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은커녕 소송비용까지 물라고?
상태바
위로금은커녕 소송비용까지 물라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23.11.23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천 화재 참사, 도지사 책임 때문에 벼랑 끝 소송
유족 등 원고 패소 ‘1억7700만 원’ 물어내야 할 판
무료변론 변호사‧제천 도의원, 청원으로 면제추진
6년 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민사소송 패소로 거액의 소송비용까지 물어낸 처지에 놓였다. 사진은 2021년 참사 4주기를 맞아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6년 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민사소송 패소로 거액의 소송비용까지 물어낸 처지에 놓였다. 사진은 2021년 참사 4주기를 맞아 유족들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충북도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족들이 패소하면서 위로금을 받기는커녕 거액의 소송비용까지 물게 된 상황에서 이를 면제해야 한다는 청원이 추진되고 있다.

청원은 유가족과 부상자 대표를 비롯해 그동안 무료 변론을 맡아온 변호인단, 제천을 지역구로 둔 김꽃임(제천1, 국민의힘), 김호경(제천2 국민의힘) 충북도의회 의원 등이 준비하고 있다. 만약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물어야 할 소송비용은 각각 14000만 원과 3700만 원으로, 모두 17700만 원에 이른다.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은 최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스물아홉 명의 유가족 202명과 부상자 대표 두 명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이는 유가족 측과 손해배상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충청북도가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 청구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충청북도 관계자는 판결문에 ‘(재판에서 패소한) 원고가 소송비용을 부담한다라고 명시돼있어 지방재정법에 따라 소송비용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121일 현재, 청구서가 원고 전원에게 개별로 송달되고 있으며, 충북도는 송달이 완료되고 이의신청 등의 절차가 완전히 끝나게 되면, 유가족 등 원고들에게 소송비용 정산을 고지할 계획이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유족 1인당 80여만 원이 청구될 전망이다.


반송 등으로 송달 절차 지연


소송비용을 면제해달라는 청원서는 그동안 무료 변론을 맡아온 대한변호사협의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위원장 홍지백 변호사)가 이미 작성해서 스포츠센터가 있었던 하소동이 지역구인 김꽃임 의원에게 전달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청원을 이번 회기인 1212일 안에 도의회에서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지백 변호사는 송달이 끝나고 1주일의 이의신청까지 끝나야 청원을 처리할 수 있는데, 원고가 200명이 넘다 보니 반송이 되기도 해서 언제 송달이 마무리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도의회 청원을 통해 소송비용 면제를 추진하고 있는 제천지역 김꽃임, 김호경 충북도의회 의원.
도의회 청원을 통해 소송비용 면제를 추진하고 있는 제천지역 김꽃임, 김호경 충북도의회 의원.

김꽃임 의원도 송달 절차만 마무리되면 바로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현재 김호경 의원과 함께 동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설득하고 있는데 매우 협조적이라고 설명했다.

김호경 의원은 소관 상임위인 건설환경소방위원회 소속이다. 청원안은 우선 건소위 심의와 의결을 거쳐 본회의에 부치게 된다. 김호경 의원은 충북도 관계자도 지방재정법 때문에 비용을 청구했지만, 청원이 도의회를 통과해 근거가 마련되면 이를 면제할 것으로 안다소관 상임위에 속해있는 만큼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발생한 제천 화재 참사 이후 애초 유족 220명과 부상자 30명은 소방당국의 부실대응 책임을 물어 감독기관인 충청북도를 상대로 20203, 163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소방당국의 과실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실로 인해 피해자들이 사망하기까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심과 2심 모두 충청북도의 손을 들어줬다.

대한변협이 무료로 변론했음에도 개별적으로 수백만 원에 이르는 송달료 등을 감당하지 못해 유족 열여덟 명과 부상자 스물여덟 명이 재판을 포기하면서 원고 규모도 축소됐다. 여기에다 2023316일 열린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심이 최종 확정되면서 피해자인 원고들에게 가혹한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는 6년 전인 20171221,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9층짜리 스포츠센터 주차장에 있는 천장에서 발생했다.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대원들이 10여 분 뒤에 도착했으나, 1층의 LP 가스통 폭발 위험성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다가 30분이 지나서야 내부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미 인명피해가 커져 스물아홉 명이 사망하고, 마흔 명이 다쳐 치료받았다.


왜 소송까지 가게 됐나?


문제는 사건 발생 6년이 다 되도록 위로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유족 등 원고들이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냐는 것이다.

충북도는 참사 이듬해인 201811, 75억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유족들과 잠정 합의했었다. 하지만 대형참사의 책임소재를 놓고 유족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합의가 무산되고 말았다.

