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지붕 위에는 ‘용고새’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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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지붕 위에는 ‘용고새’가 앉는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11.16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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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엉 겹겹 두르고 묶은 뒤에 얹는 용마름의 충청 사투리
기계로는 불가, 15년째 수작업하는 ‘진천 산척리 80대들’
염색체지도 닮은 새끼줄…한국인의 문화원형 DNA 담겨

쌀 소비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밥심으로 사는 민족이다. 벼농사의 역사는 유구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의 토탄층에서는 12500~14800년의 볍씨가 발굴됐다. 이 볍씨는 다른 고대 볍씨들보다 3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밝혀져, 벼의 기원·진화·전파에 대한 새 역사를 썼다.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6인방이 초가지붕 보수에 쓸 이엉과 용고새를 엮고 있다.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6인방이 초가지붕 보수에 쓸 이엉과 용고새를 엮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벼농사의 부산물인 볏짚이 엄청나게 나오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볏짚은 사람은 물론 동식물의 보온재로 유용했다. 배추도 이엉으로 덮었고, 닭장에도 볏짚을 둘렀다.

그러니 추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볏짚을 활용한 월동 채비가 시작됐다. 그중에 한 가지가 초가지붕을 손보는 일이었다. 짚은 물에 쉬이 젖을 것 같지만, 섬유질이 방수막을 형성하고, 항균과 단열효과도 매우 뛰어났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 사라져


바람은 차도 햇볕은 따사롭던 1110, 충북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보재 이상설 선생의 생가 옆 공터에서 이엉을 엮고, ‘용고새(용마름, 용마루의 충청도 사투리)’를 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추수가 끝나자마자 시작한 일은 11월 한 달 내내 이어진다. 이상설 생가의 초가 두 동의 지붕을 새로 엮는 것은 물론이고 충북 도내 다른 시군의 문화재나 고택 등의 보수작업에 사용할 상당량의 용고새와 이엉이 이곳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지붕을 얹을 때는 물매를 잘 잡아야 고랑이 나지 않는다. 사진은 2022년, 이상설 생가 지붕 얹기. 사진=이영환 이장 제공
지붕을 얹을 때는 물매를 잘 잡아야 고랑이 나지 않는다. 사진은 2022년, 이상설 생가 지붕 얹기. 사진=이영환 이장 제공

올해 작업에 나선 촌로는 모두 여섯 명이다. 1950년생인 이영환(73) 산척리 이장만 70대이다. 이영환 이장은 12년째 이장을 보는데, 이유는 이 동네 막내라서다. 실제로 짚을 엮는 김기영(83), 김동만(85), 조택제(82), 진광용(77), 최익준(82) 씨 등은 대부분 80대다.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초가지붕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까, 사실 나는 초가지붕 만드는 걸 지켜본 사람이고 저 양반들은 어렸을 때부터 손에 익힌 사람들이라 달라. 왜 새마을 노래도 있잖아.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1970년부터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이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이장은 15년여 전부터 볏짚을 엮는 일감을 물어온 자신의 역할을 브로커라고 했다. 하지만 용고새를 엮을 수 있는 사람이 매년 줄어들고 있어서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열다섯 정도는 매달려야 되는 일인데,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고 1년에 두세 분은 거동을 못 하시게 되니까 일하러 못 나오시는 거지. 삼사 년 만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여섯 명으로 줄었어.”


두껍아 두껍아 새 짚다오


용고새를 엮을 수 있는 사람만 귀해진 게 아니다. 짚도 귀하다. 일단 축산농가가 크게 늘면서 볏짚을 대부분 소먹이로 쓴다. 2000년대 들어 추수가 끝난 논은 하얀 비닐로 칭칭 감은 속칭 공룡알외에는 볏짚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나마 진천 뜰은 평야에 벼농사 곡창지대라 짚도 많이 나는 축에 든다.

이영환 이장이 이엉 엮기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이영환 이장이 이엉 엮기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재표 기자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태풍이나 비바람에 쓰러지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대가 굵고 뻣뻣한 품종을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살아서 뻣뻣한 볏대는 짚이 되어서도 뻣뻣하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품종 알찬미는 대가 굵고 짧은 데다 뻣뻣해서 짚을 꼬기에 나빠. 옛날 아끼바레(추청벼)는 길고, 낭창낭창해서 작업하기에 좋은데 말이야. 일부러 농사짓고 계약재배해서 짚을 사 오기도 해.”

