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견국 위기와 자폐 극우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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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중견국 위기와 자폐 극우주의자들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10.1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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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주가 8% 하락한 동아시아 유일한 나라
건전재정 외치고도 올해 재정적자 ‘역대 최고 68조’
촛불항쟁의 역동성, 특정 정파 권력장악 수단 남용
외국언론들 ‘韓민주주의 퇴행’ 일제히 비판과 조롱

중견 국가 대한민국이 위기다. 지난 3년의 펜데믹이 종식된 이후 세계는 회복이 시기에 접어들었으나 유독 한국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대부분 상승세인데 한국은 마치 다른 시대를 사는 것 같다.

한국은 최근 2년간 주가가 8% 하락한 동아시아의 유일한 나라다. 성장률은 일본에도 추월당했고 전쟁 중인 러시아에도 밀리는 1%대 초반에 머무를 전망이다. 건전 재정을 외친 정부는 올해 98조 원이라는 역대 최고급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성장률이 내년에도 이어지면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걷게 된다.

작년에 서방의 경제 제재로 민간 경제의 30%가 붕괴해 실패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던 러시아에 대해 IMF는 내년에 1.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러시아 자체적으로는 2.8% 성장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사진: 건전 재정을 외친 정부는 올해 98조 원이라는 역대 최고급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성장률이 내년에도 이어지면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걷게 된다. 사진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뉴시스
건전 재정을 외친 정부는 올해 98조 원이라는 역대 최고급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성장률이 내년에도 이어지면 우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걷게 된다. 사진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사진=뉴시스

세계 10위의 굳건한 지위를 지키던 한국 경제는 러시아와 이탈리아에도 밀려 13위로 하락하였다. GDP100%를 넘긴 가계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미국의 국채 금리와 격차가 2%에 달하는 한국의 금리로는 자본 유출을 막을 길이 없고, 이 때문에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한계에 달한 가계 부채 때문에 이마저도 어렵다.

출산율은 또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여 이제 인구 재앙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지방은 소멸의 비상사태에서 교육과 취업에서 극심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거대한 녹색 전환을 서둘러야 할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 산업과 정책은 이에 대비할 생각조차 없다. 수출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미 침체해 있었던 작년 이맘때 수준을 겨우 회복하는 중이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 정부가 탈중국을 향해 정책을 펼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상 대륙 경제권을 대체할 만한 시장은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역대 사상 최대의 무역과 대규모 초과 세입으로 동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위용을 자랑하던 한국이 이제는 동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정점을 지나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늪으로 가라앉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가 현실화되는 것 아닌지,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대외 여건이 불리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무언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2016년에 촛불 시민 항쟁이 주권자의 높은 시민성을 회복하도록 했다. 시민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이자 주권자로 각성하고 높은 자존의식을 갖게 되니까 공동체에는 활력이 넘치고, 국제적으로 매력적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촛불로 만들어진 높은 시민성이 바로 이후 닥친 코로나19 펜데믹을 극복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디지털과 참여민주주의 방식에 기초한 방역, 자영업을 비롯한 풀뿌리 경제주체들의 자발적 고통 분담은 뛰어난 공동체 회복의 능력을 발휘했다. 펜데믹 막바지인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에는 대한민국의 경성권력(하드파워)과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개혁의 기회를 놓친 업보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의 활력과 높은 시민성을 새로운 공화국을 만드는 정치-사회 개혁의 자산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압도적 시민의 지지와 성원을 협치로 연결하지 않고 특정 정파의 권력 독점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남용해 버렸다. 대한민국의 번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정치가 문제였다.

1인 장기집권을 막자는 1987년 헌법을 이제는 다양성이 넘치고 혁신을 지향하는 현대식 민주공화국의 원리로 전환되어야 했으나 개혁을 망설이면서 그 시기를 놓쳐버렸다. 선거법 개정에도 진정성 없는 태도만 고수하다가 결국 위성정당이라는 시대의 퇴행으로 나아갔다. 대통령과 국회, 지방 권력까지 한 손에 장악하면서 오만해진 국정 운영은 시민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냉소로 바꾸어버렸다.

결국 부동산 정책과 검찰 개혁에 실패하자 정권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가장 좋았던 시절에 시간을 낭비한 이전 집권 세력에게도 성찰이 요구된다. 문제는 정권만 무너진 게 아니라 대한민국 자체도 무너질 판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국제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냉소적 시선에 노출되는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언론 보도가 하나 있다. 뉴욕타임즈의 주간지인 <더 뉴요커>930, ‘한국에서 민주주의 부식에 대한 우려라는 칼럼에서 윤석열 정부의 언론과 야당 수사, 노동과 시민사회에 대한 수사를 소개했다.

칼럼은 인도와 베트남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 후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을 조망하며, 독재로 회귀하는 한국을 그냥 놔둘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작년 대선 전후부터 시작되어 외신에 의한 한국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몇 번째인지 지금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사회적 분열을 정치의 무기로 활용하면서 통합보다 분열을 촉진하는 세력은 민주주의를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이에 대한 경고가 작년부터 외신으로 쏟아져 나왔음에도 무감해진 우리 정치는 적대와 증오의 판이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한국에 대한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104일에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발표한 미군 참전에 대한 미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50%에 불과했다.

10월 4일에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발표한 미군 참전에 대한 미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50%에 불과했다.
10월 4일에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발표한 미군 참전에 대한 미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응답이 50%에 불과했다.

