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방향과 일치하는 고조섬의 거석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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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방향과 일치하는 고조섬의 거석 신전
  • 정연일 여행가
  • 승인 2023.11.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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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로 추정
간티자 유적 - 위키페디아
간티자 유적. 사진=위키피디아

지중해 몰타를 가다⑤

북아프리카의 아랍 이슬람 세력과 로도스 섬에서 쫓겨난 구호기사단이 몰타섬에 도착하기 이전에도 사람은 살고 있었다. 몰타에는 거석 신전 ‘Megalithic Temples’ 유적이 많다. 몰타 전역에 흩어져 있다. 대부분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5000년부터 청동기 시대인 700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용도는 신전(Temple)이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 남아 있는 모든 종교 건축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지금의 터키(튀르키예)에 남아 있다. 고조섬에는 간티자(Ġgantija) 유적이 남아 있다. 역시 거석 신전이다. 기원전 36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몰타의 거석신전 지도.
몰타의 거석신전 지도.

신전의 건립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던 것은 사원터에서 출토된 목탄 덕분이었다. 방사성 탄소테스트로 시기를 추정할 수 있었다. 간티자를 비롯한 몰타의 거석 사원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사원이나 신전이었다고 하지만, 기원전 3600년 전이면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같은 정교한 교리가 발달한 종교가 아니라 애니미즘, 토테미즘 같은 원시신앙에 가까웠을 것이다. 몰타의 거석 신전을 연구한 여러 학자에 의하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였을 것이라 한다.

간티자 유적 측면 - 위키피디아
간티자 유적 측면. 사진=위키피디아

몰타의 구전 설화에 의하면, 콩과 벌꿀만 먹고 살던 여자 거인이 한 인간 남자로부터 수태했다. 아이를 낳은 여성은 아이를 어깨에 매달고 혼자서 간티자 거석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몰타어로 간티자는 여자 거인(Giantess)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고대 건축물이 경이로운 것처럼, 고조섬의 간티자 거석 신전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놀랍다. 인류 문명에 아직 바퀴가 도입되기 전인데 어디서 어떻게 이 돌을 운반했을까?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신전은 서양 열쇠 구멍이나 거대한 이글루처럼 보인다. 좁은 신전 출입구가 넓은 실내공간으로 연결된다. 제대로 된 도구도 없이 어떻게 6m 높이의 신전을 쌓았을까?

1700년대 간티자 유적 수채화.
1700년대 간티자 유적 수채화.

신전은 남동쪽으로 지어졌는데, 춘분에 일출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을 학자들이 발견했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의 유적 치첸이사 피라미드와 흡사하다.

치첸이사 피라미드는 매년 춘분과 추분 때 태양의 각도가 피라미드에 비치면서 나타나는 그림자가 마치 뱀이 피라미드를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춘분과 추분에 치첸이사에서 태양과 마야 문명의 합작 그림자 쇼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고대인들의 천문에 대한 관찰과 지식이 대단했음을 느낄 수 있다.


고대유적지 사전 지식 필요

 

간티자 유적 평면도.
간티자 유적 평면도.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같은 원시 신앙은 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치며 인류의 생산력이 증가하고, 유목 수렵 채집 생활에서 정착 농경 생활로 바뀌며 도시가 탄생하고 잉여 농산물로 인해 노동에서 자유로운 지식 지배계급이 탄생하며, 그들에 의한 정교한 교리의 종교가 발달하며 밀려난다. 몰타의 거석 신전도 철기 이후엔 거의 버려져 있었다.

몰타의 원주민과 몰타를 찾는 상인 여행자들은 거석 신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설화 외에는 정확한 시기와 용도를 알지 못했다. 1800년대부터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고고학적 발굴 기술이 지금처럼 뛰어나거나 정교하지 못해, 발굴 당시에 원형 훼손이 심했다. 다행히도 발굴 이전 독일계 덴마크 화가 찰스 프레데릭(Charles Frederick de Brocktorff)’ 이 그린 그림이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멕시코 치첸이사 피라미드.
멕시코 치첸이사 피라미드.

지금은 폐허로 남은 고대 유적지를 방문할 때는 사전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전에 한 번이라도 어떤 곳인지 내용을 훑어보고 가는 것과 무턱대고 그냥 가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큰 감동이 올 수도 있고 흩어져 있는 돌무더기가 지겨울 수도 있다. 간티자 유적뿐만 아니라, 영국의 스톤헨지, 그리스의 델피, 크레타 섬의 미궁,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페루의 마추피추도 마찬가지다.

사전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폐허가 된 유적지를 거닐며 수백, 수천 년 전에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기억하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지를 상상해 보면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전 영국식민지 맥주 맛 좋아

 

고조섬 항구 사진=픽사베이
고조섬 항구 사진=픽사베이

빅토리아에서 간티자 유적은 택시로 이동하면 그리 멀지 않고, 고조섬 항구로 돌아가는 길 가운데 있지만, 일행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하다. 막상 가보면 페루의 마추피추는 썰렁하기 짝이 없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다들 환상을 품고 있고 가보고 싶어 한다.

몰타의 간티자 사원은 생소하다. 가면 뭐가 있는데요? 고대 신전의 폐허 유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 스마트폰으로 보여줘도 심드렁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처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기둥도 없어서 그런가 보다. 무엇보다 다들 수도인 발레타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일몰과 야경을 보고 싶은 생각이 크다.

고조섬 항구 선술집 내부. 사진=정연일
고조섬 항구 선술집 내부. 사진=정연일

아쉽지만 간티자 사원 답사는 포기하고 택시를 불러서 다시 고조섬 페리 터미널로 향한다. 페리 터미널로부터 빅토리아까지 타고 온 택시드라이버 안나에게 받은 명함으로 전화를 걸어 빅토리아의 광장으로 와달라고 한다. 역시 택시드라이버인 안나의 남편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안나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고조섬에서 나갈 때는 블루라군으로 가는 배를 탄 몰타 섬 서북쪽 페리 터미널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수도인 발레타로 가는 직항 배표를 끊었다. 서북쪽 페리 터미널에 내리면 발레타까지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데 발레타 행 배를 타면 발레타까지 바로 가서 편리하다.

고조섬 항구의 카페. 사진=정연일
고조섬 항구의 카페. 사진=정연일

배에서 보는 풍경과 발레타의 모습도 멋지다. 고조섬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니 배 출항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 항구 인근의 오래된 선술집에서 몰타 맥주를 주문. 어떤 식민지라도 모든 식민지는 불행했지만, 영국 식민지였던 곳은 맥주 맛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의 몰타 키프로스 지브롤터와 유럽 밖의 벨리즈 미얀마 스리랑카 등도 로컬 맥주 맛이 훌륭하다. 고조섬과 발레타를 잇는 배는 몰타에서 타본 교통선 중에서 가장 크고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요금도 가장 비싸다. 발레타를 향해 배는 고조섬을 빠져나간다.

●정연일

인생의 첫 사표를 던지고 인도로 떠난 1997년부터 현재까지 취미도 특기도 생업도 여행인 사람. 세계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유럽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지중해 연안 국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닉네임 라스트라다 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이라는 뜻이다. ‘라정’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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