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 초원의 샤먼과 김동리의 「무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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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초원의 샤먼과 김동리의 「무녀도」
  •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 승인 2023.11.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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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도 외로움과 고민은 사라지지 않을 것
무녀도 표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이었던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 표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이었던 김동리의 작품.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20세기 초 경주에서 살던 어떤 무당의 슬픈 가족사를 다루고 있다. 도깨비불같이 허름한 무너지는 집에서 딸과 함께 점을 치며 현대화의 여파 속에서 꿋꿋이 굿을 하던 주인공 모화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돌아온 아들을 다툼 끝에 찔러 죽이고 본인도 마지막 굿을 하며 물속에 투신하는 내용이다.

20세기 이후에 시베리아와 중국의 샤먼들은 공산주의의 득세로 심하게 탄압을 받았고, 한국의 샤먼들도 근대화 이후 서양 문물이 도입되면서 어두운 뒷골목으로 사라져갔다. 사실 지난 수만 년 사피엔스의 생존 과정에는 험난한 인생을 살던 샤먼들이 있었다. 최근에 알타이 초원의 얼음 속에서 샤먼의 미라가 발견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비슷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모습이 재조명되고 있다.


2500년 전 알타이 고원의 무녀도


지난 1993년에는 2500년 전 시베리아의 한가운데 알타이의 초원에서 유목민의 삶을 달래주던 여성 샤먼(=사제)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여성 미라는 알타이의 공주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전시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미라는 공주는 아니었고, 그 삶도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출토된 황금 머리띠 속의 샤먼.
우크라이나에서 출토된 황금 머리띠 속의 샤먼.

고고학이 밝혀낸 그녀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고 외로웠던 것 같다. 마초인 유목 전사들 사이에서 외롭게 살면서 신탁을 내리고 점을 쳤지만, 몸은 지치고 병들어서 20대를 못 넘기고 죽었다. 그리 크지 않은 무덤에 묻혔고 그나마도 다른 고분과 달리 따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무덤에서는 전사의 유물도 별로 없으면서 여러 약초, 의식용 유물들과 함께 묻혔다. 최근 이 미라에 대한 MRI 조사 결과 어려서부터 골수염(osteomyelitis)을 앓아왔고, 사망 당시는 유방암 4기였고 낙상을 했는지 몸의 곳곳에 심한 외과적 손상도 발견되었다.

골수염은 주로 무릎관절에 생기는데, 관절을 통해 세균감염이 지속되기 때문에 통증도 심하고 고치기도 거의 어렵다. 평생 말을 타고 다녀야 하는 기마민족의 고질병이다. 유방암으로 몇 년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죽기 3~5개월 전에는 낙상사고를 입어 오른쪽 어깨와 골반이 손상되는 외상을 입었다. 하지만 평생을 떠도는 유목민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야 비로소 영원한 이동을 멈출 수 있었다. 알타이의 샤먼도 죽기 전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계속 유목하며 함께 다녀야 했다.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샤먼 무덤의 복원도.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샤먼 무덤의 복원도.

우코크 미라의 무덤에는 대마씨, 고수, 쿠릴차(물싸리), 멘솔 향이 강한 지지포르 등 다양한 약초들도 함께 발견되었다. 평소 의식에 사용하는 환각, 진통, 항균 효과가 나는 이들 약초로 고통을 달랬을 것이다. 결국 죽을듯한 고통을 견디며 고원지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낙상사고를 입고 그해 겨울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묻힌 우코크고원은 겨울 목초지로 해발 2400m가 넘는 높은 곳이다. 세상의 질곡을 떠받들고 강하게 살다 허무하게 무너진 무녀도의 주인공 모화의 모습이 겹쳐진다.


화려한 사제, 외로운 인생


유목 사회에서 여성 사제의 화려한 모습은 현재의 우크라이나에 있는 쿠르한(Kurhan) 2호라는 무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고분에서 발견된 머리에 두르는 황금 머리띠에는 새해 잔치에서 점을 치는 여신과 같은 샤먼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거울을 들고 자리에 앉아있는 여사제 앞에 한 전사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점을 치고 있다.

