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거사의 현장 하얼빈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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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거사의 현장 하얼빈에 가다
  • 박미라 전문기자
  • 승인 2023.10.2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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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 딸의 생필품을 부치려다가 떠난 여행
안 의사 기념관, 한글과 한자 병기 관람에 편리
인간 마루타 ‘생체실험 731부대’ 치떨리는 현장

코로나로 중단된 학업을 시작하기 위해 724일 여름에 하얼빈으로 날아간 딸이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이제 슬슬 겨울옷과 김치, 기타 생필품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온 건 8월 말경. 바쁜 일정에 차일피일 미루다 요구한 물품을 택배로 부치기 위해 우체국으로 향했다. 크고 무거운 박스를 본 우체국 직원이 크기에 놀란다.

몇 년 만에 부치는 거라 다소 걱정이 됐지만 이렇게 규정이 강화될 줄은 몰랐다. “일단 무게에 문제가 있을 것 같고 감기약은 무조건 안 돼요. 의류는 가짓수대로 가격을 적고 통과가 되지 않은 것은 벌금 물고 다시 가져와야 해요. 중국에서 통관 안 되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머리가 하얘진다. 무겁게 가져간 짐들을 싣고 나오며 새벽까지 바리바리 포장하고 압축하던 일이 눈앞을 스친다. 며칠을 고민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중국까지 직접 배달하기로 했다. 몇 년 동안 묵혀 두었던 여권을 찾아 기한을 확인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부웅 날아갔다.


두 번째 방문, 같은 장소


하얼빈은 두 번째 방문이다. 20193·1 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마을공동체에서 동북역사생태문화탐방으로 하얼빈과 옌볜, 백두산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하얼빈에 있는 딸과 반나절 함께 다녔다. 그때는 인솔자가 있는 단체 관광이라 따라가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무거운 짐을 들고 혼자 가야 했다. 약간의 긴장과 일상을 탈출한 또 다른 설렘. 구글 번역 앱도 설치해 왔는데 설마 어떻게 되겠지.

안중근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단지동맹을 맺는 장면.
안중근의 생애를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에서 단지동맹을 맺는 장면.

망망한 바다와 간간이 배가 보이더니 이내 바둑판 같은 농경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조금 있으면 하얼빈 타이핑 국제공항에 내린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비행시간만으로 보면 서울에서 일산보다 가깝다. 지상과의 격렬한 마찰음이 들리고 드디어 착륙. 딸을 만나 택배를 무사히 전달하니 임무 완수. 이제 안심이다.

이번 일정은 중국 국경절과 겹쳐서 하얼빈 인근을 주로 다니기로 했다. 그래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731부대는 꼭 다시 가기로 했다.

하얼빈(哈尔滨)은 중국 최북단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龙江)의 성도로 중국에서 열 번째로 큰 도시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헤이룽장성(黑龙江)4500Km에 이르는 흑룡강(黑龙江)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러시아어로 아무르강이라 불린다. 2020111일 기준 인구는 1000만 명, 면적은 53796km²2022년 서울시 인구 950만 명보다 많다.

하얼빈 대학 입구
하얼빈 대학 입구

짐을 풀고 첫 번째로 간 곳은 하얼빈공업대학(哈尔滨工业大学)이다. 하얼빈 공업대학은 중화인민공화국의 4년제 공립 단과대학으로 19201017일에 개교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과 특색이 뚜렷한 연구중심종합대학으로서 중국에서 공과 분야는 3위권 내이며 톱나인(C9)에 소속되어 있는 중점대학이다.

거리의 오성기가 낯설면서도 신기했고 정문의 하얼빈 전철역 입구가 묵직한 웅장함으로 다가왔다.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어서 재학생은 얼굴 인식, 외부인은 신분증명서, 외국인은 여권을 보여줘야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 초··고에서도 입구에서 검문하는 것과 같은데 조금 더 삼엄하다.

하얼빈공대 교정과 100주년 기념물
하얼빈공대 교정과 100주년 기념물

도서관을 보고 싶었으나 공부에 방해되어 외부인은 입장이 불가하다고 했다. 식당을 지나 오른편으로 돌아가니 은행과 약국, 빵집, 과일 가게, 다양한 음식점과 커다란 마트가 대학교 건물 내에 있다. 기숙사 학생들은 물론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지키지 못한 안 의사의 유언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걸려 있는 기념관.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걸려 있는 기념관.

하얼빈 광장을 가로질러 4년 만에 다시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义土纪念馆)에 들어서니 감회가 새롭다. 이곳은 중국어와 한글 설명을 같이 표기해 놓아 사진으로만 보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엄숙한 장소이니만큼 나라를 막론하고 관람하는 모든 사람이 조용하고 경건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190927, 안중근은 연주 하리에서 11명의 동지와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하였다. 회의에서 안중근은 의병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자신의 왼손 무명지 관절 한 마디를 자른 후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네 글자를 썼다.

