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에서 중동으로 번진 전쟁 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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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에서 중동으로 번진 전쟁 팬데믹
  • 김종대 전문기자
  • 승인 2023.11.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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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콥터‧백린탄 사용…전쟁은 서로 옮기는 전염병
尹 정부 안보관, 이스라엘의 ‘극우 시오니즘’과 유사
진짜 안보는 상대 심리 읽는 것…기계정보로는 한계
9‧19 군사합의로 정전협정위반 줄고 주민 삶도 향상
10월 27일(현지시각) 한 이스라엘 보안군이 가자지구발 로켓으로 파손된 건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0월 27일(현지시각) 한 이스라엘 보안군이 가자지구발 로켓으로 파손된 건물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작금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자세히 살펴보면 뜻밖의 교훈이 나타난다. 2023107일에 시작된 이 전쟁은 2022224일에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전쟁에 사용된 기술과 노하우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었으면 선보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107일에 무장단체 하마스가 어떻게 첨단 센서와 원격 조종 기관총이 설치된 이스라엘의 장벽을 그토록 쉽게 무너뜨렸는지, 그 와중에 이스라엘 군대의 통신과 감시기지를 한꺼번에 무력화했는지, 처음에는 수수께끼였다. 일개 무장단체가 세계 최고의 정보감시 능력을 보유한 이스라엘 방어망을 그토록 쉽게 무너뜨린 발상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다.

정답은 드론(UAV)이다. 이 중에서 날개가 4개 달린 상업용 드론, 쿼드콥터가 바로 비밀병기였다. 하마스의 드론은 위성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의해 유도되는 직접 공격 탄약과 비디오카메라와 무선 링크가 장착된 배회 탄약, 탄약을 투하할 수 있는 쿼드콥터로 이루어져 있다.

공개된 영상만 보아도 쿼드콥터가 투하한 탄약이 이스라엘 주력 전차인 메르카바 탱크를 파괴하고 가자 국경을 따라 있는 장벽의 보초 탑 꼭대기에 설치된 원격 조종 무기의 거치대를 파괴하고 통신 기지국을 타격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작년 2월에 키이우 북부로 침략한 러시아 군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우크라이나 민병대가 바로 이런 식으로 제압했다. 우크라이나 민병대의 독창적 발상을 하마스가 업그레이드하여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리라곤 세계 최고의 정보와 감시능력을 보유한 이스라엘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즉 하마스는 러시아의 정규군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민병대를 학습했다고 보아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정보감시 능력을 보유한 이스라엘 방어망을 그토록 쉽게 무너뜨린 비밀은 드론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세계 최고의 정보감시 능력을 보유한 이스라엘 방어망을 그토록 쉽게 무너뜨린 비밀은 드론이었다. 사진=픽사베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러시아 군대의 잔혹함을 학습하기로는 이스라엘 군을 비켜갈 수 없다. 작년 11월에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비인도적 무기의 대표 격인 백린탄을 사용했을 때 세계는 경악했다. 인을 주성분으로 한 백린탄은 폭발하면서 다량의 연기와 화재를 발생시키는데, 불이 붙은 인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다. 끈적거리는 성분의 백린탄은 인체에 붙으면 떨어지지도 않고 계속 타들어가 치명적 화상을 입히고 건물도 초토화한다.

전쟁 이틀 후인 109,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남부 스데로트시 근처에 M109 155mm 곡사포를 배치했다. 스데로트시는 이틀 전에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곳으로 이스라엘-가자 국경장벽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곡사포가 배치되는 사진에는 M825 M825A1 포탄이 보이는데, 이들 역시 미 국방부 탄약 식별기호(DODIC) 중 백린탄 기반의 무기를 가리키는 D528라는 표시가 적혀 있다.

이 사진을 근거로 국제 앰네스티는 전쟁 초기부터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규탄 성명을 냈다. 최근 가자 지구에서 폭음과 함께 대규모 화재로 인한 민간인 사망이 급증하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종류의 공격은 작년 11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도시, 병원, 발전소, 마켓 등 인구 밀집의 민간 인프라를 파괴하던 장면과 어찌 이리 닮았는가. 최강의 정규군을 상대로 한 무장단체의 비대칭 전투, 이에 정규군이 잔혹함으로 민간에게 보복하는 수순은 두 전쟁이 소름이 끼치도록 비슷하다.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학습했나?


전쟁 기술과 양상이 비슷해 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인간은 살인의 기술을 빨리 학습하고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으로 전파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인간 본성에 도사린 이 악성(惡性)은 너무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아마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없었거나 양상이 매우 달랐을 것이다.

사실 하마스도 이렇게 자신들의 초기 기습이 쉽게 성공할 줄은 몰랐다. 이스라엘 군이 너무 빨리 무너지니까 전과를 확대하고 싶은 욕망이 통제를 벗어나 너무 많이 죽이고, 너무 많이 잡아갔다. 자신들도 애초 기습 도발을 한 목적을 초월해버린 셈이다.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한국 합동참모본부의 김승겸 의장은 북한이 하마스 식으로 도발할 지도 모른다며 북한에 대한 감시와 정찰을 강화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12월에 드론을 5대나 우리 쪽으로 날려 보냈는데,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그중 한 대는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까지 침투했지만, 침투 당일에는 이 사실조차 모른 군 당국은 비상사태도 발령하지 않았고 추적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후 드론에 대응하는 합동사령부가 창설되기는 했지만, 감시와 정찰을 더 강화하겠다는 말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의 919 군사합의를 즉각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이 군사합의로 인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우리 군의 정찰 활동이 제한되기 때문이란다.

