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날 한국도자기 창업주(고 김종호 회장) 묘소 찾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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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날 한국도자기 창업주(고 김종호 회장) 묘소 찾아 추모
  • 김영이 기자
  • 승인 2023.11.08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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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윤 전 부사장, 새벽기도 후 묘소 직행 고인의 은덕 기려
떡두꺼비같은 손으로 감싸줘···“나를 청주사람으로 만든 은인”

 

한국도자기 김해윤 전 부사장은 매월 첫날(1일) 새벽 한국도자기 창업주 고 김종호 회장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넋을 기린다.
한국도자기 김해윤 전 부사장은 매월 첫날(1일) 새벽 한국도자기 창업주 고 김종호 회장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넋을 기린다.

 

부모도 아닌 사람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매월 첫날 새벽, 산소를 찾아 헌화하고 추모한다는 것은 보통 성의가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이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주인공은 김해윤(77) 전 한국도자기 부사장. 현 직함은 다래월드 회장과 한국품질경영학회 산학명예회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한국도자기 창업주 고 김종호 회장의 부부 묘소를 새벽기도 끝난 후 매월 첫날(1) 새벽 찾아 묵념하면서 고인의 얼을 되새긴다. 해외 출장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다.

고 김 회장이 타계한 198910월 이후 지금까지 34년을 지극정성을 다해 추모하고 있는 것이다.

고 김 회장의 묘소는 청주시 강서동 충북적십자사 뒤편 선영에 있다. 부인 최순환 여사와 합장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청주상의 1, 2대 회장을 지낸 순수 향토기업인이다.

묘소를 찾을 때 봄, 여름, 가을에는 생화를, 겨울엔 조화를 묘지 앞에 가지런히 바친다.

한국도자기는 1943년 고 김 회장이 청주시 우암동(청주대 정문 앞)에서 창업했다. 1970년 중반 지금의 청주산단으로 이전한 한국도자기는 본차이나를 처음 개발 시판했으며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국내 도자기 업계 정상에 올랐다.

 

고 김종호 회장 부부
고 김종호 회장 부부

 

김 군 25년 보장한다

 

김 전 부사장과 고 김 회장의 인연은 우연이 가져왔다.

김 부사장이 1970년 대 중반 미싱 판매 사업을 접고 일본 연필공장을 방문했을 때 마침 초등학교 2학년들이 공장 견학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들에게 아껴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이드가) 연필을 설명하면서 고무도, 흑연()도 일본에서 안 나온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껴 쓰라며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또 공장 곳곳엔 품질관리(QC)’라고 쓰인 표어가 붙어 있었다. 당시엔 품질관리라는 말이 너무나 생소해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극을 받은 그는 귀국 후 품질관리기관인 한국표준협회를 찾게 됐고 품질관리 맨이 되는 계기가 됐다.

QC 전도사가 된 그는 1980년 효성그룹 대전피혁과 동성피혁(신탄진)에서 QC 강의를 했다. 공장새마을 운동과 QC를 접목한 강의는 신선했다.

이를 안 청주산단 조광피혁 이영근 회장이 그를 초청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서너차례 강의하도록 했다. 반응 역시 좋았다. 소문은 산단으로 번졌다.

명강의 소문을 들은 고 김 회장이 누구냐며 측근을 통해 한번 보자는 연락을 해 왔다.

당시 그의 나이 33. 세 번째 만나는 날, 고 김 회장이 우암산 중턱에서 차를 먼저 보냈다. 단둘이 걸어 내려오면서 고 김 회장이 창업부지를 손으로 가리켰지만 당시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면서 같이 일하자고 했다. 당시 삼성에 취업하기로 돼 있던 그는 조건을 제시했다.

직책은 과장, 정년까지 25년 보장, 평가 후 봉급 인상 및 승진...

고 김 회장은 아들들 앞에서 김 군을 25년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이어 큰아들, 둘째 아들은 서울 사무실로, 막내아들과 며느리는 연구개발생산과 디자인을, 김 과장에겐 경영관리를 맡겼다. 철저한 업무분장이었다.

회사 내부에 혁신바람이 불었다. 그는 품질관리만이 살길이라며 회사 전 분야에 품질경영체제를 도입, 3년 만에 6개 계열사 전 공장이 1등급 마크를, 4년 뒤에는 도자기 분야 최초로 ‘KS’마크를 획득, 성가를 드높였다.

1995년 세계 최초로 국제 품질인정 ISO 9001과 국제환경인증 ISO 14001을 획득했다.

이 시기 청와대에 식기를 납품하면서 한국도자기의 명성은 절정에 달했다.

 

청주 사람으로 만든 은인

 

우암산에서 내려올 때 고 김 회장님이 떡두꺼비 같은 손으로 제 손을 감싸며 애비없이 자란 자식은 아니구먼하며 보여준 믿음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아버지처럼 효성을 다해 모셔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김 부사장의 고향은 경북 울진이다. 생후 4개월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6살 많은 형에 의지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벌이에 나섰던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아버지처럼 사랑을 듬뿍 베풀어 주신 고 김 회장님은 제 인생의 참 어른이십니다. 자제분들도 한결같이 잘해줘 저에겐 은인 집안이지요. 특히 저를 청주에 살게 해 주고 청주 사람으로 만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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