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만 원혼들을 위한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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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만 원혼들을 위한 진혼곡”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10.19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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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다룬 '제주도우다' 발간한 현기영 소설가
지난 10일 꿈꾸는책방에서 책담회 열고 독자 만나

제주4.3은 하나의 사건이 아닙니다. 최소 3만명이 희생되었고, 3만 개 이상의 사건이자 슬픔이자 원한이 살아있습니다.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일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심방(제주도에서 무당을 가르치는 무속용어)’입니다. 4.3의 원혼을 달래는 무당이 돼 이승과 저승을 사건을 겪은 자와 모르는 자를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문학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진실을 알리는 것이 제가 문학을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문학 거장으로 평가받는 현기영 작가가 제주와 한반도 현대사의 뿌리가 담긴 필생의 역작 <제주도우다/창비출판사>를 최근 펴냈다. 지난 1010일 청주 꿈꾸는책방에선 현기영 작가의 책담회행사가 김은숙 시인의 사회로 오후 7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지난 10월 10일 청주 꿈꾸는책방에선 현기영 작가의 ‘책담회’행사가 김은숙 시인의 사회로 오후 7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사진=박소영 기자 

 

김은숙 시인은 “<제주도우다>를 통해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품었던 공동체 정신에 대해 잘 알게 됐습니다. 양극단의 사람들과 무지비한 폭력의 세계가 사실적으로 묘사돼 때로는 책을 덮고 싶을 때도 있었죠. 우리는 여전히 4.3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며 작가를 소개했다.

 

나는 기꺼이 심방되고파

 

현기영 작가는 ‘4.3’의 작가로 불린다. 9살 무렵 그가 겪은 4.3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일생을 메운 슬픔이었다. 그 무게가 너무 커서 때로는 도망가고 싶어도 그는 줄곧 붙잡혔다.

그는 제가 멀리서 걸어오는 걸 보고 동료 문인들이 장난처럼 저기 4.3’이 온다고 말해요. 처음엔 짖꿎게 들렸지만 살아보니 인생이 길지 않더라고요. 적어도 태어나서 하나의 기록에 천착해 결과물을 내놓은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라며 애써 웃었다.

4·3이 금기어였던 군부독재 시절 그는 1978년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4·3의 진실을 담은 <순이 삼촌/창비출판사>을 내놓았다. 제주 4·3의 비극을 알린 첫 기록물이었다. 현기영 작가는 이듬해 보안사에 끌려가 3일 고문을 당하고 한 달이 지나야 풀려날 수 있었다. <순이삼촌>14년간 판매금지도서가 됐다.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사회 갈등 지형의 연원을 들여다보는 대하소설이다. 제주의 근현대사를 일제강점기이던 1943년부터 제주4·3 발생 이후 계엄령과 초토화 작전이 이어졌던 1948년 겨울까지를 다룬다. 소설은 4·3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자 안창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든을 넘긴 작가가 미래세대 주는 유언이자 선물과도 같다.

 

다양한 인물 입체적으로 그려

 

현기영 작가는 소설 속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되묻는다. 또한 한 공간에 살았던 이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폭력의 잔인함과 더불어 아름다웠던 제주바다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소설은 한편의 긴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제주 사람들이 해방공간 새나라 건설로 날마다 꿈에 벅찼던 시절 당시 이승만 정부는 이들의 꿈과 희망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과연 그 폭력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수만의 생명이 죽어갔는지 등등 작가는 묻고 되묻는다. 시간이 되돌려도 답을 찾을 수 없어 더욱 허망하다.

 

현기영 작가는 책담회에 온 이들과 책에 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박소영 기자 

 

4년여 동안 집필한 책

 

<제주도우다>4년여에 걸쳐 완성됐다. 이에 대해 작가는 “4·3 영령들이 내게 명령해 쓴 책으로 이건 내가 그들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는 <순이삼촌>외에도 꾸준히 4.3에 관해 글을 썼다. <도령마루의 까마귀><해룡이야기><변방에 우짖는 새><바람타는 섬>등등. 그런 그가 이번 책은 마지막 4·3 작품이라고 밝힌다.

현기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너무도 참혹한 유혈에서 핏빛의 생생한 묘사를 될 수 있으면 자제하려고 했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마음이 슬픈 작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대가 이 소설을 읽기로 작심하였다면 그 길은 작가와 동행해 너무도 낯선 삶과 죽음의 비경을 찾아가는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그 먼 길을 느리게 걸어갈 텐데, 독자도 그 느린 행보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작가는 이날 책담회에 온 사람들에게 아마 제 기준으로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면 책을 읽는 자와 안 읽는자 일지 모릅니다. 책을 읽고 이렇게 대화하는 자리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제주4.3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연민을 가진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작가 현기영은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제주43연구소 초대 소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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