 

9‧19 군사합의로 긴장이 완화된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서는 어민 소득이 크게 증대됐다. 사진은 연평도 꽃게 경매. 사진=뉴시스
9‧19 군사합의로 긴장이 완화된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서는 어민 소득이 크게 증대됐다. 사진은 연평도 꽃게 경매. 사진=뉴시스

이런 설명에는 군사합의서로 인해 남북한 간에 정전협정 위반사례가 거의 사라졌고, 긴장이 완화된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북 도서에서 우리 어민의 소득이 크게 증대되었으며, 확성기와 대북 전단이 사라진 접경 지역 200만 주민들의 삶의 크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은 빠져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당시의 남북 합의가 가짜 평화라며 전면 백지화할 작정이다. 20189월의 평양 남북 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가 무력화되면 연쇄적으로 그해 4월의 판문점 남북 선언(4·27 선언)도 무력화될 수순이다. 이렇게 되면 최근 위헌판결을 받은 대북 전단 금지법도 무력화되어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회귀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무래도 중동의 사태에 대한 교훈이 잘못되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은 이스라엘이 무인정찰기나 인공위성 정찰이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05년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래 첨단 정찰기, 센서, 인공위성, 암호 해독, 감청 등 기계 정보에 의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데이터는 지금이 최고 전성기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알려진 모사드와 미국의 CIA는 왜 실패했을까?

기계 정보는 인간의 의지와 집단의 심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집단의 상실감과 굴욕감, 저항의 의지는 인문적으로 해석되는 영역이지 기계가 알아서 판단해 주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러한 능력은 현저하게 쇠퇴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차량에 위성항법에 따른 안내 장치를 장착하고 나서 정작 길을 찾고 지도를 보는 운전자의 능력은 현저하게 퇴화한 것과 같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도발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의미는 북한의 실제 구성원인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인문적 힘을 바탕으로 한다.

엄연히 폭 4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가 남북 간에 완충구역으로 자리 잡고 있고, 군사합의서로 그 완충구역을 더 넓혀 놓은 성공적 안보체제를 무너뜨리고, 드론을 더 투입하면 안전해진다는 근거는 뭔가?

정작 이스라엘은 이 전쟁 이후 새로운 안보 체제를 구상하면서 기존의 장벽 외에 추가 장벽과 지뢰지대를 설치하여 완충구역을 더 넓히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바로 한반도의 정전체제와 군사합의서 모델이 더 좋다고 인식한 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완충구역을 없애버리겠다는 거다. 전쟁을 잘못 학습해도 한참 잘못 학습했다.


안보는 상대 제대로 아는 것


정보는 판단하는 힘에 기초한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기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 시절, 서해에서 공무원이 피격된 사건을 두고 북한에 대한 정보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대거 조사하고 처벌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최근 군 정보 분석관들은 자신의 판단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기계 정보에 정보 판단을 아웃소싱 해버렸다.

요즘 군 정보기관의 베테랑 분석관들은 시키는 일만 한다. 권력자가 원하는 정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정보만 생산하려고 한다. 그 근거는 자신의 이성과 직관이 아니라 기계 정보다. 이게 바로 안보에 있어 치명적 결함이며 거대한 재앙의 전초라는 점을 윤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간신으로 알려진 신숙주는 일본을 시찰한 <해동제국기>를 저술한 당대의 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죽을 때가 되자 성종 임금이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이에 신숙주는 일본과 절대 화평을 잃지 마시라고 했다. 항해술이 무섭게 발전한 일본과 반드시 화친을 유지하여 수시로 그 의도를 파악하고 능력을 점검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성종은 주기적으로 사신을 일본에 보내다가 귀찮았는지 중단해 버렸다. 서해 류성룡이 <징비록> 첫머리에서 신숙주의 경고를 잊어버려 임진년의 왜란을 당했다고 탄식했다.

북한에 대해서라면 드론을 더 띄우는 것보다 북한을 알고 이해하는 노력이 진짜 안보다. 손자가 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라고 한 뜻도 여기에 있다. 멀쩡한 남북 군사합의를 깨면서까지 우리의 힘을 북한에 과시하려는 충동은 손자가 절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어쩌면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이 정부의 안보관(安保觀)은 극우 시오니즘에 기초한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매우 흡사하다. 그런 극단이 화를 불렀다는 점을 왜 학습하지 못하는가. 아무래도 이 정부는 이스라엘을 닮고 싶은가 보다.

●김종대

병장 출신 군사전문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계 입문 전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국방부 장관 보좌관을 거쳤다. 2007년 말 외교‧안보월간지 ‘디앤디포커스’(디펜스21+)를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기사를 썼다. 최근 유튜버로 맹활약 중이다. 저서로는 <서해전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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