이는 2021년 조사에서 63%가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던 비율과 비교하면 현격한 추락이다. 또한 유럽 나토가 공격을 받을 경우 64%, 발트 삼국이 러시아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면 57%가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한 점과 비교해보아도 한국은 미국 국민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회의적인 미국 여론도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63%가 찬성했다.

주한미군 주둔 찬성률도 64%에 머물렀는데, 이는 201670%를 기록한 다음으로 낮은 수치다. 주한미군은 북한으로부터 한반도 방위라는 목적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주둔에 지지가 그나마 유지되는 편이다.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고 내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기라도 한다면 한미동맹은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혼란에 직면할 불안도 고조될 것이다.

우리가 주변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인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모든 걸 자기 정당화로 연결하는 권력의 오만함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상황은 심각해질 수 있다. 집권 세력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정에서 안보 지상주의와 극우 통치라는 양대 축을 강화하고 있다.

안보 국가 대한민국은 안보를 최고의 가치로 정하고 경제와 사회적 이익을 이에 종속시킨다. 이제는 경제도 안보라며 사실상 탈중국을 감수하면서 재앙적인 공급망 재편의 시나리오에 몰입한다. 이는 마치 심장과 간의 위치를 바꾸는 무모한 수술과 같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정학


미국과 일본이 보호무역과 중상주의 정책으로 후퇴하는 동안 마치 한미일 삼국이 안보와 경제의 호혜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이데올로기 정책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북한의 핵을 억지하고 단념하게 만드는 데 그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만, 북한은 윤석열 정부 때에 역대 최상급으로 핵 무장을 고도화하면서 다종화된 핵무기 발사대의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특히 북한이 8월에 발사한 화성18형 미사일은 추력편향 엔진, 탄소복합소재, 고체연료와 모터가 장착된 현대식 미사일이다. 이런 미사일은 강대국이 10년 이상 개발해도 성공이 불확실한 최첨단 무기인데 북한이 어떻게 개발했는지 미스터리다. 게다가 10월로 예정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러시아가 개입한다면 우리 안보 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만일 러시아가 미사일 탄두의 지상 풍동시험이나 챔버 시뮬레이션 시설을 제공하기라도 하면 북한은 일순간에 핵 강국으로 도약하게 돌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이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굉장히 중요한 합의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지난 9월의 북-러 정상회담은 한반도에 미증유의 지정학적 변동을 예고하는 불길한 신호다.


신중세주의 시대가 온다


억지하지도 단념시키지도 못하는 북한 핵에다 북한-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새로운 대륙의 장벽을 목전에 둔 지금은 지정학의 위기다.

불안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스스로 주변 정세를 주도하면서 평화의 비전을 제시하는 중견국의 품격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적 이념에 따라 중세의 기사단처럼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 중세풍의 성곽 국가를 지향하는 자폐 국가다. 이는 외교·안보에서 신중세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국가 생존의 위기를 반국가세력과의 투쟁이라는 극우적 프레임을 통해 조망하면서 대한민국은 시민의 자유가 제한되고 국민의 사상과 행동이 통제되는 감시국가 출현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소위 가짜뉴스 척결이라며 언론의 보도에 감독기관이 직접 나서서 통제하는 행태는 그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감시의 부활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교육 정책이 흔들리고 과학기술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국정의 난맥, 고속도로 종점이 바뀌고 주가가 조작되며 강남의 똘똘한 한 채로 불과 몇 년 만에 재산을 수십억 불리는 재테크의 귀재들이 공직에 무더기로 진출하는 뻔뻔함은 이념 전쟁으로 은폐되어 있다. 이들은 돈과 명예를 동시에 추종하면서 반공과 친일의 냉전형 자유주의이자 공포 자유주의, 즉 가짜 자유 이념으로 집단화되는 신보수주의 운동을 꿈꾸고 있다고 보여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고립의 길을 자초하는 자폐적 우익 근본주의자들이 만들어나가는 안보 국가 대한민국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산적인 투자와 도전적 혁신을 침체시킨다. 과학기술과 교육은 정권의 카르텔 척결이라는 공격에 노출되어 자율성과 창의성을 상실하고 있다. 걸핏하면 수사권을 앞세우는 현 정부는 권력은 검찰로부터 나온다는 망상과 특권 의식으로 군림하려 한다.

상상력과 철학이 빈곤한 정부와 여당은 가치와 규범이 다른 국가에 대해 개방적이고 유연한 외교를 구사하지 못한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은 단절되었던 한중 관계를 회복하는 공공외교의 기회였으나 정부와 여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시안 게임 동안 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뒤이어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이념 편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장관 임명 강행은 이 나라의 대의 정치의 완전한 실종을 보여준다.


광장의 순수함이 절박한 시대


우리는 어떻게 민주적 공동체를 회복하고 공화국을 현대적으로 재건할 것인가. 적대와 혐오의 정치가 주류가 되면서 대한민국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공동체의 분열과 불평등의 심화는 대한민국 존립의 기반이 침식되어 실패하는 나라를 자초하게 된다. 이에 무력해진 대의 정치를 보면서 7년 전 광장의 그 순수성과 높은 시민성이 이제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다시 진입해야 할 절박함을 체감하게 된다. 한동안 활력이 넘치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은 코로나 펜데믹을 통해 더욱 강해졌고 세계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저변에 흐르는 강인한 통합의 의지와 높은 시민성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나라, 파괴와 적대가 아니라 회복하는 힘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우리는 스스로 강한 존재임을 재발견해야 한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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