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가는 길, ‘의자뺏기’ 게임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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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가는 길, ‘의자뺏기’ 게임이 두렵다
  • 한재각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
  • 승인 2023.12.13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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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
한재각

20215, 40년간 가동되던 삼천포발전소의 석탄발전기 2기가 가동을 멈췄다. 2028년까지 나머지 4기도 마저 폐쇄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했다가, 이후에는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앞에 다들 동감할 정책이지만, 일자리를 잃게 될 이들에게는 가슴 철렁한 일이다. 폐쇄된 1,2호기에 일하던 노동자 대부분은, 다행히 이웃에 새로 지은 석탄발전소로 일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지역 경제도 아직 큰 충격은 없다. 그러나 그런 운은 계속되기 힘들다. 더는 새로 지어지는 석탄발전소가 없기 때문이다. 내년 삼척에서 새로 가동되는 석탄발전소가 마지막이다.

진주에서 차로 1시간 정도를 달리면 삼천포항이 나온다. 점심을 먹고 인근 노상공원에 오르니, 왼쪽으로 거대한 두 줄기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삼천포화력의 연돌에서 솟는 것이다. 발전소는 고성군 하이면에 있지만, 삼천포항에 맞붙어 있어 지난 40년간 풍광 속에서 익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석탄재가 날려 불편을 겪으면서도 지역 경제를 돌게 하니, 주민들에게는 고마웠던 석탄발전소다. 하지만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평생을 거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막막하다.

그나마 발전사의 정규직은 다른 사업장으로 전환 배치되어 어떻게든 일자리를 유지할 거다. 그러나 협력사 노동자들은 앞길이 깜깜하다. 회사가 경쟁입찰에서 공사를 수주해야 일자리를 유지하는데, 2036년까지 절반 가까운 28개 석탄발전소의 폐쇄 계획이 잡혀 있다. 대체 건설되는 LNG발전소에서 필요한 인력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이제 곧 잔혹한 의자뺏기게임이 시작될 판이다. 사라지는 일자리를 두고 동료들끼리 다투게 될지 모른다. 이미 기폐쇄된 발전소의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일이다. 중층화된 노동시장은 전환 때도 차별적이다.

이 이야기는 삼천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옆 하동에서도, 더 먼 충남 보령, 태안, 당진, 영흥에서도 비슷하다. 삼천포 발전소는 사람 많은 도심 지역에서 보여 실감된다. 전기는 고맙지만 발전소는 싫기 때문이다. 태안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이 시내 터미널 앞에서 집회하는 이유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만은 아니라 말한다. 지역의 부가가치 생산액 절반이 발전소에서 나오는데, 2036년까지 절반이 폐쇄된다. 인구가 빠져나가고 지역 경제가 쇠퇴할 것을 경고한다. 이미 2기의 석탄발전소 폐쇄로 보령에서 인구가 대거 빠져나갔다.

경남은 그나마 인근 산업지대에서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충남은 마땅하지 않다. 충남도가 정의로운 전환 조례와 기금을 먼저 만들고, 보령, 태안, 당진이 해상풍력단지를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다. 충남의 여러 단체가 대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지자체 논의에 노동자와 주민들의 참여 기회가 충분치 않아 의미를 반감시킨다. 게다가 정부와 국회는 제도 마련하고 정책 수립했다며, 예고된 의자뺏기게임 앞에 팔짱을 끼고 있다. 다급한 발전노동자들은 서울 집회를 열며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와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을 외쳤다.

석탄발전소 폐쇄는 정부의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쇼케이스다. 2025년부터 시작될 발전소 폐쇄가 노동자와 주민들에게 정의롭지 않다면, 이후 탈탄소 정책은 거대한 저항이 직면할 것이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 등의 거대한 배출산업의 전환이 가능할지, 또 그 전환 끝에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수 있을지, 이번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삼천포, 하동, 보령, 태안, 당진, 영흥으로 가는 길이 모두의 희망을 만드는 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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