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청정함 품고 나그네를 기다리는 강릉역
상태바
동해의 청정함 품고 나그네를 기다리는 강릉역
  • 신용철 전문기자
  • 승인 2023.10.26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채 날로 발전해가는 사시사철 휴가지
열차로 6시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1시간대

지난 3년 동안 국내 여름휴가지 만족도로 강원도가 연속 상위 랭크되고 있다. 여행 조사 전문기관인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강원도는 2021년 제주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해에는 부산에 이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철도100주년 을 기념해 만든 전국 364개역 철도스탬프(2023년 1월 기준) 가운데 강릉역 철도스탬프를 찍는 필자.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준비 중인 부산이 736점을 얻은 데 이어 강원도는 735점으로 단 1점 차이로 바짝 쫓고 있다. 강원도는 여행자원 만족도는 높았으나 물가와 상도의에서 점수가 낮아 아쉽게도 부산에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강원도를 찾는 이유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시원한 동해의 전망과 아직 남아있는 청정지역이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인식에 가장 큰 몫을 한 도시로 강릉을 단연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조선의 선비들이 금강산 여행을 하기 전에 꼭 들렀던 강릉은 이제 현대인들에게 그 존재 자체로도 여행이나 휴가지 몫을 충분히 하고 있는 중이다.
 

kTX로 서울역서 1시간 52


강릉역은 지난 196211, 역사 신축 준공과 함께 영동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19793월 경포대역이 폐쇄되면서 영동선의 종착역이 되었다. 옛 강릉역사는 2006년 새마을호가 폐지된 후로는 무궁화호만 오가며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답지 않게 작고 낡은 모습이었다.

지난 2017년 12월 KTX 개통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강릉역은 해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지어졌다. 사진=신용철
지난 2017년 12월 KTX 개통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강릉역은 해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지어졌다. 사진=신용철

서울에서 영동과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자락을 따라 6시간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던 곳이었다. 그러던 중 강릉역은 2014년에 경강선 작업이 이뤄지며 201712KTX 개통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KTX로 서울역에서 1시간 52, 청량리역에서 1시간 24분대로 강릉역에 갈 수 있게 된 것. 빨리만 내달리는 고속열차가 우리네 여유로운 낭만까지도 빼앗는 것 같아 때론 야속스럽다가도 이런 면에서는 참 편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바라기는 고속열차와 더불어 산간벽지까지 철길이 닿은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구석구석 열차가 운행되면 참 좋으련만 경제성과 효율성에 밀려 무궁화 열차들이 조금씩 퇴출되고 있으니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비단 필자만의 마음일까 싶다.


허균의 '문파관작'을 생각하다


강릉역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강릉에 홀로 여행을 올 때면 늘 제일 먼저 들리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누가 나에게 조선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비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허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강릉에 오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강릉에 오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 부패상을 질타하고 정치와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다가 반대파 양반들의 정치적 음해로 탄핵받아 수 차례 유배 가고 결국 그의 나이 49세에 원치 않은 목숨까지 잃은 비운의 혁명가이자 개혁가 허균.

조선시대 뛰어난 정치사상가이자 국방이론가, 진보적 종교가이자 문학가 허균. 허균의 흔적이 남아있는 기념공원을 걷고 산책하며 예나 지금이나 헛똑똑이와 모지리 정치인들은 시기와 질투만 가득하고 수구적인 생각들로 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씁쓸했다.

유교가 어찌 나의 자유를 구속하랴(禮敎寧拘放) / 세상살이 다만 내 뜻에 따를 뿐(浮沈只任情) / 그대는 모름지기 그대의 법을 사용하라(君須用君法) / 나는 스스로 나의 삶을 살리라(吾自達吾生).” -유교 국가에서 불교 공부를 한다고 수구 정치인들에게 탄핵받은 뒤 지은 그의 시 문파관작 중에서.


볼거리 즐길거리 많은 경포대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근처에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호젓하게 산책할 수 있으며 인근에 경포대가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한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근처에는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호젓하게 산책할 수 있으며 인근에 경포대가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한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 인근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사시사철 아름답고, 사색하게 만들며 가족과 연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주는 경포호를 비롯해 어느 사이 전국적으로 미디어아트의 열풍을 일으킨 아르떼뮤지엄 강릉이 자리하고 있고, 국내 최초로 호수와 바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야외 체험시설까지 갖춘 체험형 아쿠아리움 경포 아쿠아리움도 들어섰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은 강릉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하늘·호수·바다·술잔·님의 눈동자에서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경포대와 4.3Km의 둘레로 새바위와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깃든 홍장암이 있는 경포호를 한 번쯤 둘러보기를 권유한다. 아울러 위에 언급한 곳들도 한 번쯤 둘러볼 수 있기를.