안중군 의사 기념관은 중국어와 한글 설명을 같이 표기해 놓아 사진으로만 보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안중군 의사 기념관은 중국어와 한글 설명을 같이 표기해 놓아 사진으로만 보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전 9시경 이토가 탄 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먼저 코코프체프가 기차에 올라가 이토와 20여 분간 회담을 가진 후 두 사람은 함께 기차에서 내려 검열을 시작했다. 러시아군대의 대열 뒤에 숨어있던 안중근은 이토 일행이 다가오자 침착하게 앞으로 빠져나가 이토를 향해 세 발, 수행원을 향해 네 발을 발사했다.

시각은 약 930분 경이였다. 당시 하얼빈역은 러시아 관할구역이었다. 장거를 마친 안중근은 코레아우라!”를 세번 외치고 나서 러시아 병사에게 체포되었다. 이토는 치명상을 입고 20분 후 절명했다. 안중근은 만주 뤼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아 사형을 당했다.

거사 현장에는 바닥에 저격 장소와 숨진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거사 현장에는 바닥에 저격 장소와 숨진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거사 현장에는 바닥에 저격 장소와 숨진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뤼순 감옥 인팎 어딘가에 묻어버려 지금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임산부까지 실험대상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과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 731부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20대 때 마루타라는 소설을 읽고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었다. 좀처럼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이것도 은폐하려 했으나 내부 근무자들의 잇따른 양심 고백과 생생한 자료로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과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 731부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과 간간이 내리는 빗속에 731부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얼빈에 존재했던 일제 관동군 비밀 생물전 예하 기관으로 1936년에 설립된 세균전 부대다. 중일전쟁(1937~1945)을 거쳐 1945년까지 전쟁 포로 및 식민지 체제 저항자, 기타 수감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생물·화학 무기를 개발하며 생체를 실험했다.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인근 국가의 건강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특히 박테리아에 대한 다양한 인체 실험을 했는데 감염 경로와 세균 효능 실험이 주요 프로젝트였다.

생체 실험은 남녀노소는 물론 임산부에까지 행해졌고 실험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마취 없이 진행됐다. 731부대는 사계절 내내 동상과 해빙 실험을 할 수 있는 동상 실험실을 특별히 설치했고 일본 교토 제국대학 생리학 박사를 동상 실험실 소장으로 선임했다. 이들은 영하 30도 이하에서 사람들의 옷을 벗긴 채 맨손과 발로 팔다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야외로 데려간 뒤 뼈와 살이 분리될 때까지 온도를 달리하는 물로 해동시켰다.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얼빈에 존재했던 일제 관동군 비밀 생물전 예하 기관으로 1936년에 설립된 세균전 부대다.
731부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얼빈에 존재했던 일제 관동군 비밀 생물전 예하 기관으로 1936년에 설립된 세균전 부대다.

사람을 고속 회전기에 돌리고 독가스도 실험했다. 독가스실험실은 2층짜리 T자형 벽돌 콘크리트 구조로 실험자들은 마루타를 밀봉된 유리 캐비닛에 밀어 넣고 독살될 때까지 1, 2, 3급 독가스실험을 진행했다. 유독가스 인체 실험은 다양한 환경에서 실험되었으며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동안 일본군은 여러 차례 독가스 공격을 감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 세균전 정보 입수하고 용서


전시실 안에는 생체해부에 대한 여러 명의 내부 고백이 기록과 영상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생체해부에 대해 내부 근무자는 두개골은 잘려 있었고, 노출된 머리의 뇌는 몸의 오른쪽으로 옮겨져 있었다잘려진 손과 발은 방 오른쪽 구석에 던져져 있었고, 냄새가 났다고 증언했다. 해부된 시체를 난로에 넣어 태웠는데, 냄새를 피하려고 굴뚝을 아주 높게 만들었다해부실에서 일하는 군의관 중 일부가 정신적으로 불안해 했다고도 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박테리아 실험을 한 병사는 실험에 페스트균을 사용했으며 사용된 방법은 주사라고 보고했다관찰 이틀째에는 두 명이 사망하고, 오전에 한 명이 사망해서 시신은 부검실로 옮겨져 해부된 뒤 보일러에 넣어 태워졌다고 주장했다.

반인류 폭행, 비인도적 잔학행위.
반인류 폭행, 비인도적 잔학행위.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731부대로부터 각종 실험 데이터와 세균전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요원을 비밀리에 파견했고 책임자와 연구자들은 수사 요약보고서를 작성했다.

미국은 조사 결과 이시이 시로 등이 세균 실험, 인체 실험, 세균전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미국은 731부대 전원을 전범으로 기소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모든 연구정보를 확보했다. 19459월부터 194811월까지 도쿄재판을 전후해 일본과 미국은 731부대가 실시한 세균실험, 인체실험, 세균전 등의 자료와 자료를 확보하기로 비밀협정을 맺어 731부대 구성원을 면제했다.

일본과 관련된 전범 재판은 2년 반에 걸쳐 진행됐고, 수많은 전범이 중형을 받았다. 하지만 731부대의 총책임자 이시이 시로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힘과 이해관계의 논리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박미라

2009년, 청주시 산남동 ‘두꺼비마을신문’의 시민기자, 편집장으로서 공동체와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냈다. 현재는 교육문화국장을 맡아 어린이·청소년·시민기자교육과 다양한 인문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작은도서관 활동가 등 직접 해결사로도 나선다. 청주시, 교육청 등의 각종 기록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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