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녀산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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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녀산성에서
  • 이방주 수필가
  • 승인 2023.10.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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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랑은 끝났다. 높고 가파른 산을 몸이 허락하지 않는다. 인제는 몸이 산성과 겨루기를 할 이유도 없다. 마지막으로 나지막한 구라산성을 갔다. 구녀산성이라고도 하는 구라산성은 초정에서 미원으로 넘어가는 이티재에서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상당산성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좌구산 쪽으로 등마루를 밟으면 구라산성과 만나기도 한다.

구녀산성에는 아홉 누이와 막내아우의 성 쌓기 내기 전설이 있다. ‘오누이 성 쌓기 내기유형의 전설은 예산의 임존성에도 묘순이 바위전설이 전해지고, 세종시 애기바위성에도 유사한 전설이 전해진다. 함께 쌓으면 될 것을 혈육이 다투다 함께 파멸을 맞는 이야기이다, 구녀산성 전설은 구라산성이 구녀산성으로 이름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고구려 산성이라는 의미에서 구려산성이다가 고구려와 신라 산성이라는 뜻으로 구라산성이 되고, ‘구녀(九女)란 말을 따라 구녀산성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지금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구녀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구녀산성에 아홉 여자를 만날 생각을 하니 더 스산하다. 한남금북정맥 이티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참혹하게 망가졌다. 전에는 주막처럼 작은 휴게소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음식점, 펜션 같은 건물이 소나무 숲을 헤치고 경쟁적으로 들어섰다. ‘이티성이란 간판도 보인다. ‘영토라는 이름도 있어 무섭다. 솔가리가 포근한 한남금북정맥 오솔길을 걷는 호젓한 꿈도 성에 부닥쳐 좌절한다. 사람들의 겨루기에 산이 죽었다.

오늘은 산성이 무섭다. 헤어진 옛 여인처럼 우뚝 막아서는 검은 성벽이 서먹하고 무섭다. 성벽을 바라볼 때는 늘 신비감에 젖는다. 천오백 년 역사를 한눈에 보는 기분일 때도 있고, 전라(全裸)의 아름다운 여인을 마주 대하는 기분일 때도 있다. 내 키보다 더 높은 성벽의 검은 석성을 바라본다. 성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자연석이지만 천오백 년을 버틴 성벽이다. 성벽을 올라가야 한다. 돌 하나를 밟을 때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아니나 다를까 내려올 때 보지 못했는데 터주를 만났다. 돌 틈에서 똬리를 틀고 열을 식히고 있던 검은 살모사가 머리를 불쑥 내민다. 갑자기 누구지?’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산성 안에는 온갖 원혼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녔다. 전의면 운주산성에서부터 부안 우금산성까지 백제부흥군의 발자취를 따라 160여 개의 산성을 답사하며 1400km를 걸었다. 그동안 제일 소름 끼치는 기억은 뱀을 만난 것이다. 그때마다 누구지?’하는 궁금증이 인다. 겨룸과 싸움의 장인 성에는 비명에 죽은 원혼들이 얼마나 많이 살고 있겠는가?

구녀산성 내부는 평평한 풀밭이다. 패랭이꽃이 예쁘다. 낮은 무덤 11기가 조용히 누워 있다. 누이 아홉과 아우 그리고 홀어머니 무덤이라고 한다. 누군가 풀을 베어 깔끔하다. 작은 상돌에 술잔을 놓은 흔적도 있다. 구녀산성은 전쟁으로 죽은 군사들의 설움보다 오누이의 겨루기가 파멸의 회한으로 남아 있다.

산성은 겨루기로 파멸을 맞은 부끄러운 인간사의 흔적이다. 겨루기로 죽는 것은 권력자가 아니라 아랫것들이다. 큰놈들은 뒤에 숨고 작은놈이 나와 싸우다 죽는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작은 것들이 큰놈을 위해 겨루기를 하느라 맑은 날이 없다. 학교도 겨루기로 줄을 세운다. 심지어 문단도 겨루기로 줄을 세우려 한다. 학교에서 겨루기로 성공한 정치인은 정책도 베틀(battle)로 결정하려 한다.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는 다 형제이고 남매인데 겨루기하다가 파멸한 오누이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다. 돈을 겨루고, 사랑을 겨루고, 먹기도 겨룬다. 겨루다가 구녀성 무덤에 묻힌 오누이처럼 다 죽는다. 겨루고자 하는 맘이 있으면 겨루지 않아도 죽는다. 살아도 죽은 것이다.

싸움에 자신이 없는 나는 구녀산성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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