유족들은 소방대원들이 유리창을 깨는 등의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벌이지 않아서 2층 여탕에서만 열여덟 명이 숨지는 등 피해가 커진 만큼 충북도소방본부를 관할하는 충북도지사가 책임을 인정하는 문구를 합의서에 명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충북도가 이를 거부하면서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홍지백 변호사는 당시 이시종 지사와 도 공무원들이 합의문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문구를 남기면 나중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0203, 민사소송이 시작된 배경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소송과 보상이라는 두 갈래로 해법을 모색했지만, 이 역시 꼬이고 말았다. 20211심 패소 이후 일부 유족들이 소송을 더 진행하기 어려운 만큼 충북도와 보상 협상에 나서려고 했으나 애초 소송과 협상이라는 투트렉(two-track)을 허용하려던 충북도가 돌연 견해를 바꿨기 때문이다.

202110월 당시, 유족 스물아홉 가정은 소송 또는 보상 여부를 자율결정하기로 하고 논의한 결과 열네 가정은 항소를, 열다섯 가정은 소 취하와 보상 협상을 잠정 결정했다.

홍지백 변호사는 항소기한이 1021일이어서 일단 모든 유족이 함께 항소장을 낸 뒤 합의를 원하는 유족은 충북도와 협상하면서 소를 취하할 예정이었으나, 협상에 응하겠다던 충북도가 유족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는 만큼 보상 협의를 미루겠다며 발을 뺐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공무원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원통한 마음으로 6년을 보냈는데, 돈까지 물어내야 하는 상황이 비참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송 이겼다고 위로도 면책은 아니야

홍지백 변호사 법적으로 가렸으니 이제 위로금 이행

김호경 의원 법원도 소방당국 과실 책임은 인정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유족들은 그동안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고, 시간을 끌면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막혔다. 애초 합의했던 75억 원이 있지만, 충북도는 소송 대신 보상을 택한 유족들과의 개별협상도 피했다, 생활고를 겪는 유족들은 201811월 잠정 합의했던 위로금을 집행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위로금 지급을 이행해야 할 일만 남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한변협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의 판단이 그렇다. 이 위원회에는 약 서른 명의 변호사가 소속돼있는데, 제천 참사에는 홍지백 위원장 등 일곱 명이 자원했다. 참사 후 2년 정도는 하루 8만 원 정도의 출장비가 변협에서 지급됐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자비로 서울과 제천을 오가며 무료로 법률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홍지백 변호사 등은 자비를 써가며 6년째 무료변론 중이다. 사진=MBC충북 화면 갈무리.
홍지백 변호사 등은 자비를 써가며 6년째 무료변론 중이다. 사진=MBC충북 화면 갈무리.

홍지백 변호사는 도지사의 책임 여부에 대한 법적인 책임이 가려졌고, 소방당국의 과실도 인정된 만큼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으로 돌아가서 애초 잠정 합의했던 위로금을 이행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오히려 명료해졌다는 것이다.

김호경 도의원도 소방당국의 과실이 분명한데도 법적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 유족의 상실감을 충북도가 치유해야 한다유족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6년의 세월이 흐른 이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다. 2017년 사고 직후 행정안전부는 특별교부세 30억 원을 내려보냈다. 당시 이시종 지사는 이 돈을 위로금 75억 원의 재원으로 쓰자고 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터에는 2022년 문화센터 ‘산책’이 문을 열었다. 이 건물 준공에 국비 등 70여억 원을 썼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 터에는 2022년 문화센터 ‘산책’이 문을 열었다. 이 건물 준공에 국비 등 70여억 원을 썼다.

이에 반해 당시 이상천 제천시장 등 제천시 공무원들은 화재 장소에 들어서는 문화시설 건립 사업비로 위로금과는 성격이 다르다제천시는 최대 15억 원까지 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제천시는 2020년 관련 공사에 착수했으며, 2022707000만 원을 들여 산책이라는 이름의 문화센터를 건립했다.

이에 대해 충북도는 위로금 지급 여부는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규정을 찾아봐야 하고 도민들과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김꽃임 의원은 행정사무감사에서 지난 2년 동안 재난안전실장이 여섯 번이나 교체된 사실이 지적을 받지 않았느냐재난안전 책임자는 물론이고 담당 공무원들이 자주 바뀌면서 혼선을 빚은 것도 있는 만큼 충북도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천이 지역구인 두 의원을 비롯해 일부 의원들은 제천 참사에 대한 대처를 오송 참사 등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만큼 일단 소송비용 면제를 추진한 뒤에 위로금 지급과 관련한 조례 제개정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