율곡 사당 문성사 기둥 반질반질


강릉 여행 두 번째 코스로 <tvN> 교양프로그램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지난달 말에 방송된 신사임당은 어떻게 현모양처의 아이콘이 됐나라는 주제로 그녀가 살다 간 삶에 관해 소개되어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그들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오죽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주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이름 지어진 오죽헌은 보물 1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사 오른쪽 기둥이 유독 반질거리고 있는데, 관광해설사가 말하길 관광객들이 그곳에 손을 문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사 오른쪽 기둥이 유독 반질거리고 있는데, 관광해설사가 말하길 관광객들이 그곳에 손을 문질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죽헌은 수령이 600년도 넘은 배롱나무를 비롯해 세종 22년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지는 천연기념물 제484호 강릉 오죽헌 율곡매 등 수 백년 된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오롯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율곡 이이를 모신 사당 문성사 오른쪽 기둥이 유독 반질반질했는데, 문화해설사 설명을 들으니 여기에 온 수많은 사람이 아홉 차례의 과거에 장원급제해 구도장원공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를 닮고 싶은 마음에 문질렀다는 후문.


폐철도를 따라 월화거리로


이튿날 오전 동해에서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감상한 뒤 강릉커피거리를 방문했다. 이곳은 해변을 따라 크고 작은 카페들이 있어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거리로 1990년부터 유명 바리스타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으며 이제는 명실상부 강릉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1990년부터 유명 바리스타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강릉카페거리.
1990년부터 유명 바리스타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강릉카페거리.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한 사람이지만 멀리 강릉까지 왔으니 한 번쯤은 와 보고 싶었다. 더욱이 커피 하나 주문(참고로 필자는 이곳의 한 유명 커피카페에 들어가 배스무디를 주문했다!)해 놓고 한참 동안 바다멍을 때려도 참 좋은 인목해변이지 않은가.

이어 철도인으로서 철도인답게 철도덕후가 되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 국내 철길의 모든 흔적을 따라가고 싶은 이가 빼놓을 수 없는 곳, 강릉역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폐철도가 된 곳을 따라 조성된 월화거리로 향했다. 월화거리 명칭은 강릉 고유 설화인 무월랑과 연화부인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듯 하다.

강릉역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폐철도길이 된 곳에는 월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강릉역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폐철도길이 된 곳에는 월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거리 곳곳마다 설치된 조형물들이 오래된 골목 풍경과 어울려 정취를 더했다. 인근에 중앙전통시장과 강릉대도호부관아가 있어 식사하고 군것질하고 산책하며 둘러볼 것이 참 많아 반나절은 족히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강릉하면 떠오르는 음식 감자옹심이를 비롯해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맛있는 각종 군것질거리가 시장에 너무도 많기에 이곳에 갈 때는 꼭 배를 단단히 비워두시길.


선교장, 이번 여행 가장 큰 수확


몇 년 만에 찾은 12일 강릉 여행이 어느덧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수확이었던 여행지가 있다면 단연코 선교장이었다. 이곳은 효령대군의 후손인 가선대부 이내번이 터를 닦았으며 집앞이 경포호수였기에 배로 다리를 만들어 호수를 건너다녔다고 해서 선교장으로 이름 짓게 됐다.

이번 강릉여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던 선교장 입구 풍경.
이번 강릉여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었던 선교장 입구 풍경.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저택으로 동별당·열화당·활래정·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당시에 사용하던 생활용구, 예술품, 의상 등 8000여 점의 유물이 잘 보관되어 있다. 이곳을 찾을 독자들이 있다면 꼭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시간을 맞춰서라도 이곳의 관광해설사 설명을 들으며 선교장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더욱더 깊이 이곳 선교장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개인적으로도 다음에 다시 강릉 여행 올 때는 꼭 이곳에서 한옥스테이하며 산책하고 식사하고 명상하고 독서하며 하루를 보낼 계획이다. 강릉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가고픈 곳 강릉. 강릉이란 지역은 우리네 마음속에 그런 존재로 남아있는 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