상품(上品)은 길이가 80cm 이상 길어야 하며, 대공은 가늘수록 좋다. 이쯤 되면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라고 부르던 전래동요를 이 동네에서는 두껍아 헌 짚줄게 새 짚다오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볏짚 작업에 숙련되지 않은 이 이장이 조장처럼 일하는 것은 일감도 따오고 볏짚 준비도 책임지는 까닭이다. 그는 올해 열두 마지기에서 나는 볏짚을 구해왔다. 2400평 정도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 마지기에 2만 원 정도이던 볏짚이 현재는 8~10만 원까지 올랐다. 값도 값이지만 작업에 필요한 만큼의 볏짚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예 작업을 시작할 수도 없다. 세 칸 초가에 이엉을 올리려고 해도 볏짚이 300단 이상이나 필요하다.

초가지붕에 비가 새면 그 부분만 가라앉고 썩어서 볏짚이 빠져. 그걸 고랑이 난다고 하거든. 그래서 이엉을 겹겹이 쌓고 묶으면서 올라가니 볏짚이 많이 들어가. 열 겹 이상은 되지. 그렇게 쌓은 뒤에 용고새를 덮어 단단히 묶는 거야. 여기가 논농사를 많이 지어도 볏짚 구하기가 힘들어. 옛날에는 전라도에서 여기로 볏짚을 사러 왔는데 이제는 우리가 전라도로 사러 가니까.”

해마다 이엉을 새로 얹지만, 초가지붕 전체를 다 벗겨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대로 잘 시공했다면 물이 들어오지 않아 속은 썩지 않고 깨끗하기 때문에, 햇볕과 눈비, 바람에 손상된 겉 부분만 갈면 되는 셈이다.


물매 잡히면 비 새지 않아


이엉을 얹을 때 지붕에 올라가서 하는 작업은 기술도 필요하지만, 힘도 중요하다. 산척리에는 이제 지붕 위에 올라가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작업 물량 수주, 유통, 시공 등의 과정을 ()충북문화유산지킴이(이사장 연복흠)와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논에서 건조된 볏짚을 작업공간으로 옮겨 바닥에 층층이 쌓아 둔다. 시작이 반이라고 운송과 쌓기로도 작업의 절반은 진행한 셈이다. 볏단 일고여덟 단 정도로 이엉 하나를 완성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평균 열댓 개 정도를 엮는다. 지붕 꼭대기에 얹는 용고새는 자 모양으로 지네처럼 길게 만든다. 산척리 노인들의 경우 한 사람이 하루 평균 20m를 꼰다.

제대로 엮은 초가지붕은 이엉이 열 겹 이상이다. 비가 새거나 썩지 않는다. 사진=이재표 기자
제대로 엮은 초가지붕은 이엉이 열 겹 이상이다. 비가 새거나 썩지 않는다. 사진=이재표 기자

새끼줄과 이엉, 용고새 등 재료가 갖춰지면 지붕 보수를 시작한다. 습하고 썩은 이엉은 걷어내고 새것으로 채워나간다. 전체 경사도를 주면서 아래 처마(평고대)’에서부터 이엉을 돌려가며 용마루(용마름)까지 올린다.

경사도를 봐 가며 작업하는 것이 물매 잡기. 꺼진 곳이 있으면 그곳엔 이엉을 더 채워준다. 물매가 중요한 이유는 볏짚의 결을 따라 빗물이 잘 흘러 내려오게 경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매를 잘 잡아주고, 꼭대기에 용고새를 덮어 단단하게 묶어준다면 빗물이 새는 예는 없다.

지붕 덮은 얘기가 나오자 용고새를 엮으면서도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지붕을 갈면 아무래도 붕 뜨잖아. 일 끝내고 나면 지붕 위에 오줌을 누고 내려오는 풍습도 있어서 이엉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라고 그런 거지. 비가 오면 더 좋아했어. 떡을 해서 고사도 지내고 잔치도 했지. 지붕 새로 하고 김장하는 게 겨울 준비지, 뭐 있어? 따로 한 게 아니라 한 집씩 차례로 했어. 그걸 두레라고 했잖아.”


끊임없는 노인들의 수다


작업하는 동안 노동요를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빨래터의 아낙들 못지않게 노인들의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초가지붕을 이야기하다가 구렁이 얘기가 한참 이어진다.

초가지붕 안에 굼벵이도 많고 새들도 알을 낳고 살았는데 구렁이는 또 얼마나 많았어. 새알 주우려고 손을 집어넣었을 때 찬기가 느껴지면 그게 구렁이야. 깜짝 놀라서 손을 빼고.”

구렁이를 업신(業神)’으로 여겼잖아. 집에서 나가면 집이 망한다고. 그래서 사람 눈에 띄면 안 좋다고, 나오지 말라고 밥하고 미역국 끓여놓고 절도 했는데 뭘 그래.”

