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걸려온 ‘지주택’피해자의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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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걸려온 ‘지주택’피해자의 전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23.12.21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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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편집부국장

집 앞 주차장에서 저녁 늦게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박소영 기자님 맞으신가요? 저는 내덕동지역주택조합 피해자인데 구글링을 통해 번호를 알게 돼 연락을 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젊은 여성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사실 저희 엄마가 7년 전 조합원 가입을 해 1,2차 계약금 총 4800만원을 내셨어요. 뒤늦게 제가 알게 됐는데 돈을 찾을 방법이 없더라고요. 이후 중도금이나 조합의 개인대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더니 조합원 자격도 박탈당했고요. 내덕동지역주택조합 카페에서도 글을 볼 수 없게 됐어요.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자님 쓰신 기사를 보고 이렇게 연락드려요.”

이어 그는 기자님 기사를 보고 지금 저랑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힘을 많이 얻고 있어요. 어젯밤부터 부동산 인터넷 카페에 기자님 기사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저랑 엄마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사를 보고 희망이 생겼어요라고 설명했다. 피해를 입은 그에게 비상대책위원회 연락처를 공유했다. 그는 연신 감사하다며 저도 기회가 되면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겠다고 말했다.

내덕동지역주택조합 기사를 연이어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한번 잘 못 내린 판단이 수년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합리적이고 옳은 결정이었을지라도. 성공하면 잘한 선택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실수가 된다.

지주택이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명확하다. 전문가가 아닌 주민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하고 아파트 개발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조합은 업무대행사, 투자대행사, 부동산 디밸로퍼 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조합과 업무대행사 사이 수많은 커넥션으로 조합장은 의례 한 번쯤 구속이 되는 게 수순이다. 또 조합원들은 얼마가 될지 모르는 추가 분담금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이마저도 아파트가 성공적으로 분양을 마친다면 값비싼 기회비용이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어쩌면 전재산을 날릴 수도 있다.

전국의 지주택이 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고, 이미 나온 문제들이 판박이처럼 똑같은데 왜 지자체와 국토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을까. 일이 다 터진 뒤 뒤늦게 수습해야 답이 없다. 조합의 임원과 조합장이 돈을 흥청망청 쓴 것에 대해 어떻게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행정이 지주택은 민간에서 하는 사업이라고 치부해 감시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청주시는 이제야 내년부터 청주 시내 23개 지주택 조합에 대해 실태조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내덕동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업무대행사나 시공사가 와서 매몰비용을 내고 다시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 사업성이 있나 싶다. 아니면 조합원들이 억대의 분담금을 더 내는 수밖에. 허술한 제도로 인해 내집 마련을 꿈꾼 이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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