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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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추석
  • 김진석 전문기자
  • 승인 2023.09.29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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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유성철 씨의 가족사진
2019년 9월 13일 추석.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어느 집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 2세 유성철(당시 64세) 씨의 가족사진.
2019년 9월 13일 추석.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의 어느 집에서 만난 사할린 한인 2세 유성철(당시 64세) 씨의 가족사진.

러시아 사할린섬에는 크라스키노라는 작은 항구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45816일에 시작됩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수천 명은 조국의 광복을 전해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구 언덕에 모였습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탄광에서 강제노동하던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는 기쁜 마음에 들떠 먼바다를 비라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태우고 갈 배를 기다리는 거였죠. 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되었을 때까지 배는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쳤던 일부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사할린섬의 다른 도시로 떠나게 됩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조국에 의해 버림받은사람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렇게 80여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현재 사할린에는 사할린 한인들 26000여 명(2019년 취재 당시)이 살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1세대 대부분은 돌아가시거나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들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가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고, 사할린섬에 살고있는 이들은 사할린 한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향을 향한 사무침과 조국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던 1세대 대부분은 소련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살다가 차디찬 사할린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부모들과 달리 먹고살기 위해 소련의 국적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고 점차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일부 사할린 한인들은 명절에 모여 제사를 지냅니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조상들의 사진 앞에 절을 올립니다. 그나마 이런 시간이 고향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연결해 주는 끈입니다.


사할린은…

일본 열도 위에 있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섬(빨간색 표시). 남북의 길이 950km, 최대 폭 160km, 면적 약 72492. 세계에서 23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쿠릴 열도와 함께 러시아의 사할린주를 이룬다. 사할린주의 주도는 유즈노사할린스크다.

●김진석

길 위의 사진가다. 월간 말 객원 사진기자, 여의도통신 편집장을 지냈다. 10여 년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제주올레, 히말라야, 산티아고 등 전 세계를 걸어 다니며 사람들의 표정을 취재했다. 2018년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현재는 고려인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를 돌아다니고 있다. 저서로는 <걷다 보면>,<고려인, 카레예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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