적이고 어려운 개념을 현실에서 강조한 대통령은 없었다.

잠재성장률은 다른 경제지표와는 달리 직접 관찰되는 숫자는 아니다. 그 나라의 기술적인 상황에서 100% 모든 요소를 다 사용했을 때 실현되는 성장률이다. 보육 비용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박근혜의 정책은 잠재성장률이라는 관점에서는 일관된 정책이다.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는 기술 수준과 인구 변수들이다.

제도가 효율적으로 변화하면 이것도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든 물질적 변수가 같더라도 시스템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역시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론적으로는 도서관도 잠재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식이 갖는 외부 효과, 소위 말하는 스필오버때문이다. 21세기에 지식경제라는 단어가 유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권의 정치적인 평가와는 별도로 경제적으로만 보면, 한국의 대통령은 생각보다는 유능했다고 생각한다. 방법과 방향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과학과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름 장기적 관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는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망했지만, 경제적으로도 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김영삼은 IMF 경제위기로 망한 정치인 평가를 받지만,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선진국 경제로 가기 위한 질적 토대를 만들기도 하였다. 금융실명제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본에 비해서 한국은 훨씬 투명한 경제다. 이런 여러 요소로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를 추월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윤석열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줄인 최초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연구의 효율성을 따지자면, 예산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그래도 총액은 동결 내지는 증가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그냥 일괄 깎았고, 우주항공은 물론이고 코로나 예산도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크게 보면, 부동산에서 덜 들어온 돈을 과학에서 뺀 거라고 할 수 있다. 출생아 감소도 계속 진행되는데, 과학기술 발전 속도도 떨어지면, 잠재성장률은 더 빠르게 떨어지게 된다. 단기 성장률만이 아니라 장기 성장률도 이 상태로는 일본 보다 뒤처지게 된다.

내가 더 나이를 먹어서 한국경제사를 쓰게 될 일이 생긴다면, 박근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겠다고 약속했고, 윤석열은 잠재성장률을 적극적으로 깎아먹었다고 쓸 것 같다. 최악의 정권이다. 대통령은 실패해도 되고, 정권도 실패해도 된다. 정치 영역이다. 예산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정권은 실패해도, 국가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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