술을 진탕 마시며 축하하는 스키타이인의 새해 파티의 가운데에서 샤먼은 위엄있게 거울을 들고 점을 친다. ‘러브샷으로 동지애를 다지며 커다란 양동이(암포라)에서 술을 먹는 모습, 그리고 흥에 겨워 하프를 켜는 모습으로 왁자지껄한 스키타이인의 사이에서 여왕처럼 우아하게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모습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사들이니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말해주는 사제들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화려한 잔치의 이면은 질병과 외로움으로 점철되었다. 알타이 샤먼은 어려서부터 골수염을 심하게 앓으며 혼자 살 수밖에 없었고 대신에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아 의례를 주재하고 신과 맞닿는 삶을 살아갔다. 무덤도 따로 쓸 정도로 홀로 외롭게 살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위엄과 카리스마로 등장했던 그녀의 모습은 마을 사람의 기대를 온몸에 받으며 굿을 하던 모화의 모습이기도 했다.


고고학이 복원한 샤먼의 무덤

 

스키타이 여성 사제의 모습.
스키타이 여성 사제의 모습.

2500년 전 알타이 샤먼의 무덤은 얼음 속에서 잘 보존된 덕에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잘 복원되었다. 알타이의 샤먼이 몇 달간 누워서 투병 끝에 숨을 거두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날을 예언했던 여사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땅이 녹아 무덤을 만들 때까지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온전히 하려고 염습을 했다.

기본 원리는 이집트의 미라를 만드는 법과 비슷하여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고, 갈고리로 머릿속의 뇌수를 뽑아냈다. 그리고 빈 자리는 부패를 방지하는 약초들을 채우고 다시 꿰매서 원형을 유지시켰다. 피부에도 부패를 방지하는 약초를 바르고 시신이 베었던 베개와 주변에는 고수풀 같은 강한 향과 항균 작용을 하는 풀들로 덮었다.

얼었던 땅이 녹는 기간인 6월이 되자 사람들은 샤먼을 위한 마지막 축제를 준비했다. 양지바른 언덕 위의 땅속 얼음을 깨고 그녀의 무덤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녀가 평소에 입었던 옷과 화려한 머리 장식을 갖추어서 통나무 관에 넣었고, 저승에서도 똑같이 살기를 바라며 그녀가 살아생전 천막의 벽에 걸었던 펠트와 각종 집기도 넣었다.

관의 옆에는 생명의 원천인 우유를 담은 토기와 저승에 가서 먼저 간 친척들과 잔치를 하기 위한 양고기 요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천상에 올라갈 말들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무덤 위에 순장했다. 더는 병이나 아픔이 없는 저승에서 푸른 목초지와 여러 약초가 피어있는 초원에서 행복하게 살 것을 바라며 말이다.

무녀도에 기록된 모화의 마지막 넋건지기굿(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혼을 건지는 굿)’을 준비하는 모습은 서글플 정도로 화려하다. 옷자락을 흔들리며 천천히 가라앉는 그녀의 모습은 저승을 향해 마지막 의식을 행하는 알타이 무덤 속의 샤먼이 연상된다.


지금도 이어지는 샤먼의 시대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속의 모화와 알타이 샤먼만이 아니라 유라시아 곳곳의 샤먼들은 생김새는 달라도 삶의 모습은 비슷했을 것이다. 평생 다른 사람의 시름을 달래며 살았고 그 신기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 술이나 환각성분의 약초를 입에 달고 살며 삶을 불안해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로하며 천천히 자신을 스스로 불태우며 살았다.

알타이 샤먼이 발견된 우코크 고원의 전경.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험난한 환경이었다.
알타이 샤먼이 발견된 우코크 고원의 전경.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험난한 환경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모화와 갈등을 일으켰던 아들 욱이도 기독교를 믿었지만, 예수님이 귀머거리를 고친 것처럼 자기의 동생 낭이를 고칠 것으로 믿었기에 그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여하튼, 모화가 죽고 나서 그녀의 딸은 건강을 되찾고 아버지와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났다. 아마 다른 곳에서 그녀의 재주인 무녀도를 그리며 어디에선가 모화의 명맥을 이었으리라. 그렇게 현대화의 물결로 희미해진 듯하지만, 샤먼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세상이 고립되고 힘들어지면서 그들의 역할은 오히려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동아시아에서 샤먼의 전통을 잇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첨단 IT산업이 발달하고 선진화된 한국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골목길 구석에서 점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코로나 이후로 우리의 삶은 더욱 고립되었고 미래는 불투명해지면서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점을 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이 점집에 들어가면 무속인들은 앞에 앉은 사람의 과거를 맞히며 위로하고, 또 앞날에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한다. 세상이 바뀌고 수많은 최신의 기계가 나온다고 해도 사람의 외로움과 고민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수천 년을 이어온 샤먼의 역사는 그 형태만 바뀌어서 우리 곁에서 계속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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