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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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
  • 박소영 편집부국장
  • 승인 2023.11.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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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갖게 되고, 무릇 가난한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된다.’ 그러니 이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게 되는 게 진리인가. 이 말은 지방과 수도권(서울)으로 치환해봐도 통한다. 서울은 더 커지려 하고 있고, 지방은 더 빼앗기고 쪼그러들고 있다.

당장 청년들은 몇 년 사이 서울 및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충북에서 대학을 나온 졸업자들 중에 충북에 남아있는 인구는 10명 중 3명뿐이었다. 7명은 타 지역으로 떠났다. 서울은 몇 년 사이 모든 걸 빨아들였다.

빨려 올라간 청년들의 삶은 서울 및 수도권에서 여유롭지 못했다. 일자리는 겨우 구했으나, 집값이 너무 치솟아 주거가 불안정했다. 이른바 모이는 있어도 둥지는 없는 삶은 희망이 없다. 그러니 연애도 결혼도 사치로 여겨졌다. 청년들은 팍팍한 현실에서 정부의 출산율 통계에 일조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이런 와중에 서울은 더 커지려고 한다. ‘메가시티란 이름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의 경계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작은 핸드폰을 손에 쥐고 전세계 및 우주를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총선용으로 메가시티를 떠올렸고 이것이 폭탄이 될지 폭죽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지역에서 태어나 지역에서 쭉 사는 나 같은 이에게 이러한 정치권의 논쟁은 정말 말장난같아서 화가 난다. 도시의 과밀이 초래한 문제에 대해 어째서 분산이 아닌 또 다른 과밀을 택하려 하는지. 이것은 정말 기만이 아닌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이 과연 총리의 말대로 수도권의 재배치라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논리도 기괴하다.

여당은 메가시티를 쏘아올리고 이틀 뒤 윤석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 선포식을 버젓이 개최한다. 이게 대체 뭔가.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면 인근 경기도 도시들은 가만히 있겠는가. 지금 이미 지역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아니, 전국으로 불똥이 튈 모양새다. 다시 말하지만 행정구역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수도권은 초과밀 상태인데 어느 지역을 넣고 말고를왜 갑자기 꺼내드는 것인가. 총선용 카드가 정말 이것밖에 없는가. 정치는 이렇게 알량한 민심을 파고들어 분열을 초래하는가.

이래저래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쓰레기까지 죄다 태우는 지방소도시의 현실. 발암물질을 내뿜는 산업단지 유치를 자랑으로 여겨야 하는 지방소도시의 암울한 미래. 이마저도 끊긴다면 지방은 점점 더 유령이 될 것이다. 무릇 있는자는 더 많이 갖고, 없는 자는 빼앗긴다는 말이 머릿속을 쉬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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