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보고 “바르게 살자”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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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굴 보고 “바르게 살자”고 하나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10.25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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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초입 4방향에 2000년대 중반 바르게 살자 새긴 대형 조형물 설치
도로점용 허가기간 끝나 불법···청주시, 바르게살기협 눈치 보느라 방치

 

 

누굴 보고 ‘바르게 살자’고 하나. 청주시 4방향 초입에는 바르게살기운동이라는 관변단체가 불법으로 설치한 대형 표지석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 시민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청원구 상리사거리 ‘바르게 살자’ 조형물.
누굴 보고 ‘바르게 살자’고 하나. 청주시 4방향 초입에는 바르게살기운동이라는 관변단체가 불법으로 설치한 대형 표지석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 시민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청원구 상리사거리 ‘바르게 살자’ 조형물.

 

바르게 살자는 데 뭐가 문제인가. 그렇다. 그 자체는 전혀 문제일 수 없다. 그런데 누가 바르게 살자고 하느냐에 따라 문제는 달라진다.

청주 시내로 들어오는 주요 관문 도로에는 큼지막한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를 크게 새긴 조형물이 그것이다.

이곳을 지나며 이 표지석을 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시민에겐 눈엣가시다.

이 표지석은 조치원 방향에서 들어오는 가경동 터미널 사거리, 진천 쪽에서 들어오는 율량사거리, 증평 쪽에서 들어오는 상리사거리, 보은 쪽에서 들어오는 지북사거리 등 4곳에서 버젓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그중 상리사거리에 있는 바르게 살자표지석은 유난히 눈에 거슬린다. 높이가 4~5m 될 정도로 큰 돌에 바르게 살자라는 글씨를 크게 새겨 놓아 주변을 압도한다. 주변은 나무 등이 많지 않은 휑한 공간이어서 우뚝 솟은 이 표지석은 주변 경관도 해치고 있다.

특히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누가 누구에게 바르게 살자고 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불쾌지수를 높여준다.

일각에서는 이 표지석을 설치한 바르게살기운동이라는 대표적 관변단체의 전신이 5공 시절 섬뜩했던 사회정화위원회라는 점에서 자신들부터 바르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누구를 훈계하려 드느냐고 꼬집는다.

앞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바르게 살자라니, 조직폭력배들이 자신의 몸에 착하게 살자라는 문신을 새긴 것과 뭐가 다를 게 있느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명박 정권 때 전국적 설치 붐

 

바르게 살자 표지석은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했다.

청주에는 남상우 청주시장 시절 집중 설치됐다. 지나치게 계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르게살기운동이라는 단체가 우리나라 3대 관변단체 중 하나이다 보니 해당 지자체에서도 눈치를 볼 정도로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주시 한 공무원은 바르게 살자 표지석이 공공성을 띤 것도 아니고 내용 자체가 계도적이어서 철거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민 여론과 내부에서도 의견이 있었지만 설치 주체가 관변단체이고 단체장이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선출직이다 보니 결단을 못 내리고 지금까지 오고 있다고 말했다.

눈살을 가장 찌푸리게 하는 상리사거리 바르게 살자 조형물은 2007년 청주 솔밭공원에 세워졌다. 그러나 2010년 한범덕 청주시장 시절 상리사거리로 이전을 추진했으나 청주시의 반대로 표류하다가 2014년 당선된 이승훈 시장 시절 지금의 상리사거리로 자리잡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르게 살자 조형물이 모두 다 불법 설치물이라는 사실이다.

 

청원구 주성사거리에 있는 서청주 JC 창립기념 표지석
청원구 주성사거리에 있는 서청주 JC 창립기념 표지석

 

청주시, 눈치 보느라 철거 못하나

 

바르게 살자 조형물은 설치 당시 도로점용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허가 기간이 끝난 뒤에는 재연장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가경터미널 사거리는 2011, 율량사거리와 지북사거리는 2012년 점용허가 기간이 끝났다. 상리사거리는 관련자료가 없다. 협의회 측은 허가 기간이 끝난 뒤 재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 청주시에 설치된 바르게 살자조형물이 모두 불법으로 도로를 점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바르게살기운동청주시협의회 이명숙 사무국장은 도로점용기간이 끝난 뒤 재연장 신청을 안 해 불법 설치물이라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조형물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 또한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자체 철거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바르게 살자 조형물이 엄연한 불법 시설물인데도 청주시는 이렇다 할 철거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언제까지 시민들이 계도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바르게 살자라는 문구도 60~70년대나 통할법한 독재의 유물이 아니냐. 즉각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청주시 3개 관변단체엔 48265만 원의 보조금이 지원됐다. 새마을 26815만 원, 바르게 살기 11329만 원, 자유총연맹 1120만 원이다.

바르게살기운동청주시협의회는 43개 읍면동에 회원 1300여 명이 있다.

바르게 살자 표지석 외에도 다른 봉사단체가 세운 표지석도 눈에 거슬린다. 지북사거리에는 청원JC2005년 세운 한국의 중심, 청원 JC가 뜬다라는 표지석이, 주성사거리에는 2009년 창립 21주년을 맞은 서청주JC열정과 화합으로 도약하는 서청주 JC’ 표지석이, 그 건너편에는 2011년 청주 무심로타리가 세운 녹색수도 청주를 사랑합니다표지석이 있다. 이들 표지석 밑에는 회원 명단이 함께 적혀 있다. 그들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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