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사는 우리 얘기 들어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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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사는 우리 얘기 들어볼래요?
  • 정순영 전문기자
  • 승인 2023.10.26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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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안남…살맛 나는 마을공동체 명성
2006년부터 지역의 모든 일 결정하는 ‘지역발전위‘ 가동
구석구석 다니는 마을버스‧목욕탕까지 주민들 자체운영

충북 옥천군 안남면은 옥천군 1개 읍, 8개면 중에서도 인구수나 면적 등이 가장 작은 면이지만 20년 넘게 이어온 주민들의 자치활동으로 꽤 유명해진 지역이다. 정작 안남 사람들은 우리 동네가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연중 안남을 찾는 소위 선진지 견학팀들은, 안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냐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옥천군 안남면 명소인 둔주봉에 오르면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볼수 있다.
옥천군 안남면 명소인 둔주봉에 오르면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볼수 있다.

사실 안남 사람들도 살맛나는 지역공동체’, ‘대한민국 주민자치 1번지같은, 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별로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무덤덤해 보이지만 뭐랄까, 이미 해본 자 혹은 해낸 자의 여유로움 같은 것이 안남 사람들에게서 묻어난다고나 할까?


안남의 국회 지역발전위원회


농촌의 면 지역에서 면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기구를 꼽으라면 보통 면민협의회나 이장협의회, 최근 들어 일부 지역에선 주민자치회와 같은 조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안남면은 지역발전위원회라는 대표 주민조직이 있다. 안남면 12개 마을 이장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며 이장과는 별개로 12개 마을에서 주민 1명씩을 추천해 지역발전위 위원이 된다.

여기에 노인회, 자율방범대, 안남초 학부모회 등 주요 사회단체, 주민조직에서 1명씩 추천을 받아 40명 내외의 위원들로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가 구성된다. 위원들의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안남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지역발전위원회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는 안남 주민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위상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는 200610월 설립되었다. 지역발전위 설립 배경에는 주민지원사업비라는 것이 반드시 따라오는데, 이 주민지원사업비를 설명하기 위해선 옥천이라는 지역이 품은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75년부터 충청권의 식수 공급을 위해 대청댐 건립이 시작되었고 댐이 완공된 1981년까지 옥천에서도 여러 마을이 수몰되었다.

또 댐 상류에 위치한 탓에 옥천군 전체 면적의 87%가 각종 환경 규제의 적용을 받게 되었으며 안남면 역시 면 전체가 상수원 보호를 위한 규제 지역으로 묶이게 되었다. 안남이 처한 환경 규제를 쉽게 설명하자면 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면소재지 마을 일부를 제외하곤 내 땅이라도 절대 내 마음대로 개발 행위 또는 경제적 행위를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식당이나 카페, 펜션, 공장 등은 안남에선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 회의 모습.
안남면 지역발전위원회 회의 모습.

안타까운 것은, 과거 군사독재 정부의 서슬이 얼마나 시퍼러면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물에 잠기고 세간만 근근이 챙겨 쫓기듯 떠나야 했던 주민이 한둘이 아니었음에도 나라가 하는 일이라 말 앞에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항변도 크게 못했다는 것이다.

금강 상류, 대청댐 상류 지역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2002년 금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금강수계법)이 제정됨으로써 비로소 제대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강수계법이 근거가 되어, 현재까지도 각종 환경 규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강 상류 지역 주민에 대한 피해보상 성격의 주민지원사업비2006년부터 배분되고 있다.


농업농촌발전계획직접 쓰다


안남면 주민 자치 활동이 지역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하는데 바로 이 주민지원사업비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옥천군 예산으로 들어오는 주민지원사업비 중 일부를 각 읍면으로도 배분하는데 이를 통칭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라 부른다.

안남면의 경우, 처음 배분될 때보다 현재는 금액이 많이 줄어 연간 13000만 원 내외의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가 해마다 배분된다. 이렇게 각 읍면으로 나누는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를 어떻게 쓸지에 대한 결정 권한은 주민에게 있으며 안남면에선 이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의 쓸 곳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기구가 지역발전위원회다.

안남면은 처음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를 쓸 때부터 다른 지역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어떤 면에선 이 돈을 마을별로 나눠 쓰기도 하고 농기계나 농자재를 사서 나누기도 했다는데 안남은 면의 중장기발전계획을 쓰는데 대단위 주민지원사업비를 투자한 것이다.

안남면 마을순환버스.
안남면 마을순환버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에 걸쳐 지역발전위원회가 직접 선택(!)한 두 개의 컨설팅업체와 함께 안남면 농업농촌발전계획을 수립했으며 2023년 현재까지 안남면의 자치활동과 굵직한 지역개발사업들은 모두 이 농업농촌발전계획이 토대가 되어 지역발전위원회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놀라운 것은 안남면의 이야기가 지역발전위원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지역발전위 외에도 아래 표에서 소개된 안남의 여러 주민 자치활동 사례들을 듣다 보면 안남면이란 지역을 한번 와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솟구친다고, 농촌과 마을, 자치와 공동체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야기하곤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마치 모든 농촌 지역과 농촌마을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지방 소멸이다, 인구 감소다걱정들을 늘어놓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것인가?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그것이 걱정이겠는가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줄어드는 인구를 무슨 소의 고삐 묶듯, 단단한 줄로 동여맬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안남면은 그저 지금 살아가는 주민들이 안남에서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외부의 지원과 힘에만 기대기보다는 주민들이 직접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노력과 시도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젊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안남을 만드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정순영

2007년 옥천신문을 찾아 옥천까지 왔다. 2015년 편집국장을 정점으로 퇴직한 뒤 안남면에 정착했다. 여러 마을공동체 조직에서 일하며 ‘동이면 좋은이장학교’, 공동체장터 ‘슬슬장’을 기획‧운영했다. 사회적경제 현장활동가라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며 옥천순환경제공동체가 수탁한 옥천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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