사진=이재표 기자
사진=이재표 기자

이야기는 다시 행여(行輿, 상여의 충북 사투리) 나가던 기억으로 이어졌다. 역시 짚과 연관이 있다.

동네에 행여 나갈 때는 동네 샘물에도 미리 이엉을 덮고, 집안 장독대도 이엉으로 덮었잖아. 물이 흙탕물 되고, 장맛이 변한다고 그랬는데, 지푸라기가 부정 타는 걸 막아준다고 믿었던 거지.”

행여 많이 맸지. 결혼한 사람들만, 키 작은 사람이 앞에 서고 차례로 서서. 중간에서 드는 사람이 제일 편했지만, 냄새가 나서. ○○아부지가 특히 심했지. 그때는 아랫목에 관을 놓고 삼일장을 치렀으니까.”

볏짚에는 한국인의 DNA가 있다. 두어 자()에 불과한 푸석푸석한 볏짚은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지만, 새끼줄이 되고 용고새로 이어지면 힘줄처럼 질겨지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염색체지도의 모양이 새끼줄을 닮은 것도 같다.


이제 더는 못 할 거 같아


2023년의 용고새이엉 엮기는 1115일에 얼추 마무리됐다. 다른 지역으로 나갈 것들은 화물차에 실렸고, 바로 옆 이상설 생가를 정비하기 위한 작업만 남겨둔 상태였다. 이날 일하러 나온 네 사람에게 작업 후기를 물었다. 일관된 대답은 너무 힘들어서 내년에는 못 하겠다였다.

이들은 또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해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고, 나무 대신 연탄을 때게 하니 돈은 더 들었지만 사는 건 편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최익준, 김동만, 조택제 씨. 사진=이재표 기자
왼쪽부터 최익준, 김동만, 조택제 씨. 사진=이재표 기자

최익준 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새끼 꼬고 가마니 치는 것부터 시작해 짚일을 배웠다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남의 하는 것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회상했다.

작업자 중 최고 연장자인 김동만 씨는 문화재에나 초가지붕이 있지 요새 초가집이 어디 있느냐?”면서 새마을운동으로 지붕 개량한 뒤 한동안 이 일을 안 했지만 하던 버릇이 있어서 옛날 실력이 나온다며 웃었다.

조택제 씨는 밥 주고 술 주고 돈도 주니 짭짤한 일인데 이제는 힘이 들어서 못 하겠다우리는 해봤으니까 하는 거지만 가르쳐 준다고 해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진광용 씨는 따지고 보면 우리도 기술자인데 (일당을) 그렇게 많이는 안 준다그전에는 지붕에도 올라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영환 이장은 내년에도 일을 할 수 있을 런지는 가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지를 남겼다. 어찌 됐든 이엉은 기계로도 엮을 수 있지만 용고새 작업은 손으로만 가능하다. 기술을 전수하든, 더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든 방도를 찾아야만 할 판이다.


초가이엉문화재학교 만드는 게 대안

충북서 활동하는 충북문화유산지킴이 연복흠 이사장

연복흠 충북문화유산지킴이 이사장
연복흠 충북문화유산지킴이 이사장

()충북문화유산지킴이(이사장 연복흠)는 문화재 활용에서 정비까지 애호 활동을 벌이는 비영리 사회적기업이다. 초가지붕을 씌우는 것도 주요 사업이다. 충북만 하더라도 청주 문의문화재단지와 제천 청풍문화재단지에도 초가가 적잖고 이상설, 손병희, 정지용 등 역사 인물 생가에도 초가가 있다. 고택의 사랑채에도 대개 이엉을 얹는다.

연복흠 이사장은 기계로 이엉을 엮으면 생산량도 많고 품질도 균질하지만 용고새는 수작업으로만 가능하다매듭의 두께를 두껍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문화재 보수에는 손 이엉만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작업은 쭈그리고 앉아서 손으로만 하는 작업이라 무척 힘들다. 관절염 등 손가락에 무리가 오기 마련이다. 80대 이상이 대부분인 이엉 엮기를 더 낮은 연령대로 낮춰야 하는 이유다.

연복흠 이사장은 그러나 이엉 엮기는 단청이나 목공, 소목, 대목처럼 기술을 인정해 주는 자격이 없는 데다, 가을 한 철 일거리라는 단점도 있다고 밝혔다. 직업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다.

연 이사장은 초가이엉문화재학교등을 통해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엉에 쓸 짚을 재배하고, 엮는 법과 지붕에 얹는 기술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연 이사장은 문화재 보수에서 초가와 이엉이 차지하는 예산과 수요가 적은 것은 아니다라며 전통 초가에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긍지와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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